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다.
채식동호인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난데없이 김치공장을 하게 되었고 식품라고는 만져보지도 못한 사람이 김치를 팔아야하는지라 본의 아니게 채식동호인 모임에 참석을 했던 겁니다.
원래 팔아주려던 대만본부에서는 중국과의 외교 분쟁으로 인해 팔아줄 수 없는 상황에 처해졌던 거지요.
농수산물 수입금지조치가 내린 것인데 어쩌면 이렇게도 정확한 시기에 그런 일이 발생하는지 기가 막힐 노릇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김치 견본 가방을 둘러매고 대한민국 식품업계를 두루 다니던 끝에 채식동호인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을 때 놀라운 일을 듣게 됩니다.
전국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다보니 각양각색의 직업을 가지고 있었고 채식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는데 개중에는 특별한 경험을 하신 분들이 다수 있었던 겁니다.
채식을 시작한지 불과 얼마 되지 않았는데 영적체험이 온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건강상태가 좋아졌다는 분들도 많았지요.
빛을 본 사람들도 있었고 특별한 소리를 들었다는 분들도 있었으며 불치병이 나았다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이런 다양한 경험을 듣는 순간 사람마다의 영적수준과 경험치가 다르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도 많은 채식인들은 내말을 듣고 채식이 가져오는 영적각성이 절대적이라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반드시 그렇다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타 종교에서도 영적체험은 빈번하게 일어남으로 채식만으로 영적수준을 평가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겁니다.
다만 의식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만은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나 역시 채식을 시작하고 얼마 후부터 정육점을 지나가면 사람시체를 걸어놓고 파는 것 같았지요.
뿐만 아니라 동물원에 가면 동물 속에 사람이 들어앉은 것이 보이는 바람에 힘이 들곤 했습니다.
사람에게서 냄새가 난다는 것을 이때 처음 알았는데 평소 냄새를 잘 맡지 못하는 나로서는 색다른 경험이자 견딜 수 없이 괴로운 일이었지요.
다행히 대중교통을 이용하지는 않았음으로 그렇게 힘들게 생활하지는 않았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코가 막혀있는지라 생활에 지장을 초래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체험은 시작에 불과한 것이었고 이때부터 생활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으며 세상이 멸망하는 것과 같은 일들이 내 인생에서 일어납니다.
이런 일들을 통해 창조와 멸망은 한 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성주괴공(成住壞空)의 깊은 뜻을 헤아리게 되었던 겁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할 것은 채식으로 인해 영적각성이 일어났다 해도 그것이 끝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한 영적체험에 머물게 되면 그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가 없다는 거지요.
사람들 속에 들어앉은 영체를 본다 해서 그것으로 그 사람의 영적수준이 높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는 수준에 이르기 위해서는 이러한 경계의 벽이 허물어져야하며 눈을 가려야만합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분별심이 무너져야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이유로 나 같은 경우 주변 분들에게 채식이 별거 아니라는 말을 많이 하는 겁니다.
성경은 이런 일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눅17:20)
And when he was demanded of the Pharisees, when the kingdom of God should come, he answered them and said, The kingdom of God cometh not with observation: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1)
Neither shall they say, Lo here! or, lo there! for, behold, the kingdom of God is within you.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모세오경을 믿고 따르며 율법을 중시여기고 부활이나 영혼, 천사, 영생을 믿지 않는 부류를 사두개인이라 구분 짓고 있지요.
이들은 철저하게 현실주의자들이며 물질주의자들로서 오로지 눈에 보이는 일들만 인정하고 영의 세계를 믿지 않는 이들입니다.
하지만 이들과는 달리 같은 세상을 살아가지만 자신들만이 영의 세계에 속한 이들이라고 믿는 이들을 가리켜 바리새인들이라 부릅니다.
이들의 특징은 부활과 영혼의 세계를 믿으며 물질세상과는 별개의 세상이 존재한다고 믿는 다는 겁니다.
나머지 부류는 에세네파인데 영육이 하나 됨을 주장하는 사람들로서 철저한 금욕주의자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 생활하였고 하나님과 하나 됨을 주장하며 고립된 생활을 자처했던 사람들이었지요.
예수님과 요한 및 몇몇 제자들이 에세네파라는 말이 있으며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사해의 두루마리가 이들이 작정한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사람들은 세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었는데 이러한 구분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말입니다.
스스로의 믿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본인이 어디에 속해진 사람인지 알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 가르침의 핵심을 파악하는 거지요.
하나님의 나라는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으니 육신의 눈이 아닌 다른 눈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왕국이 저 멀리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너희 안에 있다는 말씀을 하신 만큼 우리 안에 하나님이 거하고 있음을 알아야지요.
이러한 사실을 알고 나면 이미 우리자신이 성령이신 하나님을 담고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게 되어 스스로의 삶을 고귀하게 여기게 됩니다.
물론 타인이 삶도 마찬가지라는 사실도 알게 되어 타인의 삶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너와 나는 동일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가 되는 겁니다.
진정한 만물동일체의 경지가 실현되는 것이며 분별심이 무너진 상태에 이르렀다 할 수 있습니다.
가고 옴이 자유롭다는 것은 이러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며 부처 눈에 부처만 보인다는 것도 이런 뜻입니다.
만약 아직도 스스로가 특별하다 여긴다면 낮은 자이며 자신이 가난하다 여기고 타인의 삶을 부러워하는 자는 비천(萆賤)합니다.
가난하되 낮지 않으며 높아지되 특별하지 않은 자들만 들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