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목사

누가복음1.

배가번드 2019. 9. 27.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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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지난여름도 변함없이 무더웠는데 여러분들은 어떠셨는지요?

나 홀로목사는 여름동안 아주 잘 지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많은 분들이 제가 아주 시원하게 보낸 줄 아시겠지만 사실은 누구보다도 더 운 여름을 보냈습니다.

공사가 막바지에 접어들어 입주가 되기 시작한 탓에 오히려 무척 더운 조건에서 일을 해야

했지요.

입주 전에 하자보수 및 점검을 해야 함으로 실내작업이 많았는데 입주하시는 분들이 새집증후군을 없애려고 외부문은 닫은 채 히터를 틀어놓은 집들이 많아 찜통 속에서 일했습니다.

그렇게 찜통 속에서 일하다 가끔씩 외부로 나와 보면 천국 같은 기분을 맛볼 수 있었으니 천국과 지옥을 매일 경험한 셈입니다.

일하는 동안 내게 다가온 진리하나는 천국을 가려면 반드시 지옥을 경험해야한다는 거였습니다.

지옥이 없다면 천국을 알 도리가 없게 된다는 작은 진리를 얻었지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미 알았던 사실을 재차 확인했던 것이며 이런 의미로 지난여름을 잘 보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잘 못 알아듣는 이들이 생각보다는 많더군요.

지옥을 안 가보아도 천국을 알 수 있다고 말하는 이들이 가끔 있는데 참으로 딱한 노릇입니다.

자신이 어떤 지경에 처해있는지도 모른 체 막연하게 주입된 지식을 지혜로 착각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들을 위해 약간의 설명을 곁들일 필요가 있는 것 같으니 잠시 시간을 할애(割愛)하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세상이 온통 하얀색으로 되어있는 것 같으면 어떨 것 같습니까?

이럴 경우 우리들은 검은색이나 다른 색을 인식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뒤집어 말하면 하얀색을 인식하기위해서라도 반드시 검은색이나 다른 색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절대계가 상대 계를 만들어낸 도리(道理)라고도하고 음양의 이치라고도 합니다.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까?

만약 그런 분들이 있다면 그야말로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아직도 선악과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영생과를 얻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누구도 함부로 심판하지 말며 자신에게 지혜를 허락하시길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아마도 이곳까지 오신 여러분은 이정도 인식은 기본적으로 갖추고 계실 것이 분명하지만 간

혹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는지라 노파심에서 한 말씀 드렸습니다.

이미 여러 차례 말씀드렸듯이 성경 안에는 나 홀로목사의 말과 같은 내용이 담겨있는데 그것을 볼 수 있다면 영생에 다가섰다 할 것이고 아직도 보이지 않고 있다면 갈 길이 멉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을 통해 확인하였듯이 성경을 읽는 것은 다 같아도 해석에 있어서는 천차만별일 수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시는 여러분도 각자의 인생길에서 교회나 성당을 한 번씩은 다녀보았을 것이고 그곳에서 성직자들이 전해주는 성경해석을 접해보았을 겁니다.

하지만 다 같이 교회를 다니거나 성당을 다니며 신부님이나 목사님이 해주시는 성경말씀을

들었는데 불구하고 각자가 조금씩 다른 견해(見解)를 가지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르침이 잘못되었다기보다 받아들이는 인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성경말씀도 전달하는 목사님이나 신부님에 따라 얼마든지 차이가 날 수 있으며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예수님의 가르침도 제자들의 인식정도에 따라 약간씩의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우리들이 확인하였다시피 마태오와 마가역시 약간의 차이가 있었지요.

그러나 그렇게 차이점이 보인다 할지라도 근본목적인 영생은 달라질 수 없으며 여정(旅程)이 다르다하여도 결국에는 한곳(하나님의 왕국, 천국)에서 만나게 됨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누가복음역시 그러할 것으로 믿습니다.

