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함께 죽으러 가자.

배가번드 2024. 2. 28. 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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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몸 안에 영혼이 있음을 아는 이는 드뭅니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라는 말을 쉽게 합니다.

그렇지만 영혼이 있음을 알게 되면 반드시 영혼의 세계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게 됩니다.

세상에 수많은 종교가 생겨난 것은 영적인 일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영혼에 대해 아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그 영혼이 성령과 하나 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육신이 죽어야 영혼이 깨어날 수 있다 말하고 있으며 깨어난 영혼이 영생을 얻기까지는 결코 쉽지 않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사람의 죽음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있지요.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가라사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요11:11)

제자들이 가로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요11:12)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저희는 잠들어 쉬는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줄 생각하는지라(요11:13)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요11:14)

디두모라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요11:16)

Then said Thomas, which is called Didymus, unto his fellowdisciples, Let us also go, that we may die with him.

 

나사로의 뜻은 “하나님이 도우셨다”입니다.

흔히들 이 내용을 두고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다 말하지만 자세히 읽어보면 육신을 살리신 것이 아니라 잠들어 있는 영혼을 깨운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16절에서 디두모가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라는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영원히 이 내용은 죽은 나사로의 육신을 예수가 살리신 것이 되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성경은 담긴 뜻을 알 수 있는 길을 열어둔거지요.

그래서 우리가 되새겨볼 것은 예수와 함께 죽으러 가자라고 한 점입니다.

이 말인즉 육신을 죽이고 영을 살리는 일을 하러 가자는 말로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영적부활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기록해 놓은 겁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요11:23)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요11:24)

Martha saith unto him, I know that he shall rise again in the resurrection at the last day.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11:25)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6)

And whosoever liveth and believeth in me shall never die. Believest thou this?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줄 내가 믿나이다(요11:27)

She saith unto him, Yea, Lord: I believe that thou art the Christ, the Son of God, which should come into the world.

 

보다시피 마르다는 영적부활이 죽고난후 일어나는 것으로 알고 있지요.(24절)

(rise again in the resurrection at the last day)

그렇지만 예수님은 자신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살아날 뿐 아니라 영원히 죽지 않는다 말하고 있습니다.(25.26절)

그런데 영어 성경을 살펴보면 26절에서 예수님이 내안을 믿는 자가 죽지 않는다 말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believeth in me는 나를 믿는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내안을 믿는다 해석하는 것이 더욱 정확한 해석이 될 거라는 말입니다.

예수님 내면에 거하시는 성령을 믿는 자는 육신은 죽어도 영혼은 죽지 않는다는 거지요.

다른 각도에서 보자면 성령에 대해 모르는 영혼은 육신의 죽음과 함께 영혼도 죽을 수 있다는 말이 되며 영생을 얻지 못한다는 겁니다.

성경의 목적이 내재(內在)하신 성령을 알리는데 있으므로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27절에서 마르다가 예수님이 세상에 오기로 된 하나님의 아들이며(the Son of God, which should come into the world)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믿는다 한 겁니다.(I believe that thou art the Christ)

시간관계상 요한복음11장 전체를 올리지는 않았지만 전체 내용을 보면 죽은 나사로의 여자 형제 마리아와 마르다를 등장시켜 영적 부활과 성령에 대해 가르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르다의 뜻은“여주인”이고 마리아의 뜻은“가장 높으신 분, 존귀한 분, 권력 있는 귀부인”등이며 나사로의 뜻은 “하나님께서 도우셨다”입니다.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 하지만 내재하신 성령을 깨닫는 이는 마리아와 같이 존귀에 처해질 것이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영적부활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요한복음11장은 말해주고 있는 겁니다.

믿음의 정도에 따라 그저 육신의 주인에 그칠 수도 있고(마르다) 존귀에 처해질 수도(마리아) 있다는 뜻이지요.

그저 육신의 주인에 머물던 사람이 성령과 함께 하기를 원하고 강력한 믿음을 가지게 되면 하나님의 도움(나사로)으로 영적부활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 요한복음 11장 가르침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액면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예수와 그를 믿는 이들은 영원히 살아야하지만 이 세상에 육신적으로 죽음을 맞이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지요.

심지어 영생을 말하는 예수까지도 죽었으며 어떤 영적 지도자도 살아있지 않다는 점을 인식해야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모든 내용은 오로지 영혼을 일깨우고 성령과 하나 되어 영생을 얻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10:28)

 

세상의 권력을 가진 자들은 사람의 목숨을 좌우지 할 수 있지만 영혼을 어떻게 하지는 못합니다.

어찌 보면 사람이 사는 동안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지만 사람을 죽게 만든 일에 대해 그 사람 영혼이 받아야할 벌을 생각하면 결코 좋게 여길 일이 아니지요.

대부분의 권력과 재물가진 사람들이 주장하기를 죽으면 그만이라 생각하며 가는 곳은 한곳이라 말하기를 즐겨하지만 사후세계를 체험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말하고 있습니다.

죽음이후에 천당을 다녀온 사람도 있고 지옥을 다녀온 사람도 있으며 나 홀로목사 역시 그러한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다만 다른 것은 다른 사람들은 신체적으로 죽음의 판정을 받은 후에 다녀온 것이며 나 같은 경우에는 꿈을 통해 세 번이나 지옥을 다녀왔지요.

사람이 다 같은 사람이 아니듯이 영혼역시 다 같은 영혼일수는 없는 노릇이며 가는 곳도 오는 곳도 다릅니다.

다 같이 학교를 다녀도 성적이 같지 않듯이 같은 종교를 가졌어도 그 성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그러므로 일찍이 다윗은 영혼의 세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풀어놓았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시110:1)

The LORD said unto my Lord, Sit thou at my right hand, until I make thine enemies thy footstool.

 

대문자 LORD는 전체의 하나님이며 뒤에 my Lord는 다윗의 영혼이지요.

그리고 원수는 다윗의 육신을 가리킵니다.

육적 본능을 영혼이 성령과 하나 되기까지의 도구로 여기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자신에게 영혼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이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영혼이 깨어나 성령의 불꽃을 나누어받을 자격이 있는 이들에게 전해주는 가르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가 성령과 하나 될 만큼 겸손하다 여기는 이들만 받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