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최선을 다하면 후회하지 않는다.

배가번드 2023. 2. 12.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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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자한분이 평소 친하게 지내던 친구 분이 자신의 집을 방문하지 않는 것에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수십 년간을 친구로 지내던 분이 최근 코로나 정국으로 인해 자신의 집을 방문하지 않자 서운한 마음이 들었던 겁니다.

폐지를 주우며 지내는지라 집 환경이 깨끗지 않았고 연세들이 많은데다가 코로나로 인해 건강이 걱정되는 탓에 친구 분이 자신을 피하고 있었던 거지요.

구청에서 지도가 나올 정도로 환경이 좋지 않았던 것인데 정작 본인은 자신의 환경에 적응이 된 탓에 못 느끼고 있었습니다.

한동안 그 집에서 함께 생활을 한 탓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나 역시 한 번씩 가보면 건강이 걱정될 정도이니 타인들의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을 본인이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지만 어떻게 말씀드리기도 곤란합니다.

사업을 하시던 분이 그나마 자신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폐지를 주우며 생활한다는 자체가 대단한 것인데 거기에다가 또다시 청결함까지 요구하기에는 나 자신이 염치가 없는 것 같았기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잘한다고 말씀드리기도 어려운 일이기에 몇 번에 걸쳐 말씀을 드린바 있습니다.

가격을 더 받기 위해 쌓아두기보다 싼값에 제때에 처분을 해버리면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지낼 수 있음을 수차례 말씀드렸지만 처해진 환경이 그렇지 않음을 말씀하시는지라 더 이상 말씀을 드리지 않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던 차에 이번 신정연휴에 방문하게 되었고 다시 한 번 더 환경의 열악함을 확인하게 되었지요.

마당은 깨끗하게 청소가 되었지만 숟가락 하나를 사용하기가 겁이 날 정도로 먼지가 쌓여있다는 점을 볼 때 친구 분이 왜 방문을 꺼려하는지 알 수 있건만 본인이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 적응이 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친구 분의 방문이 달갑지 않다고도 했는데 친구 분이 워낙 식성이 까다롭고 성격이 깔끔하다고 나무라며 비위맞추기가 어렵다고 불만을 내비쳤는데 안타까운 마음이 절로 드는 겁니다.

이미 물질적인 어려움은 벗어났고 그렇다고 돈을 벌겠다는 욕심도 없건 만은 환경을 깨끗하게 만들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것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흔히들 보시를 물질적인 것으로만 인식하지만 타인들에게 깨끗함을 보여주는 것도 하나의 보시라는 생각을 못하고 있는 거지요.

화장을 하는 것도 자신을 예쁘게 보이려는 의도가 있지만 타인들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것이라는 어느 선사의 말씀은 일리가 있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집안환경을 깨끗하게 만들어 놓고 손님을 청하면 누군들 그 집을 가고 싶어 하지 않겠냐는 말이며 더구나 친구라면 함께 생활도 했으면 할 거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수행을 하고 깨달음을 얻는 목적이 나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타인들에게 수행의 유익함을 알리는데 있기도 합니다.

이미 어느 정도 세상의 이치를 터득하고 법문을 하는 정도가 되었다면 세상에 자신을 맞출 줄도 알아야하는 거지요.

중생심을 위해 자신의 고집을 내려놓고 세상의 눈높이에 맞추어야 되는 겁니다.

물론 반드시 이래야만 하는 법은 없습니다.

세상이 뭐라 해도 나만 만족하면 그만이라 생각하면 어떻게 살아도 무방하다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고립되는 상황에 불만을 말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 역시 그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생각합니다.

웬만하면 내 고집을 꺾고 주변 환경에 맞춰서 적당히 넘어가면 될 것을 성경의 구절하나하나를 문제 삼고 지적을 하지요.

이러다보니 교회 형제자매들과 자연스럽게 거리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거짓말을 할 수도 없다보니 나도 모르게 교회식구들과 거리가 생기게 되며 물에 기름 돌 듯 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이유로 명상 수행하는 분들과도 거리를 두고 있는 실정입니다.

수시로 입바른 소리를 해대는 탓에 어느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나 같은 경우에는 이러한 고립을 나 자신이 자초했음을 인식하고 있으며 불평불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립되려고 작정하고 하는 짓이지요.

처음부터 수행의 목적이 유명해지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평생을 물레를 저으며 살았던 까비르를 닮고자했기 때문입니다.

수행을 해도 부자로 살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영적스승보다는 가난한 삶을 즐겨하는 수행자가 되고 싶은 탓에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 같은 경우에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으며 어떤 경우에도 후회하지 않는 겁니다.

가만히 나 자신을 들여다보면 혼자서 고립된 생활을 즐긴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함께 여러 사람들과 지내는 것도 좋아하지만 또 다른 면은 고독을 즐긴다는 거지요.

이런 이유로 나와 함께 하던 이들이 나를 떠나가면 그 당장은 슬퍼하지만 시간이 조금만 흘러도 금방적응 합니다.

언제 내가 그들과 인연을 가진 적이 있나 할 정도로 차갑게 식어버립니다.

이런 까닭에 나를 원하지 않는 곳에는 가지 않고 나를 떠나는 이를 잡지도 않습니다.

가면 가는 데로 오면 오는 대로 잡지 않고 막지 않는 겁니다.

알고 보면 모든 상황은 내가 원하고 상대방이 원해서 주어지는 거지요.

따라서 본인이 현 상황을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은 신과 함께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면 정확합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못 깨달은 것이며 아직은 노력해야할 때입니다.

주변에 여러 사람들이 내 눈에 문제가 있게 보인다면 그 모든 것은 자신의 문제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세상의 모든 문제는 모두가 내 것이며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죄 많은 이는 나 자신이지요.

나는 이러한 점을 깨닫고 알고 있는 것뿐이며 다른 특별한 재주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누구도 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으며 누구도 속박하지 않는 삶을 살아갑니다.

 

 

가면 Bye bye! 오면 Welcome!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