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2.
나 홀로목사와 함께 하는 성경강해시간입니다.
계절은 벌써 겨울을 향해 치닫고 있으며 영생을 향한 우리의 여정도 점점 더 깊어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자주 글을 올리지 못한 점 무척 죄송스럽게 여깁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들께 고백하건데 한편을 올리는 것이 그렇게 쉽게 되지를 않습니다.
언젠가 말씀드렸듯이 깊은 내면에서의 울림이 없으면 성경에 담긴 뜻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글을 쓸 수가 없게 됩니다.
조금이라도 외적인데 관심을 기울이거나 딴 짓을 하게 되면 눈이 가려져버리기 때문에 한동안 깊은 명상시간을 가져야합니다.
얼마 전 새로운 직장 따라 이사를 해야 했고 추석명절을 쉬는 동안 여기저기 돌아다니느라 바쁘다보니 성경에 집중할 수가 없었지요.
그러다보니 그저 컴퓨터 앞에 멍 때리고 앉아있는 시간이 많았으며 잡다한 세상일에 관심을 두는 일이 많았는지라 이래저래 성경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가 결국 지난주일요일 청주교회를 다녀오고서야 성경을 펼쳐보게 되었습니다.
명상센터에 가면 명상에너지가 느껴지듯이 교회에서는 성령의 에너지가 있기 마련입니다.
신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성령이 있기 마련이지만 세상일에 지나친 관심을 기울이게 되면 성령은 깊이 들어가 버리고 육신을 움직이는 것은 두뇌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나 홀로목사는 일요일이면 명상을 통해 내면의 성령을 만나거나 교회를 가서 성경말씀 속에 역사하시는 성령을 확인하곤 합니다.
이번에도 역시 청주교회에서 들려주는 성경말씀 속에서 성령을 확인하였는바 여러
분과 공유하는 것으로 오늘의 성경강해를 시작하겠습니다.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오(딤6:15)
Which in his times he shall shew, who is the blessed and only Potentate, the King of kings, and Lord of lords;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찌어다 아멘(딤6:16)
Who only hath immortality, dwelling in the light which no man can approach unto; whom no man hath seen, nor can see: to whom be honour and power everlasting. Amen.
기약이 이르면 한 것은 때가 되면(Which in his times he shall shew) 이라는 말이지요.
여기에서 때는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언제 나타나실까요?
저기 누군가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돌아오신다고 했으니 그분이 오실 때가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것
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예수 재림을 기다려야합니다.”
그러면 16절에서 하나님은 아무도 보지 못하였고(no man hath seen) 볼 수도 없는 자(nor can see)라 한 것은 어찌된 일인지요?
예수님이 만약 하나님이라면 본 사람이 아무도 없어야하지만 우리들이 알다시피 제
자들 중 많은 이들이 보았을 뿐 아니라 함께 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계실 때는 인간의 모습으로 있었기에 아직은 완전한 하나님
의 모습이 아니었지만 부활하신 후 하나님 우편에 앉아있다 내려오실 때는 완전한
하나님 모습으로 나타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해를 해도 크게 오해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알파요 오메가란 말이 성경어디엔가 있는 줄 아는데 어찌 예수님이 인간일 때는 하나님과 완전한 하나가 못되었다가 하나님우편에 앉았다가 내려오면 하나님이 된다는 말인지요.
하나님은 태초부터 하나님이며 불변하는 존재인데 어찌 덜 이루어진 하나님이 있고
완전하게 이루어진 하나님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하나님 우편에 앉아있는 예수님이 이 땅에 내려오면 우편은 비워두어야 합니까?
“그야 우리들을 구원한 후 금방 올라가면 되지요.”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 말이 안 나옵니다.
하나님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군요.
하나님의 특징이 무소부재(無所不在)하고 편재(遍在)하시며 전지전능(全知全能)하
다고 하는데 어떻게 올라가고 내려가는 일이 있을 수 있는지요.
