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억압(抑壓)하면 자유를 원하기 마련이다.

배가번드 2023. 2. 10. 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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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가다보면 가끔씩 파룬궁 수련자들을 보게 됩니다.

자신들을 탄압하는 중국공산당을 피해 한국으로 도망 나온 사람들을 중심으로 탄압의 부당성을 알리며 포교활동을 하고 있지요.

이사람들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수련자들이 잡히면 장기적출을 당하거나 죽임을 당한다고 하는데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주장을 백퍼센트 맞는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중국살 때 파룬궁 창시자 이홍지의 책을 본적이 있었고 내가 속한 관음법문에도 파룬궁 수련자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사정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요.

파룬궁은 일종의 기공으로서 기를 운행하여 영혼의 최 상층부까지 도달하게 만드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종교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중국공산당이 공무원 및 학교에서조차 체조로 채택하여 보급할 정도로 호의적이었는데 어느 순간 부작용이 발생하자 사이비로 규정짓게 된 겁니다.

처음에는 체조와 다를 바 없이 기공을 운행하다가 수련이 깊어지면 상단전에 기를 모으게 되고 영의 세계를 보게 되는지라 갑자기 세상을 버리고 수련에만 심취하는 사람이 생기게 되었던 거지요.

멀쩡한 직장과 가정을 팽개치고 무책임하게 떠나버리거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하는지라 중국공산당들이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기에 사이비로 규정짓고 단속에 나섰다고 합니다.

중국공산당당원의 숫자가 1억 명인데 파룬궁숫자가 1억이 넘어서는지라 서둘러 단속에 나선 것인데 단속의 과정에서 무리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파룬궁수련자들에게 이 홍지는 신과 같은 존재로서 큰 스승으로 불립니다.

내가 본 책에 따르면 이 홍지 자신이 신이 되었으니 섬기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으며 수련자들이 신처럼 떠받드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수련자들이 신처럼 여기는지라 중국공산당이 파룬궁 수련자를 잡으면 이 홍지 사진을 바닥에 두고 밟으라고 요구하며 골수분자를 가린다고 하지요.

파룬궁수련자들 대부분이 감히 스승의 사진을 밟지 못하다보니 꼼짝없이 골수분자로 낙인찍히고 장기적출을 당하거나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겁니다.

이러한 점은 내가 속한 관음법문이라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사이비로 규정지어진 관음법문 수행자가 잡혀오면 공산당이 제일처음으로 하는 일이 이런 단체에서 떠날 것을 맹세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서약서에 사인을 하고 계란을 먹으면 풀어준다고 하는데 일부 수행자들은 끝까지 채식을 고집하고 서약하지 않는 바람에 지금까지 감금당하고 있지요.

언젠가 이런 일에 대해 파룬궁 수련경험이 있는 분과 대화를 한 적이 있었는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여러 사람이 대화에 참여하다보니 다양한 의견을 들을 수 있었는데 어떤 이는 그 까짓것 계란정도는 먹어주고 나와서 다시 채식하면 된다고 주장 했고 또 다른 이는 계율이 중요한데 끝까지 버텨야한다 주장하기도 했는데 어떤 주장에도 동조하기가 어려웠던 기억이 납니다.

절두산에 얽힌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이 같은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가 있지요.

과거 천주교가 심하게 박해를 받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잡혀서 목이 잘린 곳이 지금의 절두산이라는 사실을 볼 때 자신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린 일을 가볍게 여길 수가 없다보니 함부로 말하기가 어려웠던 겁니다.

일본에서도 우리나라와 같은 일이 벌어졌는데 아주 간단하게 붓으로 예수의 얼굴을 그려놓고 밟으면 풀어주고 못 밟고 건너가면 목을 쳤다고 합니다.

그저 모르는 척 밟고 나와서 또다시 믿음생활을 이어가면 될 것을 자신의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지라 그럴 수가 없었던 거지요.

나는 지금도 이런 일에 대해 정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위해 가정을 버리고 직장을 버리는 것은 물론 목숨까지 버리는 행위를 잘못된 것으로 규정짓는 것도 우습고 그렇다고 해서 간단하게 여겨 계율을 파기하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그렇다는 말입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생각해볼 때 파룬궁이 되었건 관음법문이 되었건 관계없이 수행의 최 상층부는 하나에서 만납니다.

기독교나 천주교나 불교나 할 것 없이 정점은 단 한곳뿐이며 그곳의 주관자는 빛으로 존재하는 하나님이지요.

이렇게 보게 되면 어떤 수행법이나 종교를 통해서라도 정점에 도달하기만 하면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파룬궁의 이 홍지 스승도 기 운행을 점차적으로 올려 상단전에 집중하는 것을 가르치고 관음법문역시 상단전에 집중하여 명상할 것을 주장합니다.

또한 예수님역시 다락방에서 기도하라 했는데 이 역시 상단전을 의미하고 있는 겁니다.

모두가 하나같이 이마한가운데 있는 지혜안에 집중하여 기도하라 했으니 알고 보면 모두가 같은 거라 할 수 있지요.

그런 가운데 어떤 법문은 채식을 주장하고 또 다른 법문은 먹는 음식과는 무관함을 주장합니다.

그래서 나 같은 경우에는 주변분 들에게 채식과 최상층의 깨달음은 무관하다 말하고 있습니다.

채식을 함으로서 얻을 수 있는 영적단계가 있지만 위없는 깨달음의 세계는 먹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말입니다.

일반인들이 제사를 모실 때 조상님들의 영혼이 와서 먹는다 생각하고 지냅니다.

이렇게 여기는 인식하에서는 귀신도 먹는다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지요.

그렇지만 높은 영혼이라면 먹는 것과는 무관하며 빛으로 존재합니다.

따라서 아직도 무엇인가를 먹어야한다면 완전한 영이 아닌 겁니다.

이런 이유로 기회 닿을 때마다 먹는 것과 영적깨달음은 상관관계가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런 주장을 하는 이유는 주변에 노인 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 영양이 중요할 때인데 다들 채식을 힘들어하기 때문이지요.

솔직히 말하자면 다른 이들 몰래 건강을 위한 음식들을 먹으라고 권하고 싶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기에 깨달음과 채식은 무관하다는 말을 하는 겁니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도 가족들의 비난을 무릅쓰고 채식을 하고 있으며 관음법문에 몸을 담고 있습니다.

모른 척 예수님얼굴이 그려진 그림을 밟고 지나갈 수도 있지만 예수님이 성령으로 마음에 심어져 있기에 그러지 못하는 것처럼 내 몸과 마음에 관음법문이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여 나를 아는 분들과 나와 함께 교회를 다니는 분들은 구태여 채식과 명상을 하지 않아도 무방하며 나와 함께 관음법문에 속해진 이들만 채식과 명상을 하면 됩니다.

다만 나더러 채식과 명상을 하지 말라거나 교회를 다니지 말라는 말은 하지 말기 바랍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내가 제한받기 싫어서라기보다 나를 제한하는 것은 곧 자신을 제한하기 때문입니다.

대 자유를 원하는 이들만 들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