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인간사 새옹지마(塞翁之馬).

배가번드 2023. 5. 12. 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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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에 계시는 어머니 면회를 다녀왔습니다.

거리상으로는 그리 멀지 않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해야하는지라 세 시간 이상 걸려서 도착했지요.

지난번에는 버스에서 내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지나가는 택시가 있어서 쉽게 다녀왔지만 이번에는 많이 헤매야했던 겁니다.

그렇지만 결국에는 면회를 했고 목적한 바를 이루었습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은 이 순간 내게는 참이 되고 있었지요.

일반적으로 이럴 경우에는 다들 신의 뜻이 아닌 걸로 생각하기 쉽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이모두가 신의 뜻입니다.

처음 면회를 예약한 시간은 10시30분이었지만 정확하게 50분경에 도착을 했으니 많이 늦은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요양원의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서 수리를 해야 했는지라 오히려 미리 도착한 셈이었던 겁니다.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여기저기 전화를 해가며 교통편을 알아보았고 우여곡절을 겪은 후에 늦게 도착했지만 목적달성을 했던 거지요.

전날부터 인터넷을 통해 가장 효율적인 루트를 알아놓았고 그대로 실행을 했는데 착오가 생긴 것이었습니다.

시골이라 택시가 오랫동안 오지 않는다는 것을 계산에 넣지 않았던 탓에 약속된 시간보다 늦게 도착했지만 이조차도 신의 정확한 안배 속에 있었음을 확인했던 겁니다.

우리들은 보통 이런 경우 자신의 상황을 비관적으로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스스로의 판단을 나무라는 것을 넘어서 자신주변의 환경까지 비난합니다.

효율적인 루트라는 것이 결국에는 돈과 결부가 됨으로 돈을 아끼려는 마음 탓을 하게 되며 부자이지 못한 자신을 탓하게 됩니다.

처음부터 택시를 타고 갔거나 자가용이 있었다면 이런 일을 겪지 않아도 된다 생각하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자신 안에 거하는 신을 탓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는 거지요.

이러한 원망의 마음은 자신의 삶을 만족하지 못하게 만드는 동시에 신의 역사하심을 거부하는 행위가 됩니다.

처음 출발을 할 때부터 택시를 대절했더라면 좀 더 일찍 도착할 수 있었겠지만 이미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있었기 때문에 어차피 정시에 면회를 할 수 없었던 겁니다.

내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신이 엘리베이터를 고장 낸 것인지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서 내가 늦도록 만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신은 내 목적을 달성하게 만든 것만은 틀림없었지요.

신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미 이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니 택시를 늦게 잡은 것에 애타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나 같은 경우 이러한 일에 대해 매일같이 경험하다시피 했으므로 늦다고 해서 그렇게 애를 태우지는 않았습니다.

오토바이로 출근을 할 때마다 항상 생각하는 것이 이러한 일이었던 겁니다.

누군가 끼어들기를 할 때면 신께서 나로 하여금 천천히 가라는 신호를 주시는 거라 생각하며 상대방을 원망하는 마음을 눌러왔습니다.

조금 더 일찍 가려다가 영원히 일찍 가는 수가 있다는 점을 아시는 신께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끼어들도록 만들었다 생각합니다.

이렇게 훈련이 되다보니 언제나 나에게 주어지는 시간에 대해 숙고(熟考)를 하게 됩니다.

이 상황을 주신 신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돌아오는 길에도 이 같은 내 생각은 여지없이 실현이 되었지요.

이상하게 택시가 오지 않는지라 어쩔 수 없이 한참을 걸어 내려와야 했으며 마을버스를 겨우 얻어 타고 목적지와는 거꾸로 올라간 후 택시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요행히 마을버스기사님이 편의점에서 무엇인가를 사서 나오는 바람에 읍내로 들어가 돌아오는 차편을 만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버스기사님 말씀이 너무나 재미있었지요.

자신의 버스를 내가 탄 것도 인연이라는 말과 함께 요양원을 가장 쉽게 오는 방법을 말해주었는데 묻지도 않는 말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습니다.

