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것은 마음.
술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오바이트(overeat)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드뭅니다.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을 하게 되지요.
그런데 자신의 몸속에서 나온 것이지만 토해놓은 것들을 다시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분명히 먹을 때는 깨끗한 음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몸에 들어갔다가 나온 음식물이 더 이상 깨끗하지 않다 여긴다는 것은 이상한 겁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의 몸 안에 담겼다가 나온 것은 모든 것을 더럽다 여깁니다.
이런 일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해 봐야합니다.
언젠가 동료수행자 집에 놀러갔다가 이런 일에 대해 상고(詳考)하게 되었지요.
식사 대접을 받던 도중 갑자기 궁금한 점이 생각나서 물어보았습니다.
대부분의 채식주의 자들이 그러하듯이 식사를 할 때 공용수저를 따로 사용하기에 두 분이 식사하실 때도 이렇게 하는가를 물었던 겁니다.
당연히 그렇다고 말씀하시고 아예 각방을 쓴다고 자랑하기에 놀라웠는데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이는 어떻게 만들었나 싶었지요.
물론 채식과 명상을 하기 전에 아이를 만들었겠지만 수행을 하고 난후부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면 더욱 심각합니다.
자신의 자녀들이 결혼하는 것을 극구 반대할 것이며 해서는 안 되는 일로 여길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실지로 내가 속한 명상단체 회원 중 일부는 부부간에 금욕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고 있으며 해서는 안 되는 일쯤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부부간에 각방 쓰는 것이 무슨 자랑인양 여기고 있다 보니 자식에게까지 이런 생각을 주입시키기도 하지요.
언젠가 동료수행자의 자녀 결혼식에 참석한 적이 있었는데 혼주가 나를 보고 말씀하시길 죄송스럽고 부끄럽다 말씀하시는 겁니다.
축하하러 간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는 것은 그분의 평소 인식이 어떠하다는 것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스승의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이기에 저런 말씀을 하시는가 싶었지만 한마디도 밖으로 내뱉지 않았지요.
그분이 출가를 꿈꾸는 분이거나 출가자라면 이해가 가지만 재가수행자의 신분으로 금욕을 자랑삼는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여겼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분들을 위해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긴 것이 아닌가 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막10:15)
Verily I say unto you, Whosoever shall not receive the kingdom of God as a little child, he shall not enter therein.
아이를 키워보면 가끔씩 놀라운 일을 발견하게 됩니다.
똥을 싸놓고 제 손으로 집어 입으로 가져가는 일을 목격할 때도 있지요.
요즘에야 이런 일을 경험할 일이 없겠지만 내가 어린 시절만 하더라도 아이를 기둥에다 묶어놓고 부모가 외출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외출에서 돌아와 보면 아이가 온방에 똥으로 도배를 하다시피 해놓고 손으로 분탕을 치고 입에 넣기까지 하는 통에 속이 상해 우는 부모를 본적도 있습니다.
사실 알고 보면 똥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더러운 겁니다.
개를 키워본 이들은 알겠지만 아이가 똥을 쌌을 때 개를 데려오면 깨끗하게 핥아 먹습니다.
코끼리의 경우 아기 코끼리가 어미 코끼리 변을 받아먹기도 하지요.
젖을 떼기 시작한 아기코끼리에게 어미의 변은 이유식과 같다고 합니다.
이런 여러 가지 일들을 볼 때 우리인간들이 얼마나 많은 편견과 고정관념의 노예가 되어있는지 잘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똥을 더럽게 여기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가르침을 왜곡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천국을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받아 들여야 합니다.
받드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하는 거지요.(receive the kingdom of God)
이런 이유로 바울은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남겼습니다.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딛1:15)
Unto the pure all things are pure: but unto them that are defiled and unbelieving is nothing pure; but even their mind and conscience is defiled.
이 말씀은 성령에 대한 가르침으로 성령이 드러난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은 어떤 것도 깨끗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영에 속한 이와 육에 속한이의 차이점을 말하는 거지요.
이러한 가르침은 불교의 가르침과 정확히 일치됩니다.
부처 눈에 부처만 보인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경우를 가리키는 겁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육적인면을 완전히 무시하며 살수는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런저런 행위를 통한 업장을 짓게 됩니다.
그러한 일들은 내가 먹는 음식물과도 같은 거지요.
육신을 가진 이상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도 이런 일을 피할 수는 없는 것이니 그로인해 심한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으며 다만 뒤처리만 깨끗하게 하면 되는 겁니다.
나에게 다가와 있는 모든 것들은 내가 먹은 것들이 나에게 다시 돌아온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구토물이 되었건 똥이 되었건 내가 먹은 음식물과 같은 거지요.
다시 먹기는 곤란하겠지만 본질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육신이 영이 될 수는 없지만 육을 통해 내재한 영을 깨닫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성(神性)과 불성(佛性)을 하나로 보는 이들만 들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