비록 누가는 이방인이었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였으며 뭔가를 얻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렇기에 오늘날 우리에게 복음서를 남기게 되었지요.

과연 헬라인인 누가의 눈에 비친 예수님의 가르침은 어떠한 것이었는지 지금부터 성경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1:1)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1:2)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

이 좋은줄 알았노니(1:3)

Therefore, since I myself have carefully investigated everything from the beginning, it seemed good also to me to write an orderly account for you, most excellent Theophilus,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다(1:4)

 

!

여러분.

오늘도 나 홀로목사는 감탄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이 내용은 단순하게 특정한 누군가에게 전해주는 편지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위

한 가르침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위내용을 제대로 인식하려면 1,2절과 3,4절을 합쳐서 읽어야합니다.

말씀이 전해주는 느낌을 제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두 구절을 하나로 합쳐서 읽어야한다

는 거지요.

그렇게 읽어보면 번역의 오류도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됩니다.

1절과 2절을 합쳐보면 번역에 문제점이 없지만 3,4절을 합쳐보면 번역의 오류가 분명하게보입니다.

3절의 데오빌로 각하라는 명칭은 분명히 잘못된 번역이 맞습니다.

왜냐하면 데오빌로는 헬라어로서 데오(하나님)라는 단어와 빌로(사랑하는 친구)라는 단어의합성어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데오빌로 각하라고 번역한 most excellent Theophilus 는 하나님의 백성(믿는 사람) 중에 가장 우수한(신앙심이 돈독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적용시켜서 다시 한 번 더 읽어보면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여러 사람들이 깨달

음을 얻었고(1, 이루어진 사실) 그 과정을 순서대로 정리하여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남긴

이들이 많은데(2,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들다) 자신(누가)역시 신앙심이 돈독한 하나님

의 백성들에게 자신의 깨달은 바를 남기려 한다는 겁니다.(3,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핌)

그 이유는 데오빌로, 즉 신앙심 두터운 하나님의 백성이 지금껏 받아온(믿어온) 가르침이 틀림없다는 확신을 주기 위해서라는 말입니다.(4)

어떻습니까?

나 홀로목사의 입에서 감탄사가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아시겠지요.

정말 흥미진진해지는 누가복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 다 같이 이방인 누가의 깨달음의 여정을 따라가 봅시다.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 아내는 아론의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1:5)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1:6)

 

5절과 6절의 내용은 사가랴와 그 아내 되는 사람 엘리사벳에 대한 소개의 글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들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라는 겁니다.

육신으로는 의롭다할 자가 없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데 이들은 어째서 의롭다 기록되었을까요?

그 해답은 5절 내용 중에 있습니다.

아비야 반열이란 영적등급을 이르는 말로서 아비야의 뜻은 내 아버지는 야훼이시다입니다.

이 말인즉, 제사장들 중에 아비야 등급에 이른 이가 있는데 그 이름이 사가랴였다는 말이지요.

그리고 엘리사벳의 뜻은 하나님은 나의 맹세입니다.

이 역시 하나의 등급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론의 자손이라 했는데 아론은 최초의 제사장이자 상징적인 인물로 기름부음을 받은(제사

장직을 맡은)이들의 대부 격이자 대표자라 할 수 있지요.

요약해서 말하자면 두 사람 모두 영적인 사람이며 상당한 수준의 깨달은 분들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의롭다고 기록한 거지요.

이 내용은 우리들이 의로워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말씀이기도한데 여기에 대한 이야기는 길어질 수 있으므로 다음으로 미루고 본문에 집중하도록 하겠습니다.

