짧은생각 긴여운

떨기나무 숲의 불꽃은 성령.

배가번드 2023. 10. 7.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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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나갈 때마다 내가 살아있는 이유를 깨닫게 됩니다.

나에게 주어진 사명이 뭐라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는 말입니다.

목사님의 설교를 듣다보면 영혼의 세계를 경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으며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 바로 이러한 점을 바로잡아주는데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는 겁니다.

만약 목사님의 설교가 틀린바가 없다면 내가 성경을 연구할 까닭이 없지요.

몇 번에 걸쳐 말해주었지만 영혼의 세계에 대해 제대로 모르면 누구라도 목사님처럼 성경을 볼 수밖에 없으며 예수의 육신이 부활하는 것과 같이 우리들도 육신으로 부활 하게 된다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구원이라는 말자체가 영생을 말하는 것이고 성령의 되살아남을 뜻하는 것인데 구원을 받았다 해놓고 또다시 육신의 부활을 꿈꾸게 되는 겁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의 피를 모르면 지옥 간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게 된다는 거지요.

그렇다면 우리들은 영혼의 세계가 어떠한 곳인지를 정확하게 알아야합니다.

내가 경험한 세계를 말하면 사사로이 말한다 할 것이 분명하므로 예수님의 입을 통해 들어보겠습니다.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입은 자들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으며(눅20:35)

But they which shall be accounted worthy to obtain that world, and the resurrection from the dead, neither marry, nor are given in marriage:

저희는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니라(눅20:36)

Neither can they die any more: for they are equal unto the angels; and are the children of God, being the children of the resurrection.

죽은 자의 살아난다는 것은 모세도 가시나무떨기에 관한 글에 보였으되 주를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라 칭하였나니(눅20:37)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눅20:38)

For he is not a God of the dead, but of the living: for all live unto him.

 

35절을 보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한다는 것이(the resurrection from the dead) 무덤 속에 육신이 들어가 있고 영혼은 음부에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영적으로 부활을 하였기에 천사와 동일하게 되었고 다시는 죽지 않으며 영생을 얻어 하나님과 하나 되었음으로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합니다.(36절)

그런데 37절에 죽은 자의 살아나는 일에 대해 모세가 가시나무떨기에 관한 글에서 언급을 했다 말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러한지 학인을 해보고 돌아오겠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출3:2)

And the angel of the LORD appeared unto him in a flame of fire out of the midst of a bush: and he looked, and, behold, the bush burned with fire, and the bush was not consumed.

이에 가로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는 동시에(출3:3)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출3:4)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3:5)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우매(출3:6)

 

숲에 불이 붙었는데 나무가 타지 않고 숲이 소모되지 않는다는 것은 모세가 본 것이 이세상의 불이 아니라 영적인 불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the bush burned with fire, and the bush was not consumed.)

빛이신 성령을 보았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성령이신 하나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겁니다.(4절)

그런데 5절을 보면 모세가 선 땅이 거룩한 곳이어서 신발을 벗으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모세가 신을 신고 거룩한 땅에 서있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보려면 육신으로서는 볼 수 없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신발이라는 것은 육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우리가 살아온 족적을(행적) 가리킵니다.

즉, 육신에 속한 이는(영에 속하지 않는 이는) 성령을 만나지(영접하지) 못한다는 뜻이지요.

또한 빛이신 성령은 시공간을 넘어서있는 존재이기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 말하고 있습니다.(6절)

아브라함의 아들이 이삭이고 이삭의 아들이 야곱이니 세대에 관계없이 하나님은 영원한 세계에 계신다는 뜻으로 이렇게 기록해놓은 겁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은 부활이란 육신의 부활이 아니라 영의 부활이라는 점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거지요.(누가복음20장 37절)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봐야할 것은 38절로서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자의 하나님이라 하신 대목입니다.

자신 안에 들어앉은 성령을 살리지 못하면 죽은 이와 마찬가지이며 성령이신 하나님과 상관없다는 뜻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에게는 모든 이가 살았다는 것은 성령이 모든 이들 안에 들어있다는 말이지요.

성령이신 하나님이 모든 이들 안에 살아있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거나 모르고 있는 이들은 영혼이 죽은 것이나 다름없기에 이렇게 말씀하신 겁니다.

이렇게 명백하게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데 왜 목사님이 그런 설교를 하셨는지 우리는 심각하게 생각해야만 합니다.

이 같은 일은 마치 예수님 생존당시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꿎은 짐승을 잡아 피를 흘리게 만든 것과 같은 짓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모세오경에 기록되어있는 안식일에 대한 성경해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예수께서 말씀하신거와 같이 십자가의 부활은 육신의 부활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는 거지요.

마찬가지로 출애굽기에 기록된 불꽃이 에덴동산에 둘러쳐진 불 칼과 같다는 사실을 알아야 빛이신 성령을 깨닫게 됩니다.

모세가 보았다는 떨기나무숲의(in a flame of fire out of the midst of a bush) 천사는 에덴동산에 심어져있다는 영생과를 지킨다는 지천사인 케루빔과 동일한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a flaming sword)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3:24)

 

모세처럼 영생의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보려면 반드시 빛이신 성령을 경험해야만 하며 이 같은 일은 살아생전 일어날 수도 있고 죽음에 이르렀을 때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가끔씩 목사님은 천사들에 대해 말씀하시길 사람들을 시중들기 위해 하나님이 만든 존재라고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으며 성령을 다르게 표현한 것으로 봐야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말씀가운데도 나오는 내용입니다.

예문으로 올려놓은 누가복음36절을 보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믿고 성령에 대해 제대로 알고 죽는 사람의 영혼은 천사와 동일하며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고 있지요.

 

믿음을 가진 사람의 영혼=천사=부활의 자녀=하나님의 자녀=성령 이라는 등식이 성립됩니다.

성경을 읽어본 이들을 알겠지만 오늘 예문으로 올린 누가복음 내용은 영의 세계를 믿지 않는 사두개인과 예수님 사이에서 일어난 부활에 대한 논쟁의 일부분입니다.

긴 말이 필요 없으며 영적인 체험이 없는 이들은 사두개인들과 똑같다는 점만 아시기 바랍니다.

 

좌우상하 분별이 없는 이들은 들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