경상도 억양을 듣고 동질감을 느꼈는지 한 법문 길게 하셨던 겁니다.

솔직히 이분이 말하지 않더라도 이미 내 마음으로는 어머니 면회를 온 것이 아니라 여행을 왔다 생각하기로 마음먹었으며 차를 타기 위해 걸어야했던 것도 산책이라 여기고 있었지요.

차를 타고 오가는 중에 길에 피어있는 꽃들을 보았고 시골의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었으니 그 자체만으로도 얼마든지 좋은 여행길이라 생각할 수 있는 일입니다.

사실 이번 면회 길에서 내가 생각했던 점은 따로 있습니다.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하는 나를 보고 우리의 처지를 생각하며 인생을 생각해야만 했던 겁니다.

이성적 판단보다는 육적인 본능에 가까운 생각으로 자신을 데려가 달라는 어머니의 요청을 들어줄 수 없는 내 처지를 생각하는 동시에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보았으며 인생길 전체의 마지막을 생각하게 되었지요.

평상시 어머니 같으면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고 자식의 입장을 고려하여 데려가 달라는 말씀을 하시지는 않을 것인데 오로지 자식을 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만 하다 보니 차에다 몰래 자신을 싣고 가라는 말씀만 되풀이하셨습니다.

혼자 일서서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가족들과 함께 지내게 되면 온가족을 힘들게 한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한 채 어린양을 하는 통에 한쪽마음이 무거워졌던 것은 맏이로서의 책임을 통감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것은 어머니께서 치매를 앓고 있는 환자라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무슨 병원이 일 년이 넘는 동안 먹을 거라고는 주지 않는 다는 말씀이 불효자의 무거운 마음을 가볍게 해주었던 겁니다.

삼시세끼는 물론 하루 두 차례 간식까지 챙기는 것으로 알고 있건만 어머니는 먹었다는 기억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신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에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말이지요.

그렇지만 가끔씩은 이성적인 판단을 하여 자는 듯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합니다.

가끔씩 제정신이 돌아올 때가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떠나실 때는 아닙니다.

세상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는지라 쉽게 떠나지는 못할 거라는 말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식에 대한 미련과 집착이 많아서 감히 떠날 생각을 않고 있습니다.

항상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길 내가 어떻게 낳은 자식인 데를 되풀이 하며 팔공산에서 정성을 들였음을 강조합니다.

아직 자식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며 세상에 미련이 남았다는 말이지요.

이러한 까닭으로 어머니는 하나님에게 자신을 데려가 달라고 기도를 않는 겁니다.

그저 잠이 안 올 때면 알파벳을 외우거나 성경목차를 노래할 뿐입니다.

언젠가 답답한 마음에 하나님에게 데려가 달라 기도하라 말씀드렸을 때 전화를 끊어 버린 것은 아직 세상을 떠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제는 잠이 많아져 밤잠을 설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누군가 말하길 돌아가실 때가 되면 잠이 많아진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말씀도중에도 자꾸만 눈감기를 되풀이 하고 있었지요.

몇 해를 더 살게 될지는 모르지만 기력이 떨어져가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어머니를 만날 때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았는가보다 어떻게 마무리 지을 것인가가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생여정에서 우리가 얻어야할 것은 경험일 것인데 어떠한 경험을 했느냐에 따라 종착점이 달라진다는 점을 생각하게 되면 어떻게 살았는가는 마무리와 직결됨을 알 수 있습니다.

어차피 인생길의 마지막은 오기 마련인데 무엇 하러 그렇게나 안달복달을 해가며 살아야하는 건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요.

편안한 마음으로 여행을 한다 생각하면 즐거운 것이 인생일 것인데 좀 더 빨리가기위해 조금 더 얻기 위해 이웃과 다툼을 해가며 산다는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만족하는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그야말로 중요합니다.

몇 달 만에 주어진 어머니와의 면회시간은 인간사 새옹지마(塞翁之馬)를 새삼 깨닫게 만들었으니 처처불상사사불공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