말 그대로 무소부재란 있지 않는 곳이 없다는 말이니 어디에도 있다는 것이고 편재
란 널리 퍼져있다는 말이며 전지전능이란 무엇이던 다 알고 무엇이나 못하는 것이 없다는 말인데 뭐가 답답해서 올라가고 내려간다는 말입니까.
이 같은 사실을 알고 나면 15절에 기약이 이르면 한 것은 우리들이 하나님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될 때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만왕의 왕이라(the King of kings) 했으니 국가가 다르고 종교가 다른 국가
의왕이라 할지라도 그들을 움직이는 왕은 하나님이라는 말이지요.
또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능하신 자라 했는데 이는 잘못된 번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who is the blessed and only Potentate)
복되다는 말은 인간에게나 어울릴 말이지 하나님께 어울리는 말은 아닙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신성하고 유일한 주권자(主權者)라 번역해야 격에 맞습니다.
그 뒤에 이어지는 만주의 주(Lord of lords)라는 대목은 정말 중요합니다.
소문자로 표기된 lord는 사람들의 영혼을 가리키며 대문자 Lord 는 하나님을 가리
키지요.
이 말인즉 모든 사람들의 영혼을 다스리는 이는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누군가 자신의 영혼이 하나님이라 여긴다면 그 영혼은 앞서 말한 조건을 충족할 수
있어야하며 자신에게만 머물러서는 그저 개인의 영혼일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16절을 보게 되면 하나님에 대해 보다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Who only hath immortality) 했으니 죽거나 살아나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이 말을 음미(吟味)해 보게 되면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이 충족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석되어야할까
요.
예수님의 육신이 아니라 예수님 육신 안에 거하는 성령이 완전히 드러내질 때 예수님은 육화된 하나님이 되는 겁니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로서 누군가 제3자가 확인할 수 없다는 내용이 다음에 이어집니다.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도 보지 못하였고 볼 수 없다 했으니(dwelling in the light which no man can approach unto) 빛이 하나님이라는 말이며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영안(靈眼)안으로만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이제 하나님의 실체에 대해 알게 되셨지요.
아직도 부족한 점이 있다면 다음내용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요1서1:5)
This then is the message which we have heard of him, and declare unto you, that God is light, and in him is no darkness at all.
저에게서 들었다는(This then is the message which we have heard of him) 말은 예수님께 들었다는 말이지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하나님은 빛이라고(that God is light) 말씀하셨다는 겁니다.
이제는 믿어지시리라 믿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는 순간 누군가 또 손을 드는군요.
“오늘 우리들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실체는 빛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그렇
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우리생활상에서 만날 수 있는지요?”
좋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나 홀로목사와 함께 하는 여러분이 이미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을 통해서 확인했다시피 자신 안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깊은 묵상(명상)이나 기도 속에서 만날 수 있기도 한데 주변에 빛을 보았다는 분들
이 바로 하나님을 만났다고 볼 수 있지요.
종교와 관계없이 이런 분들이 세상에는 많습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볼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세상일에 너무나 관심이 많기 때문이며 아직 연극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 말씀은 몇 번하셨기에 잘 알고 있습니다만 명상이나 기도를 하지 않고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요?”
당연히 있지요.
제가 답변을 드리기 전에 예수님제자이신 요한을 통해 역사하신 성령의 음성을 들어보겠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요1서:15)
Whosoever shall confess that Jesus is the Son of God, God dwelleth in him, and he in God.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요1서4:16)
And we have known and believed the love that God hath to us. God is love; and he that dwelleth in love dwelleth in God, and God in him.
시간이 허락하면 요한1서 전체를 읽어보면 좋겠지만 시간관계상 오늘은 약식으로
간단하게 읽어보겠습니다.
요한1서 전체내용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라 할 수 있는바 이
글은 당연히 크리스천들에게 해당되는 내용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하나님의 실체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다고 한다면 종교가 다르다할지라도 이미 크리스천이라 할 수 있지요.
