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은 소낙비처럼 퍼부어진다.
오랜만에 교회를 나갔습니다.
거리두기가 없어진 탓에 사람들이 많이 나왔지요.
일요일마다 나오시던 담임목사님이 강단에 서지 않고 다른 목사님이 나오셨는데 나와 상담을 몇 차례 한 적이 있던 분이었습니다.
상담을 하면서 서로 의견이 상충하게 되자 나더러 성경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 말하신 분이라 나와는 특별한 인연이 있는 분입니다.
수차례에 걸쳐 상담을 했던 것은 최고의 명문대학출신으로 이론에 있어서는 달통했다 여겼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전도사를 비롯하여 몇 분의 목사님과 상담을 해도 별진척이 없다 여겨지자 극성스러운 동생이 목사님에게 나를 데려갔던 겁니다.
대한민국최고의 대학을 나오신 분답게 성경책전체를 외우다시피 하고 있었고 성경의 이곳저곳을 펼쳐 보이며 나를 설득하고 있었는데 그때마다 영적체험을 앞세워 그분의 성경해석에 대해 반박을 하자 나더러 성경을 믿지 않는다 말했던 거지요.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분이 최고의 명문대학을 나왔고 성경책을 통째로 외우고 있는 것은 맞지만 영적체험이 없는지라 그저 지식적으로 성경을 보고 있는 것뿐이었기에 나로서는 배울 것도 없었고 들어야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습니다.
다만 동생이 워낙 안타까워하는지라 그 마음을 생각해서 상담에 임했던 것뿐이며 목사님을 상대로 설득하거나 그들의 교리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주장하고자 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성경말씀을 바라보는 시각이 워낙 차이가 있다 보니 결국 내가 앞으로 성경말씀을 좀 더 공부하겠다는 말로서 상담을 마무리 지었던 겁니다.
서울 가본사람과 안 가본 사람이 말싸움하면 누가 이긴다는 것을 아는지라 내가 한발 양보한 셈입니다.
나와 마지막 상담을 한지가 꽤 오래된 것 같은데 아직도 목사님의 설교는 그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지요.
물론 나 역시 그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게 성경을 보고 있으며 우리사이의 갭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 일요일 목사님이 설교제목으로 삼은 성경 내용을 보면 우리사이에 놓인 인식의 강이 얼마나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지 알 수 있으므로 다시 한 번 되새겨 보고자 합니다.
저는 벤 풀에 내리는 비같이 땅을 적시는 소낙비 같이 임하리니(시72:6)
저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여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까지 이르리로다(시72:7)
저가 바다에서부터 바다까지와 강에서부터 땅 끝까지 다스리리니(시72:8)
보라 여호와께서 불에 옹위되어 강림하시리니 그 수레들은 회리 바람 같으리로다 그가 혁혁한 위세로 노를 베푸시며 맹렬한 화염으로 견책하실 것이라(사66:15)
For, behold, the LORD will come with fire, and with his chariots like a whirlwind, to render his anger with fury, and his rebuke with flames of fire.
여호와께서 불과 칼로 모든 혈육에게 심판을 베푸신즉 여호와께 살륙 당할 자가 많으리니(사66:16)
For by fire and by his sword will the LORD plead with all flesh: and the slain of the LORD shall be many.(KJV)
For the LORD will execute judgment by fire And by His sword on all flesh, And those slain by the LORD will be many.(NASB)
예문으로 올린 시편은 초림예수를 이사야서는 재림예수를 가리킨다고 목사님은 주장했지만 내가 본 바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시편 6절 벤 풀에 내리는 비를 예수님에 비유한 것은 적절하다 할 수 있지만 이를 예수님의 육신에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되는 겁니다.
성령으로서의 예수가 우리 안에서 되살아날 때 메마른 땅에서 죽어갈 풀과 같은 인생이 부활을 한다는 뜻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7절의 저의 날이란 성령이 임하게 되는 날을 뜻하며 그날이 되면 의로움이 번창하여 평화가 충만하게 된다는 뜻이지요.
달은 어두운 밤을 밝히는 등불과 같은지라 어둠이 짙었던 우리네 인생에 성령이 임하면 빛(달)이 생명을 다하는 날까지 함께 한다는 뜻이 됩니다.
이렇게 해석이 되어야 8절 말씀처럼 온 세상을 그가 성령으로서 다스리게 되는 겁니다.
모두들 아시다시피 시편은 다윗이 쓴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 다윗이 이러한 내용을 시로 쓴 것은 어디까지나 성령이 드러나는 것을 두고 쓴 것이었지 다윗시대로부터 천년 뒤에 태어날 예수를 보고 쓴 것이 아닙니다.
물론 시공간이 무너진 영의 영역인 성령의 경우라면 목사님의 말씀이 옳다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목사님말씀에 따르면 이사야서에 기록된 내용이 재림예수를 가리킨다 했으므로 목사님의 시편해석은 잘못된 것으로 봐야합니다.
목사님께서는 이사야서 내용을 예수가 재림할 때 일어날 일로 해석했지만 이 또한 시편과 조금도 다르지 않는 성령이 임하시는 상태를 묘사한 겁니다.
이사야서를 액면대로 보면 마치 세상이 멸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런 것이 아니라 성령은 빛이라는 뜻입니다.
15절 영어성경을 보면 불로서 온다했으며(the LORD will come with fire) 화염으로 꾸짖는다 했습니다.(his rebuke with flames of fire)
불은 곧 빛이신 성령을 뜻하며 성령이 임하게 되면 육신의 고정관념이 무너지게 되는 것을 여호와 하나님이 불로서 심판하는 것으로 묘사한거지요.
16절 내용은 NASB성경을 번역한 것으로 KJV성경은 다르게 기록되어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육신에게 요청하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will the LORD plead with all flesh)
뒷부분에 여호와 하나님이 많은 이들이 살해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므로 NASB성경이 심판을 한다 해버린 것인데(will execute judgment) KJV성경을 봐야 제대로 된 해석이 됩니다.
이는 명백히 빛이신 성령이 드러나면 육적속성이 죽게 되는 것을 말하고 있음에도 이렇게 번역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영적체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곳곳에서 말하고 있듯이 육이 죽어야 영이 산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내용을 두고 한 말이지요.
우리가 흔히들 하나님과 하나 됨을 말하지만 막상 성령이 드러나기 위해서는 기존의 육적 속성이 죽어야합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모든 육신에게 간청한다고 기록해 놓은 겁니다.(the LORD plead with all flesh)
언제나 말하듯이 영어성경의 원조는 KJV입니다.
내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때로 KJV 내용이 제대로 해석이 되지 않기 때문이지요.
히브리어를 대입해야 해석이 가능하며 다른 영어성경버전은 히브리어와 전혀 맞지가 않습니다.
사실 이러한 말도 할 필요조차 없으며 본인이 직접 빛이신 성령을 경험해보면 압니다.
내가 사사로이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성령의 역사함을 힘입어 말하고 있는 것인지는 성령을 경험해본사람은 알 수 있으며 성경 속에 담긴 뜻을 알기 마련입니다.
이사야는 기원전 8세기경 사람인데 그가 남긴 성경말씀이 지금세상의 멸망을 말해놓았다고 믿는다면 그자체가 재앙이지요.
예수의 재림은 마음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세상의 멸망 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만 말하겠습니다.
성령에 대해 진심으로 믿는 이들만 들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