 

엘리사벳이 수태를 못하므로 저희가 무자하고 두 사람의 나이 많더라(1:7)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제사장의 직무를 하나님 앞에 행할새(1:8)

And it came to pass, that while he executed the priest's office before God in the order of his course,

 

그렇게나 영적인 두 사람이 아이를 갖지 못한 이유는 엘리사벳이 불임이기도하였고 두 사람모두 나이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하며(7) 그런 가운데 사가랴가 그의 등급에 맞게 제사장의 임무를 행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났다고 합니다(it came to pass).(8)

어떤 일이 생겼을지 다음구절을 보시죠.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고(1:9)

he was chosen by lot, according to the custom of the priesthood, to go into the temple of the Lord and burn incense.(NIV)

According to the custom of the priest's office, his lot was to burn incense when he went into the temple of the Lord.(KJV)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기 전에 먼저 9절의 번역 문제부터 해결하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이것이 선행되지 않으면 전체내용이 완전히 의미가 달라져버리기 때문입니다.

영어성경을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KJV성경이 먼저 생겼고 NIVKJV를 토대로 만들어졌습니다.

KJV 내용 중에 일반인들이 읽기 어려운 것을 쉽게 풀이해서 적어놓은 것이 NIV성경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들은 어렵더라도 KJV성경을 봐야합니다.

그래야 원어를 제대로 옮겨놓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보시는 9절 내용은 NIV 성경을 번역해 놓은 것인데 지금부터 KJV 버전으로 옮겨보겠습니다.

먼저 제사장의 전례를 따랐다는 것은 두 성경 모두가 동일합니다만 문제는 제비를 뽑는 부분부터입니다.

제비뽑는 것을 KJV 성경에 대입해보면 제사장의 전례에 따라 그의 제비는 주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는 것이었다가 되겠지만 뭔가 어색하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그렇다면 제비에 해당하는 lot은 어떻게 해석해야 자연스러울지 생각해보겠습니다.

lot은 보통 많음을 나타내는 말이지만 전부, 모두, 다 등의 뜻과 추첨, 제비, 운명, 숙명 등의 뜻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뜻으로 대비해서 해석해보면 9절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바뀝니다.

 

제사장 직분의 전례에 따라 주의 성소에 들어갔을 때 그의 모든 것은 분향되어졌다

 

달리표현하면 제자장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이 하나님 전에 분향되어져야(바쳐져야)

한다는 말도 됩니다.

이렇게 되면 앞뒤구절과 완전하게 부합하게 되지요.

이어지는 구절은 이러한 해석이 보다 자연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1:10)

And the whole multitude of the people were praying without at the time of incense.(KJV)

And when the time for the burning of incense came, all the assembled worshipers were praying outside.(NIV)

 

이 내용 역시 NIV를 해석했는데 KJV를 보면 제사장의 신분인 사가랴와는 달리 일반 백성들은 분향함이 없이(without at the time of incense)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을 하나님께 완전히 드리는(분향) 기도를 하지는 않았다는 거지요.

이것을 달리 표현해보면 사가랴는 자신의 내면(성전)으로 들어가 하나님 만나는 방법을 알았지만 일반인(하나님의 백성)들은 바깥에서(외형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겁니다.

사가랴는 백성들과는 달리 자신내면으로 들어가(주의성소, 성전)기도(묵상, 명상)했기 때문

에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났던 겁니다.

 

주의 사자가 저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선지라(1:11)

And there appeared unto him an angel of the Lord standing on the right side of the altar of incense.

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니(1:12)

And when Zacharias saw him, he was troubled, and fear fell upon him.

 

11절에 향단 우편에 나타났다는 것은 사가랴가 만난천사가 정말 하나님의 사자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11)

에너지의 흐름을 보면 오른쪽은 긍정의 힘이자 정의로움을 나타내고 왼쪽은 부정의 힘이자 불의함을 나타냅니다.

성경 여러 곳에서 오른쪽을 강조한 까닭은 하나님은 항상 정의롭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자 사가랴는 놀랄 수밖에 없었는데(12) 과연 하나님의 사

자는 무슨 말을 했을 런지요.

