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善)하면 영생을 얻는다.
어릴 적 내가본 만화 내용 중에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깊은 산속 절벽위에 사는 도사를 찾아가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절벽을 힘들게 기어 올라가 도사를 만난 것까지는 좋았는데 밥 짓기 3년, 설거지 3년, 빨래3년을 마친 후에야 도술하나를 얻어 하산을 했다는 내용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만화를 보는 당시에는 그저 부모의 원수를 갚을 수 있을까에 정신이 팔려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해 생각을 할 수 없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여러 가지 뜻이 함축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그만큼 뭔가 한 가지를 얻기 위해서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말이며 인고의 세월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게 된 겁니다.
이렇듯 작은 신통하나조차 얻는데 각고의 노력이 필요한법이거늘 영생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우습게 여깁니다.
일반인들이야 본인의 영혼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함으로 당연한 것이지만 영생을 목표로 구도의 길을 걷는 이들조차 가볍게 여기는지라 어이없음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이런 일을 가슴깊이 새겨보려면 부자가 되는 방법을 떠올려보면 됩니다.
돈을 목숨처럼 여겨야 부자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영생을 어떻게 생각해야 될지를 알 수 있지요.
성경은 여기에 대해 명확하게 기록합니다.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마19:16)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마19:17)
And he said unto him, Why callest thou me good? there is none good but one, that is, God: but if thou wilt enter into life, keep the commandments.
가로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마19:18)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마19:19)
Honour thy father and thy mother: and, Thou shalt love thy neighbour as thyself.
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마19:20)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마19:21)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마19:22)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마19:23)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마19:24)
영생은 물질을 얻는 방법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사람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이 이상합니다.
영생을 얻기 위해 찾아온 사람에게 선한 일을 자신에게 물어서는 안 된다고 하며 하나님만이 선하다고 하지요.(Why callest thou me good? there is none good but one, that is, God)
이 말씀을 보건데 육신예수님을 따라서는 영생을 얻을 수 없으며 하나님이신 성령을 따라야함을 알 수 있습니다.
물질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서는 성령이 깨어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며 내재한 성령의 깨어남이 있어야 영생을 얻게 된다는 것을 말하기위해 이렇게 말해놓은 겁니다.
액면으로 보자면 예수께서는 계명을 지켜야한다 말했고 청년 또한 계명을 지켰다고 말하고 있지만 여기에는 깊은 뜻이 담겨있다고 봐야합니다.
예수께서는 육신너머의 인식까지 포함해서 계율을 지켜야한다는 점을 말씀하신 것이고 젊은 청년은 육신에 한정된 계명을 말했던 거지요.
청년은 사는 동안 살인도 하지 않았고 간음도 도둑질로 하지 않았으며 거짓증언 또한 안했기에 자신 있게 계명을 지켰노라 한 것인데 예수께서는 생각으로 저질렀던 수많은 죄악까지 포함한 계명을 말했던 것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은 성령은 성별의 구별이 없고 너와나의 경계의 벽도 허물어진 상태라는 점을 말해줍니다.
이렇게 성령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영생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인데 청년은 엉뚱하게도 자신은 계명을 모두 지켰다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젊은 청년이 물질 세상에 사로잡혀 영혼의 일을 모른다 생각하여 가진 것을 모두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주라 말했습니다.
이 말씀은 재산을 모두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어야 영생을 얻는다는 것이 아니라 물질세상과 상관없는 영을 깨달아야함을 비유한거지요.
물론 이 같은 내용을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줌으로서 하늘의 보상이 따른다고 볼 수도 있지만 영생을 얻고자 하는 젊은 청년의 바람에 따른 예수님의 가르침은 성령을 깨달아야한다는 것이 옳은 해석입니다.
성령과 하나 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영혼부터 찾아야하는 것이 순서이기에 물질과 무관한 영을 깨닫고 난후 성령이신 예수께 와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예수께서 아는지라 낙타가 바늘귀 통과하는 일에 비유했습니다.(24절)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실망한 것은 청년만이 아니었지요.
제자들이 듣고 심히 놀라 가로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마19:25)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마19:26)
제자들로서도 걱정인 것이 자신들도 열심히 예수님을 따르고 있지만 가진 것을 모두 버리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님을 26절에 말해놓았습니다.
본인의 내면에 거하시는 성령을 깨닫는 순간 물질세상과는 무관한 존재가 된다는 겁니다.
이렇듯 물질보다 영을 귀하게 여겨야 성령이 깨어날 수 있으니 뉘라서 자신이 가진 것들보다 성령을 귀하게 여길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