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창조주는 영(靈)의 몸으로 존재한다.

배가번드 2023. 1. 5. 04:08
728x90

성경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인간의 창조역사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과연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이라는 인격체가 있어서 사람을 흙으로 빚어 만들었겠나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약 성경을 액면대로 읽게 되면 이 같은 일은 진실이 되어야겠지만 이렇게 생각하기에는 현실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으며 성경의 내용과는 너무나 동떨어집니다.

간단하게 생각해서 하나님이 천지와 삼라만상을 떡 주무르듯이 해서 만들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이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어버리면 너무나 간단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성경에 기록된 창세역사를 액면대로 믿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나 자신을 보고 인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볼 때 반드시 누군가는 이 세상을 만들어야만 하는 것이기에 창조론에 힘을 실어줄 수밖에 없지요.

내 부모가 나를 낳고 부모는 조부모가 낳았을 것이며 조부모는 증조부모가 낳았을 것이고 또다시 그 위의 조상들이 낳고 낳았을 것인즉 최초의 인간은 창조주가 만들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결국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이 탄생하기까지의 계보는 창조론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라 하겠습니다.

모세역시 엄청난 고뇌와 번뇌 속에서 창조론을 생각해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아담이 만들어진 과정과 삼라만상이 창조된 과정을 기가 막히게 비유로서 묘사했던 겁니다.

음양의 조화를 이렇게 적절하게 묘사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능력만으로는 절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노자의 도덕경이나 천부경 등의 각종교의 경전들 모두가 창조론을 다른 형태로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을 액면대로 볼 것이 아니라 담긴 뜻을 살펴보면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렇게 볼 수 있기 위해서는 성경 속에 담긴 깊은 뜻을 헤아리는 지혜가 필요하기에 성경에서조차 성경을 상고(詳考)하라 주문하고 있습니다.

몇 해 전인가 교황께서도 인간을 만든 창조주는 엄청난 문명을 가진 존재일 가능성이 크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 같은 말씀도 깊은 상고를 한 끝에 내린 결론일겁니다.

그래서 간단하게나마 교황께서 그렇게 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날이 저물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았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리어 절하여(창19:1)

And there came two angels to Sodom at even; and Lot sat in the gate of Sodom: and Lot seeing them rose up to meet them; and he bowed himself with his face toward the ground;

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치 말라(창19:7)

내게 남자를 가까이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컨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내리니 너희 눈에 좋은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짓도 하지말라(창19:8)

Behold now, I have two daughters which have not known man; let me, I pray you, bring them out unto you, and do ye to them as is good in your eyes: only unto these men do nothing; for therefore came they under the shadow of my roof.

그들이 가로되 너는 물러나라 또 가로되 이놈이 들어와서 우거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나아와서 그 문을 깨치려 하는지라(창19:9)

And they said, Stand back. And they said again, This one fellow came in to sojourn, and he will needs be a judge: now will we deal worse with thee, than with them. And they pressed sore upon the man, even Lot, and came near to break the door.

그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으며(창19:10)

문밖의 무리로 무론 대소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곤비하였더라(창19:11)

 

소돔의 히브리어 뜻은 “에워싸인 장소”입니다.

이것은 마치 영생과가 심어진 에덴동산과 같은 의미로 쓰인 겁니다.

따라서 롯은 상징적인 인물로서 구도자를 대표한다고 여겨야 하며 천사는 구도자의 내면에서 만나게 되는 성령과도 같은 존재라 여겨야합니다.

육신은 성전이고 성전 안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소식을 받게 된 것을 이렇게 묘사한거지요.

한마디로 표현하면 영적인 감흥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영적인 일을 거부하고 물질적인 일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은 자신의 내면에서 울리는 신의 음성을 거부하기에 9절과 같이 반응하게 됩니다.

사람의 육신 안에서 성령이 깨어나게 되면 그가 우리의 언행을 제어하고 통제하게 됨으로 법관이 되려한다 표현한 겁니다.

따라서 롯의 집으로 쳐들어온 사람들은 외부의 사람들이 아니라 구도자의 내면에 자리하는 육적인 인식이라고 봐야합니다.

그래서 7절에서 롯이 형제들아 악을 행치마라 한거지요.

또한 8절에 두 딸로 묘사된 것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으로 물질적이고 육적인 즐거움을 가리킵니다.

세상유희에 빠져 살더라도 성령에 악영향을 끼치는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구도자 본인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로서 롯과 같이 어떤 경우에서도 성령을 다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가져야함을 보여줍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게 될 때 하늘(성령)로부터 보호를 받게 된다는 뜻으로 천사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들여 문을 닫았다 한 겁니다.(10절)

롯(구도자)은 이미 성령과 하나 되어 철저하게 보호를 받는다는 뜻으로 문밖에 무리들이 해치려 문을 찾고자했지만 찾지 못했다 한거지요.

이렇게 보게 되면 이 내용은 외계인이 롯의 집을 찾아온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의 문명사회를 만든 지적인 존재가 있을 것이란 점은 나 역시 동감하며 언젠가 여기에 대한 일을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할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분명하게 인식해야할 것은 지극히 발전된 문명의 존재라 할지라도 그들조차 누군가로부터 만들어 졌을 거라는 점입니다.

또한 우리가 명심해야할 일은 지금 당장 우리에게 놓인 삶은 인간으로서의 역할이라는 겁니다.

인간의 몸으로 살아가야하며 인간으로서의 본분에 충실하며 살아가야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변하지 않아야할 것은 우리의 영혼이 상처받는 일이 없어야하며 훼손당하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영혼이 상처받는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 말이지만 정확히 표현하자면 영혼(성령)으로부터 멀어져서는 안 된다는 뜻이지요.

이렇게 되기 위해 가장 현명한 방법은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겁니다.

동식물에게는 동식물만의 사랑방식이 있고 외계인에게는 외계인이 사랑방식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사람만의 사랑방식이 있으며 육과 영을 동시에 사랑하는 방식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사랑이 으뜸이라 말합니다.

 

 

서로 사랑하며 살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