 

천사가 일러 가로되 사가랴여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1:13)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남을 기뻐하리니(1:14)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

함을 입어(1:15)

For he shall be great in the sight of the Lord, and shall drink neither wine nor strong drink; and he shall be filled with the Holy Ghost, even from his mother's womb.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니라(1:16)

And many of the children of Israel shall he turn to the Lord their God.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

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1:17)

And he shall go before him in the spirit and power of Elias, to turn the hearts of the fathers to the children, and the disobedient to the wisdom of the just; to make ready a people prepared for the Lord.

 

13절 내용을 보건데 사가랴는 평소 자식 얻기를 무척 원했던 것 같습니다.

비록 나이는 들었어도 자식을 얻으려 무척 노력했음을 알 수 있지요.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아들의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는 겁니다.

요한의 뜻은 아버지는 은혜로우시다입니다.

아버지로부터 은혜를 입었으니 사가랴도 기뻐하고 모든 사람들도 기뻐할 수밖에 없지요.(14)

이렇게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은 사람은 하나님보시기에 큰사람임으로(For he shall be

great in the sight of the Lord) 포도주나 정신을 흐리게 하는 것들을 마시지 아니하며 늘

성령으로 충만해져있다고 합니다.(he shall be filled with the Holy Ghost)

뿐만 아니라 모태에서부터 성령이 충만했다고 하니 이미 완전한 영이 태어난다는 말입니다.

(15)

그러니 많은 이스라엘백성들을(And many of the children of Israel)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게 할 수 있지요.(shall he turn to the Lord their God)

이 말인즉 영적스승이 된다는 겁니다.(16)

17절을 보면 요한이 영적 스승이 된다는 것을 보다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준비되어진 이들을 예비하도록 만든다고 했으니(make ready a people prepared for the Lord) 이보다 더 확실하게 묘사할 수는 없습니다.

요한은 요한대로 영적스승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지 예수님을 소개시키거나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지요.

이미 수차례 말씀드렸듯이 이러한 내용이 제대로 해석되지 않으면 예수님만이 유일하게 하

나님과 하나 된 분이 되며 이 세상을 다녀간 누구도 하나님과 하나 될 수 없으며 앞으로도 될 수 없게 되고 맙니다.

이래서는 성경을 제대로 받아들인다고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예수님제자라

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저 우상숭배자의 한사람 일뿐이지요.

여기까지 오신 여러분 중에는 이런 분들이 없으리라 믿으며 한걸음 더 나아가겠습니다.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 많으니이다(1:18)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하나님 앞에 섰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입었노라(1:19)

보라 이 일의 되는 날까지 네가 벙어리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내 말을 네가 믿지 아니함이어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리라 하더라(1:20)

 

위의 내용은 믿음의 중요성에 대한 가르침이라 할 수 있습니다.

18절을 보면 사가랴가 천사의 말을 못 믿어 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사가랴가 못 믿는 것을 말하려고 기록한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우리가 이 내용을 못 믿어할 것을 염려하여 기록한 내용이지요.

19절과 같이 사가랴에게 나타난 가브리엘이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입은 천사라는 사실

을 우리가 믿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가 보지 않은 사실인데 믿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지요.

앞에서도 잠시 언급이 있었듯이 우리육신이 성전이고 성전 안에서 볼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보면 이 내용은 충분히 믿을 수 있습니다.

가브리엘의 뜻은 하나님의 영웅인데 이는 사가랴의 영혼으로 볼 수도 있고 하나님의 사자

로 봐도 무방하며 하나님의 품성이라 해도 상관없습니다.

서두에서 언급하였듯이 사가랴는 이미 하나님의 아들(아비야 반열)의 등급에 도달해있는 인

물이니 자신의 영혼을 볼 수 있었던 겁니다.

이곳을 방문하시는 여러분들께 말씀드리지만 나 홀로목사 역시 이 비슷한 경험을 했었습니다.

처음 제가 이런 일을 당했을 때 너무나 황당하고 당혹스러워 말을 할 수가 없었지요.

