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으로 향하는 길은 좁고 험하다.
지난 일요일 교회목사님께서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자신들은 종교생활을 하라고 권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을 전한다고 했지요.
진리란 언제 어디서든지 누구라도 승인할 수 있는 보편적 법칙이나 사실이라는 사전적 의미까지 말씀하시는 통에 또다시 진리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겁니다.
만약 목사님말씀대로라고 한다면 성경에 나온 여러 가지 내용은 보편타당성 있다고 보기는 어렵기에 엄밀하게 말하면 목사님의 주장은 개인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봐야하며 진리로 보기 어렵습니다.
다만 진리를 참된 이치와 도리라고 말하는 점은 옳다고 봐야합니다.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목사님말씀이 틀리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진리는 목사님이 생각하는 진리이고 믿음일 뿐이라는 말입니다.
진리라는 것이 목사님 말씀 대로일 것 같으면 이 세상에 수많은 종교가 생겨나서는 안 되며 그들의 주장이 헛된 것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또다시 종교전쟁이 일어나게 되며 이념과 관념의 마찰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래서는 종교의 벽과 사상과 이념의 벽을 허물어트릴 수 없으며 시공간이 없는 영의 세계에 도달할 수가 없게 됩니다.
물론 목사님이 영혼에 대해 모르는 초보자들에게 말씀을 전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를 할 수 있지만 적어도 구도의 길을 걷는 사람들은 이 말씀의 모순점을 발견할 수 있어야합니다.
세상의 그 어떤 종교도 자신들은 진리의 말씀을 전한다고 하며 유일한 신을 모시고 있다 주장하지요.
본인을 이공계를 전공한 사람으로 소개한 목사님은 95%의 사람이 인정하면 법칙으로 본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세상 그 어떤 종교도 95%의 점유율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볼 때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종교도 진리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진리의 말씀이라는 것은 개인의 믿음에 달렸다고 봐야 하며 어떤 것을 진리로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문제라고 말하는 것이 보편타당성 있는 겁니다.
차라리 이보다는 진리를 도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흔히들 도를 닦는다 말하고 완성을 이루게 되면 도를 통한다 말하게 되는 것이 진리라고 말할 수 있다는 거지요.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도(道)를 닦거나 도교를 믿어야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를 길(道)에 비유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도통한다는 것은 사통팔달이 된다는 뜻으로 세상 그 어떤 길과도 연결이 되어야합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깨달음을 얻었다면 세상의 어떤 종교와도 소통이 되어야하며 경계의 벽이 허물어져야하는 겁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 얻어야할 것은 영생인데 영생은 우리의 영혼이 성령과 하나 되었을 때 일어나는 일이며 지극히 개인적인 일입니다.
만약 이러한 내말이 틀리고 목사님의 말씀이 진리일 것 같으면 예수생존당시에 예수를 아는 모든 사람은 영생의 하늘로 들어 올림 받아야하는 것이며 예수님의 다음말씀은 부정되어야하지요.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자들도 있느니라(눅9:27)
But I tell you of a truth, there be some standing here, which shall not taste of death, till they see the kingdom of God.
예수님의 가르침을 직접 받는 제자들조차 하나님왕국을 볼 수 없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개인의 믿음에 따라 얻을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기에 이렇게 기록해놓은 겁니다.
그렇지만 분명히 알아야할 것은 본인의 영혼이 있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들은 목사님의 말씀을 진리로 알고 믿어야합니다.
본인이 어떤 경로를 통해 교회를 나오게 되었고 설교를 듣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또한 인연이고 하나의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일단은 첫발을 디뎌야하고 걸어가야만 이 길이 바른길인지 틀린 길인지를 알게 되며 참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거지요.
그렇다면 내가 선택한 길이 바른길인지 틀린 길인지 어떻게 알게 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몸담고 있는 종교가 내 생활을 윤택하게 만들고 있는지 궁핍하게 만들고 있는지를 봐야하고 내 생활에 변화를 가지고 오는지를 살펴봐야합니다.
이것은 사람과의 만남에도 적용이 되고 세상 그 어떤 일에도 적용이 되는 일입니다.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불편함을 느끼고 편안하지 않다면 잘못된 만남인 것이며 나와는 맞지 않는 사람인겁니다.
그 사람이 아무리 평판이 좋고 훌륭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주지 못하면 나에게는 맞지 않는 거지요.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사람의 만남에도 영적인 일은 작동합니다.
사람의 인식정도가 영적이지 못하고 물질적이고 육적이면 반드시 사람을 물질세상의 기준으로 판단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소개팅을 나갔는데 외모가 별로라서 퇴짜를 놓으려다 출신학교와 재산정도를 알고난후 사람이 달라 보여서 결혼을 하게 되는 경우와 같은 일이 발생한다는 겁니다.
처음에는 별로였던 사람이 갑자기 달라 보인 것은 물질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으로 물질을 최고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말을 듣는 이들 가운데 이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면 아직까지 물질세상의 가치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보면 정확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영적인 사람인 경우 사람을 외모나 조건으로 따지지 않습니다.
느낌을 중시여기며 사람자체가 풍기는 향기를 중시여깁니다.
이 같은 일이 쉬울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으며 물질세상보다 영의 세계를 좋아하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예전에 동료수행자 한분과 이런 점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지요.
그분은 불교도였는데 같은 명상단체에서 알게 된 분이었고 여성이었습니다.
명상을 하기 전에는 절에서 관세음보살로 불리었다고 했으며 하는 일마다 너무나 잘되었다고 합니다.
불사를 하면 넘치도록 돈이 들어왔고 스님들로부터 존경과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고 했는데 이상하게 명상을 시작하고부터 사람들과의 관계도 틀어지고 하는 일마다 안 된다고 불평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명상만 하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으며 영원히 깨어나고 싶지 않을 만큼 좋은데 명상에서 깨어나면 현실적인 어려움이 닥친다는 거지요.
많던 재산도 없어지고 갈수록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더라고 하소연을 하는 통에 설명을 하느라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게 되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를 확실하게 알 수가 있습니다.
성령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물질세상과 마찰이 일어날 수밖에 없으며 영육 간에 전쟁이 벌어집니다.
이것은 가치관이 달라졌기 때문이며 인연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물질세상과의 인연을 다하고 영생의 하늘에 있는 성령과 교통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던 거지요.
본인의 목적지가 어디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했더라면 자신의 인생길이 왜 그리 험난해졌는지 알았을 것이고 힘든 현실을 오히려 축복으로 여겼을 겁니다.
나 같은 경우 95년 입문을 한 뒤로 지금껏 세파에 시달리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단 한 번도 내 선택이 잘못되었다 생각한 적은 없으며 내 인생을 다시 되돌리고 싶다는 마음을 먹어본 적이 없다 자신합니다.
목적지가 다른데 인생길이 일반인들과 같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이렇듯 목적지를 달리했는데 변화가 없다면 뭔가 잘못된 겁니다.
하여 나 같은 경우 뒤돌아보면 한 치의 오차 없이 진리의 길을 걷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도(道)를 추구하고 똑바로 걷는 이는 들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