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죽음이 세상의 멸망이다.
보통 종교를 말하게 되면 불교와 기독교를 떠올리게 됩니다.
타국에서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 같은 점은 거의 확실하게 정해진 일과도 같습니다.
원래는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먼저 들어왔지만 교세가 워낙 빠르게 확장되다보니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종교라고 말하면 천주교보다 기독교가 앞서는 거지요.
큰집보다 작은집이 그 집안의 대표가 된 셈입니다.
같은 성경을 보고 같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지만 서로 다른 것처럼 말하며 결코 하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는 크리스천이라 말하면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모든 종교를 통틀어 말하는 것이지만 천주교와 기독교인들에게 물어보면 절대 같다고 말하지 않으며 특히 기독교는 천주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을 쉽게 알게 됩니다.
내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면 마치 기독교도들이 천주교도들로부터 엄청난 탄압을 받은 것처럼 말씀하시는데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고 있지요.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기 전에 일어난 일을 말씀하시면서 천주교가 얼마나 잘못된 종교인지를 성토하시는 통에 정말 성경을 읽으신 분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드는 겁니다.
본인이 그 시대에 살았던 것도 아니고 본인이 당한일도 아닌데 마치 크게 불이익을 당한사람처럼 말씀하시기에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라도 불이익을 당했다손 치더라도 너그럽게 용서해야할일인데 과거에 조상들이 저질렀던 잘못을 가지고 마치 현시대에도 천주교로부터 탄압을 당한다는 듯이 말한다는 것은 잘못된 거지요.
구교인 천주교가 신교인 기독교인들을 얼마나 괴롭혔는지는 유럽에서 일어난 일을 보면 충분히 알 수가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과거의 일이며 지금은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용서와 화합하는 시대며 통합의 시대로 나아가야 합니다.
사실 잘못된 성경해석과 교리에 대한 문제는 오늘날의 기독교가 과거 천주교의 잘못에 비해 작다고 할 수 없습니다.
마치 내일이라도 세상이 멸망할 것처럼 말하며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결코 잘한 일이라고 할 수 없는 겁니다.
아무리 사람들로 하여금 믿음의 길로 끌어들이기 위해 방편적으로 말한다고 해도 혹세무민(惑世誣民)한다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경이 말하는 멸망이란 육신이 죽는 일을 말하는 것이지 세상멸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에게 말하게 되는 것이 성경을 영적으로 보지 못하고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시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명백하게 성경을 잘못 해석하고 있으며 잘못 가르치고 있습니다.
다른 일은 제쳐두고라도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말씀조차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기독교인들 스스로가 반성해야하며 사람들에게 구원을 준다는 말을 하기 전에 같은 식구나 다름없는 천주교와의 화합부터 해야 합니다.
자신은 실천도 못하면서 타인들에게 이웃을 사랑하라 말하면 누가 들어도 웃을 일이지요.
본인들은 구원을 받았다고 큰소리치며 좋아할지 모르지만 나 같은 사람이 볼 때는 심각한 모순에 봉착한 걸로 보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자신들에게만 국한시키는 것이 아니라면 이래서는 안 되는 것이며 구원이 기독교인들의 전유물이 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읽어본 결과 성경속의 하나님은 특정종교에만 속해져 있는 분이 아니었으며 삼라만상과 우주를 창조하신분이 맞습니다.
종교의 벽을 초월하여 존재하시며 온 우주에 편재하시는 분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할 일은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듯이 인격체를 가진 단하나의 존재가 아니라 시공간의 영역을 공유하는 복수의 존재이며 빛의 영역 안에서 하나 된 복합체라는 겁니다.
이 같은 말은 내가 사사로이 하는 말이 아니라 성경에 명시된 내용이므로 지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창3:22)
하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니 성경을 믿는 이들은 이러한 사실을 부인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속의 하나님을 자신들만의 하나님이라 말하면 하나님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욕되게 하는 짓이나 다름없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할 일은 하나님과 하나 된다는 것을 오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과 하나 된다는 것을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다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것은 크게 오해한 것으로 영혼의 세계에 대해 모르고 있는 인식에서 나온 생각이며 성령을 모르고 있다고 봐야합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신이 무엇인가를 원하는 바가 없어야하며 모든 것이 이미 주어져 있음을 아는 상태가 하나님과 하나 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려면 욕심이 없어져야 하며 바라는 바가 없어야 하는 거지요.
이러한 까닭으로 육신을 가지고 있는 한 이것은 불가능하며 반드시 성령이 깨어나야 가능하다 말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들어보면 이 같은 말이 사실이라는 점을 깨닫게 됩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막8:35)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막8:36)
For what shall it profit a man, if he shall gain the whole world, and lose his own soul?
자신을 부정하라는 말은 본인의 진정한 자아(自我)를 찾으라는 말과 같은 것이며 성령을 깨달아 알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본모습은 육신이 아니라 영(성령)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예수님이 가는 길을 따라 갈 수 있다는 겁니다.
36절을 보면 천하를 얻고도 자신의 영혼을 잃어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나 말하고 있습니다.(lose his own soul?)
이것이 쉬울 것 같지만 어려우며 어려울 것 같지만 아주 쉽다고 할 수 있는데 어렵다는 것은 영적체험이 없는 이들을 위한 말이며 쉽다는 것은 이미 체험한 이들을 위한 말이지요.
내가 95년 갑자기 영적인 길로 접어들 때 즉흥적인 기분이 들어서거나 누군가의 권유가 있어서 결심했던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체험이 있었기 때문이며 육신을 버리지 않고서는 예수님말씀처럼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 전부를 걸 수밖에 없었고 목숨을 걸었던 이유는 바로 이 말씀을 인식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나를 겁박하거나 협박할 방법은 없으며 누군가를 믿게 만들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야합니다.
내가 스스로 걸어 들어가지 않는 이상 그 어떤 곳도 가지 않고 누구도 믿지 않게 된 겁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신통력이 있어서 내 몸에 이상이 생기게 만든다 할지라도 나는 그것을 축복으로 받아들입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잘못을 갚게 만들기 위해 하나님이 내게 벌을 주신다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신을 체험했는데 불구하고 나에게 물질적 가난이나 신체적인 어려움이 주어진다는 것은 신의 징계가 주어졌거나 내가 좀 더 겸손해지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게 된 겁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니라 하시니(요19:11)
Jesus answered, Thou couldest have no power at all against me, except it were given thee from above: therefore he that delivered me unto thee hath the greater sin.
하늘이 허락하지 않는 일은 이 세상에 일어나지 않으며 다만 행위에 대한 응보가 주어질 뿐입니다.
하여 나는 내가 처한 현실을 언제나 축복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