누가 이런 일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저 벙어리처럼 입을 닫고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20)

바로 이러한 일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말문을 닫아버린 사가랴에게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는지 궁금합니다.

 

백성들이 사가랴를 기다리며 그의 성소 안에서 지체함을 기이히 여기더니(1:21)

그가 나와서 저희에게 말을 못하니 백성들이 그 성소 안에서 이상을 본 줄 알았더라 그가 형용으로 뜻을 표시하며 그냥 벙어리대로 있더니(1:22)

And when he came out, he could not speak unto them: and they perceived that he had seen a vision in the temple: for he beckoned unto them, and remained speechless.

그 직무의 날이 다 되매 집으로 돌아가니라(1:23)

And it came to pass, that, as soon as the days of his ministration were accomplished, he departed to his own house.

 

백성들이 제사장 사가랴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난 줄 알게 된 것은 말문을 닫은 채 손짓

만하기 때문이었습니다.(for he beckoned unto them, and remained speechless)

그도 그럴 것이 제사장의 직분이란 하나님과 백성사이에 중보자로서 메신저 역할인데 말을 않고 손짓만으로 의사전달을 하니 이상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사가랴가 이렇게 행동한데는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다음을 보시죠.

 

이 후에 그 아내 엘리사벳이 수태하고 다섯 달 동안 숨어 있으며 가로되(1:24)

주께서 나를 돌아 보시는 날에 인간에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 하더라(1:25)

Thus hath the Lord dealt with me in the days wherein he looked on me, to take away my reproach among men.(KJV)

"The Lord has done this for me," she said. "In these days he has shown his favor and taken away my disgrace among the people."(NIV)

 

사가랴가 벙어리가 되도록 만든 것은 하나님께서 엘리사벳의 부끄러움을 없애주기 위해서라

고 했습니다.

이 내용을 인간적인 측면으로만 보면 나이도 많고 제사장의 신분인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임신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사람들 사이에서 비난이나 망신거리가 될 수도 있으므로 그것을

없애기 위해 (to take away my reproach among men) 벙어리행세를 했다는 말도 됩니다.

왜 나 홀로목사가 이렇게 말을 하는가 하면 누가는 이 내용을 쓸 때 뭔가 목적을 가지고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누가의 목적을 알 수 있습니다.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1:26)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1:27)

 

사가랴에게 나타났던 천사 가브리엘이 처녀의 몸인 마리아에게도 나타났다고 합니다.

모두들 아시다시피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이지요.

이렇게 가브리엘이 나타났을 때는 뭔가 이유가 있을 겁니다.

함께 들어보겠습니다.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하시도다 하니(

1:28)

And the angel came in unto her, and said, Hail, thou that art highly favoured, the Lord is with thee: blessed art thou among women.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1:29)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1:30)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1:31)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군요.

가브리엘이 마리아의 몸 안으로 들어가 말해주었다고 합니다.(the angel came in unto her, and said)

주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 받았다고 했지요(he Lord is with thee: blessed art thou among women)하나님 믿는 사람으로서 이보다 더 큰 축복의 말씀은 없을 겁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놀라워했는데(29)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동정녀인 마리아가 임신을 하

고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소식이었습니다.

게다가 예수라는 이름까지 정해주었으니 얼마나 놀라웠겠습니까.

그런데다가 이아이가 보통아이가 아니라고 말해줍니다.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1:32)

He shall be great, and shall be called the Son of the Highest: and the Lord God shall give unto him the throne of his father David:

 

여기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다윗의 위를 준다고 했는데 여기에서의 위는 다윗보다 위가 아니라 다윗의 왕권(the throne of his father David)이라 해야 옳으며 아래위의 위가 아니라 직위를 나타내는 위()입니다.

멜기세덱의 반차에 오른 다윗과 동등한 등급에 오른다는 의미이지요.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나 홀로목사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1:33)

And he shall reign over the house of Jacob for ever; and of his kingdom there shall be no end.

