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수 없으면 즐기라.
날씨가 덥다보니 일이 무척 힘들게 느껴집니다.
더군다나 슬라브 타는 일을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숨이 턱까지 차오릅니다.
철근이 햇빛에 달아오르고 알루미늄으로 된 바닥까지 열기가 더해지면 한증막이 따로 없습니다.
이러다보니 일하는 이들 중에 짜증을 내는 이가 생겼지요.
누군가 엉터리로 일을 해놓는 바람에 수정을 해야 하자 화가 난 겁니다.
여러 사람이 모인가운데 지적 아닌 지적을 하기에 내가 나서서 한마디 해주었습니다.
나도 누군가 실수한 일을 수정한 적이 있는데 그 정도는 본인이 수정하고 넘어가자고 했더니 잠잠해졌지요.
사실 이 사람은 평소에도 다른 사람이 해놓은 일에 간섭이 심하며 지적을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라 타고난 품성 탓이기도 하고 살아온 환경 탓이기도 합니다.
일하는 모습을 가만히 보면 매우 세심하고 원리원칙을 따지는 형이라는 점을 알게 됩니다.
나같이 급하게 서두는 사람에게는 필요한 부분이 없지 않지요.
그렇지만 계속해서 함께하면 나 같은 사람은 속이 터집니다.
원리원칙에 입각하여 일을 하되 급하면 임기응변의 방편 법을 부릴 줄도 알아야하는 것이 세상일입니다.
그저 좋은 게 좋다고 따지기 싫고 어떤 사람과도 논쟁을 하고 싶지는 않기에 한 번도 그 사람의 지적 질에 반대의사를 표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본인역시 실수를 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은 있었지요.
그런데 이러한 내 마음 탓인지 지난 토요일에는 드디어 일이 발생하고야 말았습니다.
일찌감치 일을 끝내고 퇴근할 수 있었는데 이양반이 자재를 잘못내리는 통에 동료들이 고생을 해야만 했던 겁니다.
타워크레인 기사들도 일찍 퇴근해버리는 바람에 사람이 직접 손으로 자재운반을 해야만 했으니 많은 이들에게 피해를 입힌 셈입니다.
사실 이런 일이 발생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남의 잘못을 습관적으로 지적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주어진다는 거지요.
실지로 이 사람은 팀장으로부터 가장 많은 욕을 먹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처음 내가 합류했을 때 이상하게 여겼던 일 가운데 하나가 이상하게 팀장이 이 사람을 미워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알고 보니 미워하는 게 아니라 팀장자신도 모르게 이 사람에게 큰소리를 치게 되었던 겁니다.
일처리가 꼼꼼하다보니 속도가 느린 면은 있어도 심성이 착하고 말썽을 부리는 것도 아니어서 딱히 욕을 얻어먹을 이유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늘 꾸지람을 당하는 것이 이상했는데 알고 보니 인과응보의 적용을 받고 있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전생의 일이 작용하고 있기도 하며 두 사람 사이의 인과가 남다른 면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내가 이렇게 보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지요.
만약 나 같은 경우 이 사람처럼 욕을 먹으면 그 즉시 그만둡니다.
나만 이런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욕을 얻어먹으면 그만둘 것인데 이상하게 이 사람은 그만두지도 않을 뿐 아니라 불평불만조차 크게 하지 않습니다.
비자문제가 얽혀있고 자신의 개인사에 있어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러한 사정이 현실과 맞물리게 되는 것은 어디까지나 본인의 전생인연과 연관이 있는 겁니다.
다 같이 일을 하고 있지만 내가 속한 곳에서 나와 상대하는 이들과 마찰을 일으키거나 문제가 발생되는 것은 현생만으로는 해석될 수 없는 인연 고리가 형성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직장에서 근무를 하지만 특정한 사람에게만 안 좋은 일이 자주 발생된다는 것은 그 사람이 뭔가 안 좋은 것을 심어놓았기 때문이지요.
아마 어떤 이들은 자신이 몸담은 직장이 근본적으로 좋지 않으며 직원들 대부분이 불만을 가졌다 말할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직장에 몸담게 된 자체가 문제라고 봐야합니다.
하필이면 좋은 직장이 많은데 지금의 직장에 오게 되었나를 생각해봐야하며 당장이라도 그만두면 될 것을 그러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형편을 살펴봐야한다는 겁니다.
피할 수 없으면 운명으로 받아들여야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피해야하고 피할 수 없다면 그것은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며 넘어야할 산이나 다름없지요.
그래서 나 같은 경우 지금의 현실을 두 가지로 해석합니다.
첫 번째로 내 몸을 위해 운동을 한다고 여기고 있으며 두 번째로는 지난 생에서 누군가에게 진 빚을 갚는다고 여깁니다.
내가 말하는 지난 생은 과거 전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간 과거의 모든 순간들을 의미하며 영육의 전체로 살아온 족적을 뜻하는 겁니다.
육신으로 살았던 지난 과거는 물론이고 영혼이 경험했던 과거 전생모두를 포함한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도 절대적이지는 않으며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그만둡니다.
앞서도 말했지만 피할 수 없을 경우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며 인내심에 한계를 느끼게 될 때는 그 즉시 짐을 내려놓습니다.
이러한 점에 대해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겨 우리로 하여금 생활의 지표로 삼게 하셨지요.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요13:10)
Jesus saith to him, He that is washed needeth not save to wash his feet, but is clean every whit: and ye are clean, but not all.
성령에 대해 알게 되면 그자체로 이미 깨끗하다고 합니다.(is clean every whit)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라 제자들 모두는 성령으로 충만해져 있기에 이렇게 말씀하신 겁니다.
그렇지만 발 외에는 씻을 필요가 없다 했으니(washed needeth not save to wash his feet) 살아온 족적에 대한 일만큼은 본인이 해결해야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 내용을 통해 깨달아야할 것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다 하더라도 육신으로 살아오는 동안 저질러 놓은 내 죄는 갚아야한다는 것과 나를 상대하는 사람의 수준에 따라 내가 받아야 할 것들이 달라진다는 겁니다.
이 사실 한 가지만 보더라도 교회에서 주장하듯이 예수만이 천국이고 불신하면 지옥에 간다는 말은 맞지 않습니다.
또한 성령이 깨어났다 해서 인생이 평탄하고 걱정근심이 사라진다는 것도 틀립니다.
오히려 많은 고통과 고난이 주어질 수도 있으며 심지어 목숨을 걸어야하는 일이 생길수도 있지요.
그래서 예수님 같은 분을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는 어린양이라 말하는 겁니다.
예수님은 성령이 드러나 하나님과 하나 된 분인데도 불구하고 십자가에 매달려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되었던 이유는 제자들과 업장을 공유했기 때문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일을 달리 표현하면 아직 윤회의 과정을 넘지 못한 제자들을 위해 전생의 업장을 받아들이는 선택을 한 것이 됩니다.
이미 시공간을 넘어서 있지만 제자들을 영생으로 이끌기 위해 과거 전생인연을 끄집어내어 적용을 시킨 거지요.
바로 이러한 일들이 현생에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각자가 처해 있는 주변 환경들은 모두가 우리자신이 만든 것이며 비록 내육신이 인지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영혼차원에서 맺어놓은 것들이라는 말입니다.
이러한 점을 인식하게 되면 지금 자신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들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진정 이러한 점을 인식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만족하는 마음이 오게 되며 졸업장이 주어지게 되지요.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은 만고(萬古)의 진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