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누구의 편도 아니다.
본시 경전(經典)이라 하면 사람에게 세상의 이치(理致)와 도리(道理)를 가르치는 책을 가리킵니다.
성경, 불경, 코란, 등이 모두 경전이며 그들 모두는 내용이 비슷하거나 동일한 부분이 많습니다.
액면의 가르침이 다른듯하지만 속 깊은 내용은 모두가 동일한 것입니다.
하늘의 이치와 인간의 도리가 종교와 경전을 달리한다해서 틀려질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성경을 제대로 들여다보면 타종교의 교리를 모두 이해할 수가 있으며 타종교의 진리의 말씀이 성경에 맞지 않는다면 타종교의 경전을 잘못 받아들였거나 성경을 잘못 해석한 겁니다.
아마도 각 종교에 속한 사람들은 내말을 올곧게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며 자신이 믿는 종교의 신이 최고의 신이라 주장할거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각종교의 경전은 모두가 사람으로 하여금 신과 하나 되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슬람교도들의 경전은 코란이며 코란은 알라신의 계시를 무함마드가 옮겨 적어놓은 것입니다.
성경 식으로 표현하면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를 모세오경을 통해 기록한 것과 같은 거지요.
알라는 아랍어로 하나님을 뜻하며 코란은 유대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원뿌리는 하나라고 볼 수 있는 겁니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이 삼대종교의 성지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유대교와 기독교(크리스천), 이슬람교 모두가 예루살렘을 성지로 여기고 있는데 이것 한가지만으로도 모든 종교의 마지막은 하나로 귀결됨을 알게 됩니다.
예루살렘의 뜻은 “평화의 터전”으로 성전을 뜻합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거하는 곳이라는 점만 인식하게 되면 지금 당장 세 종교는 화합을 하고 손을 마주잡고 형제임을 인정할겁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같은 성지에서조차 분리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유대교는 통곡의 벽을 성지로 여기고 기독교도들은 예수님이 탄생한곳을 성지로 여기고 있으며 이슬람교도들은 무함마드가 승천한곳을 성지로 여기고 있지요.
유대교는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창시자격인 무함마드와 예수를 하나님과 동일하다 여기지 않고 있으며 이슬람과 기독교도 서로의 신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조차 분리를 하고 반목을 하고 있는 꼴입니다.
이게 바로 이 세상에서는 완전함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며 에덴동산에 둘러쳐진 불 칼과 케루빔을 넘어서지 않고서는 영생에 이를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이렇게 각종교가 이러한 분리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해결책이 무엇인지를 성경을 통해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창3:22)
And the LORD God said, Behold, the man is become as one of us, to know good and evil: and now, lest he put forth his hand, and take also of the tree of life, and eat, and live for ever: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창3:23)
Therefore the LORD God sent him forth from the garden of Eden, to till the ground from whence he was taken.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 내시고 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3:24)
So he drove out the man; and he placed at the east of the garden of Eden Cherubims, and a flaming sword which turned every way, to keep the way of the tree of life.
같은 하나님을 믿는 3대종교인들이 서로 자신이 하나님의 적자(嫡子)됨을 주장할 때 하나님은 누구의 편을 들어야할까요.
십자군 전쟁으로 서로를 원수로 여겼고 오늘날에도 죽이고 죽는 역사를 반복하는 이들을 향해 하나님은 어느 쪽이 선하고 어느 쪽을 악하다 말하겠냐는 말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역사이래로 하나님이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편들었던 적이 없음을 압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이 삼라만상을 지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대교나 이슬람교, 기독교도들 모두는 하나님의 다 같은 자녀인지라 어느 한쪽 편에 설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에덴동산에는 영원히 살게 하는 생명과가 있다고 합니다.(22절)the tree of life, and eat, and live for ever
액면 적으로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걸로 묘사되어있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에덴동산으로 돌아가면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에덴의 뜻이 광야, 평평한 땅, 비옥한 들, 즐거움, 등이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무턱대고 돌아가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평정되어야함을 알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원수 같고 내가 선하고 너는 악하다는 마음으로는 평정상태가 유지될 수 없음을 생각해볼 때 선악의 경계가 허물어져야한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23절에서 에덴동산에서 쫓아내 근본 된 토지를 갈게 한다는 것은 물질적 삶을 뜻하는 것으로 영적인 세계에서 이 세상으로 내려온 것을 뜻합니다.
땅에서 나서 땅으로 돌아갈 때까지 역할에 충실해야한다는 말입니다.(to till the ground from whence he was taken)
다시 말해 영혼이 육신을 입게 됨으로 인해 약육강식의 세상법칙에 따라 살아가야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거지요.
이러한 무지한 마음에 성령의 가르침이 뿌리내리면 원래 우리가 있었던 에덴동산을 기억하고 영생을 얻고자 노력하게 되는 겁니다.
그렇지만 무턱대고 영생을 얻게 되지는 않으며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에덴동산 동편에 두루 도는 화염검(불칼)과 케루빔을 넘어서야합니다.
동쪽이란 해 뜨는 곳을 가리키며 성령이신 빛을 불칼(a flaming sword)에 비유했습니다.
성령을 깨달아야 영생을 얻을 수 있음을 이렇게 묘사한거지요.
그리고 케루빔은 지천사(智天使)로도 불리고 아기천사로도 불리는 존재입니다.
지혜로운 천사라고 볼 수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의미로 성령을 형상화시킨 겁니다.
선악의 경계가 내적으로 완전히 허물어진 상태에 이를 만큼 지혜로워야한다는 뜻이며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을 가져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거지요.
또한 이 내용은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영혼이 지혜안을 열어 빛을 보게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어떤 해석도 성령을 깨달아 영생을 얻는데 도움을 준다면 가능하다는 말입니다.
아마도 어떤 이들은 어떻게 성경해석이 동시에 여러 가지로 나올 수 있느냐를 지적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사람들은 왜 이 세상에 이처럼 많은 종교와 종파가 있는지를 나에게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왜 산을 오르는 길이 여러 가지인지도 말해주기 바랍니다.
나는 지금 정상을 향해 산행을 시작하는 여러 사람들에게 산꼭대기를 올라가는 방법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겁니다.
이 길도 저 길도 모두가 정상을 향하는 길이며 도착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위로 향해 올라가기만 하면 정상에 도달할거라는 점을 말하고 있는 거지요.
정상은 빛의 몸으로 된 존재들로 가득하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는 것뿐입니다.
영생이 인생의 목적된 자들만 들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