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배가번드 2025. 8. 19. 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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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2장에는 구약의 말씀이 인용되지 않았지만 곱씹어봐야 할 내용이 있었습니다.

영육이 하나 되게 만든다는 말이 나왔으니만큼 상고해보지 않을 수 없지요.

우리가 죽음에 이르렀을 때 성령이신 예수의 영접을 받는다는 것은 기독교인 누구라도 믿는 일이지만 살아생전 영육이 합일을 이룬다는 점에 대해서는 모르거나 생소하게 여깁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전하는 이들 자체가 이런 점을 모르기 때문이며 본인들이 영육의 합일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러한 점에 대해 깊이 있게 말하게 되면 누구도 구원받았다 말하기 어려우며 말씀을 전하는 일조차 하기 어렵게 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영육의 합일에 대해 알게 되면 오히려 더욱 잘하게 되며 올바른 길을 제시하게 되지요.

영육의 합일을 이루기 위해 제일먼저 해야 할 일은 본인의 죄인 됨을 깨닫는 겁니다.

내가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다는 말인가를 생각해서는 영육의 합일을 이룰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육신을 원수로 표현하고 있으며 죽여야 할 대상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목회자 한분의 간증을 통해 이런 일에 대해 상고해본 적이 있었지요.

본인이 모태신앙이고 살아생전 죄를 지은 적이 없으므로 죄인 됨을 인정할 수 없었지만 인류의 조상 아담의 죄가 육신 안에 각인되어 있음을 깨닫고 성령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번 더 생각해볼 점은 과연 성령으로 거듭나서 영육의 합일을 이루었을까 입니다.

진정 합일을 이루었다면 바울처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야하고 죽음이후에 하늘에 올라 하나님우편에 앉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게 되면 감히 자신이 구원을 받아 영생을 얻었다 말할 사람이 몇 안 됩니다.

소위 말하는 사이비 교주 몇 사람이 이러한 말을 하겠지만 알고 보면 그들은 살아생전 하늘의 복을 모두 받아 누리고 있는 것이며 본인의 영혼의 앞날을 보장받고 있다 말하기 어렵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지요.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눅14:8)

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눅14:9)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눅14:10)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14:11)

 

이러한 가르침을 늘 인용하지만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앞 다투어 높은 자리에 앉아 호령하듯이 성도들을 이끌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를 사유물로 여기어 팔고 사는 행위를 하는가 하면 자식들에게 대물림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영생을 얻었다 말하고 있으며 그들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이들도 영생을 얻었다 말하므로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이러한 이들은 성경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으며 하나님왕국에 대해서도 오해하고 있다는 겁니다.

본인들이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성경은 이러한 일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눅16:22)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눅16:23)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눅16:24)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눅16:25)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눅16:26)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의 등급에 올라 하나님 우편에 앉았으니 당연히 하나님과 하나이자 하나님 자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말씀에 의하면 부자는 살아생전 누릴 것을 모두 누렸으므로 더 이상 받을 복이 없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반면에 나사로는 사는 동안 자신의 죄업을 고통으로 대신하였으므로 하나님 왕국에 오를 수 있었던 겁니다.

이렇게 말하면 부자로 사는 것이 왜 죄가 되는가를 말하며 항의할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렇게만 여겨서는 곤란합니다.

본인들의 삶의 목적이 하늘에 있고 영생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이러한 가르침을 받아들여야하며 본인들의 잘못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인류 최초의 조상인 아담으로부터 죄의 품성을 물려받았다는 생각과 함께 본인들의 가치관에 문제가 있음을 시인해야한다는 말입니다.

물질을 영보다 소중하게 여겨서는 영생의 하늘에 오를 수 없는 거지요.

그렇지만 한 가지 길을 열어놓았음을 바울은 말해줍니다.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엡2:21)

In whom all the building fitly framed together groweth unto an holy temple in the Lord: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2:22)

In whom ye also are builded together for an habitation of God through the Spirit.

 

 

21절에서 말하는 건물이란 사람의 육신을 가리킵니다.

서로 부합하여 성전이 되어간다 했으니 같은 믿음아래 있는 이들이 서로 협조하여 돕게 되면(사랑하면) 성령으로 연결이 되어 육신이 성전이 된다는 뜻이지요.

이 말씀은 특정 종교에만 국한 시킬 것이 아니라 어떤 종교 어떤 단체에도 적용될 가르침입니다.

서로 화합하고 사랑하는 곳에는 성령이신 하나님이 역사하시며 그러한 사람의 마음은 성전이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교회나 종교단체에서 각 사람이 자신이 속한 곳에서 헌신과 봉사를 하는 것은 본인의 영혼을 위해 무척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을 이용해서 사리사욕을 채우는 이들의 문제는 그들에게 돌아갈 것이고 진심으로 행한 행위에 따른 보상은 주어질 것이 분명합니다.

이 같은 일은 세상이 존재하는 한 이어지는 인과의 법칙이며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지요.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

Be not deceived; God is not mocked: for whatsoever a man soweth, that shall he also reap.

 

사람 안에 하나님이신 성령이 거하심으로 속일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어떤 것을 심더라도(whatsoever a man soweth) 그대로 거둔다(shall he also reap)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본인이 삶의 목표를 무엇으로 삼고 있는지 무엇을 중하게 여기고 있는지는 내재하신 성령이 정확히 압니다.

또한 영육의 합일을 이루었는지도 알기 마련입니다.

이 같은 일은 타인이 이렇다 저렇다 말할 것도 없으며 본인스스로가 알게 되어 있습니다.

비록 지금은 모른다 할지라도 죽음에 이르게 되면 심판의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본인이 진정 영육이 하나가 되었다면 당연히 하나님 우편에 앉게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거짓 복음을 전파한 죄로 벌을 받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하여 영육을 하나로 만들려면 어느 것 하나는 반드시 죽어야한다는 말씀을 드리며 영육합일에 대한 상고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