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사랑은 주는것.

배가번드 2023. 8. 12.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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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존재하는 말 가운데 나를 가장 가슴 떨리게 만드는 것은 사랑입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많은 이들이 사랑이라는 말을 나처럼 여길 겁니다.

그래서인지 사랑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유별나게 많습니다.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남을 이해하고 돕는 마음, 또는 그런 일.

 

일반적으로 사랑이라는 말을 사람에게만 적용하지만 사전적 의미를 보게 되면 물건이나 동식물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것도 사랑이라는 점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주변을 둘러보면 반려동물을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며 꽃이나 수석 등을 아끼는 이들을 볼 수 있는 겁니다.

외국 같은 경우 동물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자신의 재산을 몽땅 자신이 키우던 반려동물에게 물려주는 일들이 왕왕 있습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일어나지 않고 있는 걸로 알지만 조만간 이런 일은 우리나라에서도 일어 날거라 생각됩니다.

이런 이들의 심정을 내가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인간들에 대한 실망감이 너무나 큰 나머지 이런 결정을 하지 않았을까 짐작합니다.

성경을 연구하다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가족이 원수라는 예수님의 말씀까지 있고 보면 사람에게 가장 큰 사랑을 주는 것도 사람이고 가장 큰 상처를 주는 것도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10:36)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동식물을 비롯하여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 중에 우리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사람밖에 없다는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사랑은 물론 상처를 주고받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는 거지요.

그러면 도대체 왜 사람들은 사랑을 주기만 해도 모자랄 판에 상처를 주고받는 걸까 생각해봐야 합니다.

여기에 대한 해답이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고전13:4)

Charity suffereth long, and is kind; charity envieth not; charity vaunteth not itself, is not puffed up,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고전13:5)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고전13:6)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13:7)

Beareth all things, believeth all things, hopeth all things, endureth all things.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니 사랑을 (KJV)영어성경에는 Charity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랑은 LOVE로 표기하는데 자비와 자선 및 너그러움과 관용을 뜻하는 Charity라는 단어를 사용했을까를 생각해본 결과 만물을 사랑한다는 포괄적 의미보다는 사람사이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서라는 점을 알게 되었지요.

개를 키워본 이들은 알겠지만 개들은 자랑하거나 교만하지는 않지만 인내심이 없으며 질투심이 강합니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때로 개들은 주인에게도 무례하게 굴고 자신이 먹을 때는 주인조차 몰라볼 때가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정의롭고 불의함을 구분 지을 수도 없고 진리를 기뻐 할 줄도 모릅니다.

사람만이 진리를 기뻐할 줄 알아 참고 견디며 모든 일에 하나님의 손길이 작용한다는 것을 믿을 수 있기에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겁니다.

진리는 참된 이치를 뜻하지만 여기에서는 우리의 진정한 모습인 진아인 성령을 뜻합니다.

성령과 함께 하고 있음을 알아 정의로움의 편에 서게 된다는 말이지요.

또한 모든 것을 바란다는 것은 전체와 하나 된다는 의미로 하나님과 하나 된다는 뜻입니다.(hopeth all things)

이러한 점을 알게 되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사랑 중에 최고의 사랑이라는 점을 알게 됩니다.

누구나 자신에게 잘하면 좋아합니다.

그래서 반려동물이나 화초를 좋아하는 겁니다.

내가 좋아하면 그들도 나에게 화답을 하며 사랑을 주는 이상으로 돌려줍니다.

하지만 사람은 때로 내가 준사랑에 대해 배신으로 돌려주거나 실망을 안겨주기도 하지요.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할 것은 잘해주는 이들만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으며 심지어 동물들도 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보다 큰 사랑을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관용(寬容)으로 받아들이며 자비로운 마음을 내야합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이런 역할을 맡아서 해야 하는 겁니다.

바로 이런 역할을 가족들이나 가까운 인연들이 하고 있는 거지요.

혈연관계를 맺어 놓아야 정도이상의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으며 확장된 사랑의 실천을 하게 됩니다.

남남으로 만나 결혼을 하는 이유도 영적인 시각으로 보자면 완전한 사랑을 위해서이며 자식을 낳아 기르는 것도 사랑의 확장을 통해 창조주하나님과 하나 되는 영광을 얻기 위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몸으로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음을 아이를 탄생시키면서 느낄 수 있는 겁니다.

물론 이 같은 생각은 하루아침에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본인의 내재하는 성령에 대해 알아야만 합니다.

그때까지는 주변사람들을 관용으로 대하며 오랫동안 인내할 필요가 있습니다.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이 같은 일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며 넘어서야만 하는 시험과도 같은 겁니다.

이번 생에서 끝마치지 못하면 다음 생에 또다시 역할을 바꿔가며 계속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사실 이 같은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진정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오래참고 온유하며 자신보다 상대방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사람도 있고 보면 영생(성령)을 위해 인내심을 발휘하여 고통과 괴로움을 견디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거지요.

그렇지만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할 것은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사랑을 베푸는) 쪽이 되어야지 받는 쪽만 되고자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상처를 주기보다 받는 쪽이 되고 용서를 받기보다 용서해주는 편에 서며 사랑을 받기보다 주기를 좋아해야 신의 완전한 사랑을 깨달을 수 있게 됩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바울은 성경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1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