 

야곱은 이스라엘 12지파의 아버지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진 인물입니다.

그러므로 이 내용은 예수님이 이스라엘백성들(하나님을 믿는사람)의 왕 노릇을 할 것이며 그 나라가(하나님의 나라) 영원할거라고(his kingdom there shall be no end)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축복의 말에 마리아는 거듭 놀라고 있지요.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1:34)

 

당연히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대해 천사 가브리엘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1:35)

And the angel answered and said unto her, The Holy Ghost shall come upon thee, and the power of the Highest shall overshadow thee: therefore also that holy thing which shall be born of thee shall be called the Son of God.

 

성령이 임하게 되면 (The Holy Ghost shall come upon thee) 최고의 권능에 힘이(the

power of the Highest )아이를 출산케 해준다고(shall be born of thee) 합니다.

그러면서 이러한 기적이 미리 일어났음을 말해줍니다.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1:36)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1:37)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 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1:38)

 

!

여러분!

확인하셨습니까?

누가는 분명히 목적을 가지고 이 내용을 기록했음을 알 수 있는데 엘리사벳과 사가랴 사이에서 태어난 요한이나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예수님이 보통아이들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하고자했지요.

그런 이유로 이 내용은 마리아가 동정의 몸으로 예수님을 낳았다고 볼 것이 아니라 비록 신

체적인 접촉으로 임신을 하였다 해도 예수님의 영혼은 다르다는 것을 나타내기위해 기록한

것으로 봐야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누구도 예수님과 같아질 수는 없으며 성경에 기록된 내용 또한 거짓이 되고 맙니다.

아직도 동정녀가 수태를 할 수 있다고 믿고 싶은 분들을 위해 비슷한 상황을 기록한 마태복음내용을 보여드리고자합니다.

함께 보시죠.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

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1:18)

Now the birth of Jesus Christ was on this wise: When as his mother Mary was espoused to Joseph, before they came together, she was found with child of the Holy Ghost.

 

이제 뭔가 보입니까?

이 내용만으로 보면 마리아가 동거하기(결혼)전에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성령의 아이(child of the Holy Ghost)라는 부분만 빼면 영락없는 혼전임신이지요.

이 내용을 보았기 때문에 누가는 좀 더 살을 보태어 구체적으로 묘사했던 겁니다.

누가복음 첫 시작에 여러 사람의 기록을 자신이 보았다고 말해놓았으니 나 홀로목사의 말은 증명이 되는 셈입니다.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마태오는 예수님의 직계제자이고 누가는 바울의 제자이자 이방인이었으니 예수님을 본 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누가는 요한과 예수님 같은 분이 성령으로 인해 태어났음을 강조하기위하여 그렇게 기록한 것이 맞습니다.

그러면 누가는 마태복음의 어떤 부분을 보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록했을는지 마태복음의 나머지 부분을 보도록 하지요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1:19)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1:20)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1:21)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1:22)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1:23)

요셉이 잠을 깨어 일어나서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 왔으나(1:24)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1:25)

 

누가는 마태복음과는 방향을 달리해서 표현했지만 거의 비슷한 내용으로 예수탄생의 비밀을 말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이미 이 내용에 대해서는 마태복음 2편에서 상세하게 해석해놓았으니 참조하시고 더 이상여기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덧붙여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성경을 액면 그대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이제 우리에게 환상에서 깨어날 것인지 아니면 계속해서 미망의 세계에 머물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처녀가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지금즉시 이곳에서 떠나야하며 다시는 이곳을 얼씬거려서는 안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나 홀로목사와 함께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며 이곳을 기웃거려봐야 얻을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서로에게 불필요한 사람이므로 인연을 이어갈 이유가 없지요.

부디 다음시간에는 이런 사람들이 오지 않기를 바라며 누가복음의 첫발을 여기서 잠시 멈추었다가 다음시간에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