그런 의미로 15절 첫 부분에 누구든지(Whosoever)라고 기록했는데 세상을 살아가
는 누구라도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한다면 하나님과 하나 될 수 있음을 말
해놓았습니다.
이 내용을 달리표현하자면 예수가 빛이신 하나님의 품성과 마찬가지의 빛이 드러난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면(인정한다면) 그 사람 또한 빛과 함께 하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빛, 성령)이 저(예수님이 성령을 드러낸 분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안에 거하신다는 말이며 또한 그 사람 자체도 빛이신 하나님 안에 거한다는 말입니다.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될 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지요.
우리가 하나님의 일부분이자 자녀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지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
진 사랑을 알고 믿게 된다는 겁니다.(we have known and believed the love that
God hath to us)
이러한 자각은 하나님이 곧 사랑(God is love)이심을 알게 되니 사랑 안에 거하는
자의 마음 안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게 됩니다.
이 말인즉 우리들이 평소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그 마음속에 하나님이 거하고 있다는 말이지요.
너무 쉽지 않습니까.
남을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는 자체만으로 하나님의 훌륭한 자녀가 된다는 말이며 우리가 하나님을 깨닫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태여 교회를 가지 않아도 되지 않습니까?”
당연히 그러합니다.
“그렇지만 당신은 서두에 말씀하시길 교회를 다녀오고서야 성경을 펼쳐보게 되었다
고 했습니다.
그 말씀은 교회를 가거나 명상을 해야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말로 들립니다.”
그렇게 들렸다면 그 말도 맞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모든 종교)를 가거나 명상하지 않고서는 성경을 들여다보거나 하나
님(신)을 생각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를 가지 않고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성경말씀대로 살아간다면 구태
여 갈필요가 없겠지만 그렇지 못한지라 교회를 가야만하고 명상을 해야만 하는 겁니다.
자신이 평상시 언행이 하나님말씀에 합당하다면 교회를 가거나 명상할 필요가 없겠지요.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종교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누구라도 사랑하는 마음만 가지고 살아가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종교가 생겼으며 각자의 인연에 따라 신앙생활을 해나가는 거지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종교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찾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그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와 요한 같은 분들이 우리에게 그 해답을 비유로서 남겨놓은 것을 나 홀로목사가 여러분과 함께 파헤치고 있는 거지요.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방법 중에 한 가지가 바로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랑에는 수없이 많은 사랑이 있는데 어떤 사랑을 해야 하는지요?”
사랑을 구분 짓고 나누게 되면 수없이 많은 사랑이 있겠지만 대상을 아끼고 감싸주
는 행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로 귀결됩니다.
하나님의 눈에는 그 모든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에는 하나님이 거하고 있다했으니 교회를 가지 않아도 사랑하는 마음
만 늘 가질 수 있다면 뭐가 걱정이겠습니까?
다만 항상 사랑할 수 없음이 문제일 뿐이지요.
누구든지 사랑한다면 그 마음에는 하나님이 살고 있음이 확인되었으니 여러분은 오
늘부터 사랑하고 사랑을 베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한 말씀 덧붙이지면 사랑을 하되 상대방을 힘들게 하거나 아프게 만들어서는 곤란합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는 노래가사도 있듯이 어떤 경우에도 상대방을 다치게 하거나 아프게 만든다면 그것은 사랑을 가장한 폭력입니다.
내가 모르는 사이 상대방이 아파하는 경우에는 모르겠지만 뻔히 상대방이 힘들어하는 것을 알고도 자신의 사랑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거지요.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어떠해야한다는 것을 성경을 기록하고 있으니 그 내용을 보며 오늘강해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사랑은 투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교만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고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고
사랑은 성내지 아니하며
사랑은 악한 것은 생각지 아니하며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사랑은 모든 것을 믿으며
사랑은 모든 것을 바라고 견디느니라.
-고린도전서 13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