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동안 다양한 순간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질 때도 있고 갑자기 빈곤해 지기도 하지요.
또한 육신이 병이 들어 힘들어 질 때도 있습니다.
이 같은 일은 믿음의 길을 걷는 이나 그렇지 않은 이나 공히 겪는 일이며 어떤 인생도 이런 일을 피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길을 걷는 이는 일반인들과는 많이 다릅니다.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풍요를 좋아하는 것은 모두가 동일하지만 고통과 괴로움의 순간을 받아들이는 것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는 말입니다.
진정 믿음아래 있다면 모든 순간을 내재하신 성령이 주신다는 점을 알아서 범사에 감사를 하기 마련이며 축복과 저주가 하나라는 점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본인이 영생을 얻었다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인내와 용서를 할 수 있느냐가 구원의 척도가 되어야 하는 겁니다.
조금만 서운하거나 싫은 말을 들어도 쉽게 등을 돌린다면 하나님도 등을 돌릴 것이 분명하므로 성령과 하나 되려면 무한한 인내심을 발휘해야만 합니다.
과연 그러한지 바울의 가르침을 통해 확인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엡2:11)
Wherefore remember, that ye being in time past Gentiles in the flesh, who are called Uncircumcision by that which is called the Circumcision in the flesh made by hands;
너희가 과거에는(in time past) 육신으로 이방인이(Gentiles in the flesh) 되어있었으며(ye being) 손으로(by hands) 육체 안에 할례를 받은(the Circumcision in the flesh) 이들로부터 할례 받지 않은 이들로 불리웠다고(who are called Uncircumcision) 합니다.
마음에 할례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사람에 의해 할례 받은 사람들에게조차 믿지 않는 사람으로 치부(置簿)되었다는 말이지요.
한마디로 요약하면 할례가 마음 안에 이루어져야한다는 말이며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으면 진정한 할례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해줍니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엡2:12)
That at that time ye were without Christ, being aliens from the commonwealth of Israel, and strangers from the covenants of promise, having no hope, and without God in the world:
그때에는 너희에게 그리스도가 없었다고 했으니(at that time ye were without Christ) 이방의 마음에는 성령이 없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연방으로부터(from the commonwealth of Israel) 멀어진 외계인이 되어 있었다고(being aliens) 했으며 약속의 언약들로부터(from the covenants of promise) 이방인이 되어(and strangers) 그 세계에(in the world) 하나님도 없고(without God) 희망도 가지지 않았다(having no hope) 한 겁니다.
마음의 할례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내면세계에 하나님도 희망도 없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마음을 돌이키게 되면 다음과 같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엡2:13)
But now in Christ Jesus ye who sometimes were far off are made nigh by the blood of Christ.
지금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now in Christ Jesus) 때때로 멀어졌던(sometimes were far off) 너희가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 졌다(nigh by the blood of Christ) 했으니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몸소 보여주신 십자가부활을 통해 성령으로 거듭남의 비밀을 알았다는 거지요.
그런데 13절을 보다시피 그리스도의 피라고 한 것은 십자가 사건을 액면대로 봐서는 안 된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육신이 아닌데 피를 흘릴 수는 없는 겁니다.
그러므로 예수가 흘리신 보혈은 생명이자 성령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몸 밖으로 성령이 드러났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엡2:14)
For he is our peace, who hath made both one, and hath broken down the middle wall of partition between us;
둘을 하나로 만드신 이로(who hath made both one) 그가 우리의 화평이기 때문에(For he is our peace) 우리사이에(between us) 분리된 장벽의(the middle wall of partition) 중앙을 허문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인즉, 예수그리스도는 영육을 하나로 만든 이로서 우리내면의 장벽을 허물 수 있게 모범이 되어 주셨다는 뜻입니다.
성령을 드러내어(피 흘림) 영육이 하나가 되었으므로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진 이들에게는 성령자체가 되어 영육간의 분리를 깨트릴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 되려면 예수님과 동일하게 행할 수 있어야만 하므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엡2:15)
Having abolished in his flesh the enmity, even the law of commandments contained in ordinances; for to make in himself of twain one new man, so making peace;
그의 원수 된 육신을(n his flesh the enmity) 폐하셨다(Having abolished)했으니 육적 속성을 죽이고 성령으로 거듭났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법령안에 들어있는(contained in ordinances) 계명의 율법조차 폐했다고 했으며 둘의 자신 안을(in himself of twain) 새로운 한사람으로(one new man)만들어 화평을 만들었다(so making peace) 했습니다.
이 세상 법과는 무관한 존재인 성령으로 거듭났다는 뜻이며 영육으로 이루어진 몸이 하나로 합쳐졌다는 말입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영육이 하나가 되었다는 겁니다.
시간관계상 번역의 문제를 붙들고 있을 수는 없지만 수박겉핥기식으로만 보아도 문제가 무척 많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몸소 십자가에 육신을 매달아 영육을 하나로 만들어 성령으로 거듭나는 방법을 보여주었건만 또다시 우상숭배의 늪에 빠져들게 하기에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본인이 진정 성령에 대한 믿음이 강하고 성령이 임재하실 만큼의 자질을 갖추었다면 지혜가 열려 속뜻을 알아보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드리며 다음시간을 기약(期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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