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몸과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라.

배가번드 2023. 9. 12. 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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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다보면 가끔씩 실수를 합니다.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끼어들기를 하거나 차선변경을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다른 운전자로부터 욕을 먹게 됩니다.

미안함을 손을 들어 신호를 하거나 비상등을 켜서 사과를 하지요.

어떨 때는 반대로 내가 당할 경우가 생깁니다.

직진 신호를 받아 출발을 하고 있는데 골목길에서 대로변으로 갑자기 진입하는 차들로 인해 깜짝 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오토바이가 알아서 피할 거라 생각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눈에 보이는데 불구하고 차를 들이밀고 보자는 식으로 들어오는 통에 놀라게 되며 나도 모르게 욕을 하는 순간이 숱하게 많습니다.

일단은 본능적인 반응을 하지만 조금 지나면 이 또한 신의 뜻이라는 점을 생각하게 됩니다.

좀 더 조심하라는 신의 뜻이라 여기기도하고 나 역시 누군가를 놀라게 했다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반성하는 계기로 삼고 있지요.

그런데 이러한 생각을 하는 중에 가끔씩은 황당한 경우를 맞이할 때도 있습니다.

자신이 잘못을 해놓고서도 사과는커녕 오히려 잘했다는 듯이 행동하는 운전자들도 있기에 기가 막힙니다.

이런 경우를 일러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겨났겠지만 생각 외로 이런 이들이 많이 있음을 봅니다.

자신이 잘못을 해놓고 상대방이 욕을 하면 더욱 크게 욕을 하며 맞대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이럴 때면 분하고 억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만 이 또한 인과응보의 법칙이 한 치의 오차 없이 적용되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일반인들은 이런 경우 법에 호소해서라도 시시비비를 가리고자 하겠지만 구도자로서는 이런 식의 반응보다는 모든 것이 신의 뜻이라는 점에 입각해서 생각할 줄 알아야합니다.

억울한 순간이 다가온 것에 대한 근본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음으로 인해 더 이상 인과를 만들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좋다는 겁니다.

우선적으로 생각해볼 것은 내가 잘못을 했을 때 누군가로부터 욕을 얻어먹으면 그것으로 인해 그 순간의 잘못은 없어지게 된다는 거지요.

잘못에 대한 벌을 받았으니 당연히 인과가 해결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지만 오히려 잘했다는 듯이 맞대응했을 경우 업장이 쌓이게 됩니다.

이러한 일로인해 본인에게 더 큰 사고가 발생하게 되며 종내에는 해결하지 못한 업장으로 인해 사후에 심판받게 된다는 말입니다.

사실 우리가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되는 것도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내가 누군가를 억울하게 만들거나 일에 대한 판단을 내중심으로 했기에 결과가 엉뚱하게 주어지게 된 겁니다.

사건이 발생하게 되면 사람들은 제각각 자신의 입장에서 판단을 합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전인수(我田引水)식의 반응을 하며 잘못을 타인에게로 돌립니다.

그래서 성경은 모든 잘못을 자신에게로 돌리라 말하고 있으며 원수조차 사랑하라 적고 있습니다.

나에게 원수 같은 짓을 하는 사람조차 알고 보면 그만한 이유가 있으며 원인제공자가 우리 자신일수 있기에 이런 기도가 생겨난 겁니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큰 탓이로소이다.

 

이 같은 기도가 가지는 의미는 실로 큽니다.

일견(一見)하기에는 어리석은 것 같지만 이것은 구도자로서는 아주 중요한 기도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한다는 것은 욕을 먹는 것과 같아서 내가 알지 못하는 잘못을 용서받는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해 놓은 겁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5:4)

(Blessed are they that mourn: for they shall be comforted.)

 

뭔가 슬픈 일을 당한다는 것은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인가를 잘못 심어놓거나 판단을 잘못했기에 지금의 슬픈 현실이 내게 주어졌을 것이 분명합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기에 이 같은 생각은 너무나 당연한거지요.

결국 슬픔을 겪는다는 것은 지난잘못을 갚는다는 등식이 성립됩니다.

이렇게 지난 잘못을 갚게 되는지라 편안함이 찾아오게 되니 위로를 받는 것으로 적어놓은 겁니다.

아마 많은 이들은 현재를 살아가면서 높은 지위에 있거나 물질적 풍요 속에 있음을 부러워하고 동경하겠지만 영적으로 보면 결코 좋게 볼일이 아닙니다.

신분이 높거나 세상에 영향력을 많이 행사하는 사람일수록 업장이 더욱 크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전생에 어느 나라의 왕이었다고 칩시다.

본인의 신분이 왕이다 보니 국익을 위해 다른 나라를 쳐들어갔다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게 됩니다.

선량한 사람들을 전쟁에 동원하여 가족 간에 생이별을 하게 만들고 숱한 과부와 고아를 만들어 냈는데 그러한 일이 죄가 없다 말할 수 있겠냐는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영웅으로 알려져 있는 이들 모두가 하나같이 이런 짓을 한사람들인데 이들에게 죄가 없다하면 도대체 누구에게 죄가 있다는 말인지요.

지금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온갖 권모술수를 동원하여 국민을 속이고 세상을 속이는 짓을 하고 있지요.

이 같은 일이 죄가 없다 생각하면 나로서는 할 말이 없으나 다만 알아야할 일이 있습니다.

자신이 심은 것은 반드시 돌아온다는 겁니다.

선행을 베풀었으면 선한 일에 대한 보상이 따를 것이고 악행을 저질렀으면 악행에 따른 벌칙을 받아야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뛰어난 통치력을 발휘한 왕이라 해도 영생을 얻었다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영생의 하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물질세상의 지위나 업적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중심을 본다 했으니 외형적인 모습과는 하등관계가 없음을 알아야지요.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

But the LORD said unto Samuel, Look not on his countenance, or on the height of his stature; because I have refused him: for the LORD seeth not as man seeth; for man looketh on the outward appearance, but the LORD looketh on the heart.

 

직역하면 여호와 하나님은 마음을 보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the LORD looketh on the heart)

영혼이 머무는 곳이 심장이라는 말이 있으니 영혼을 본다 해도 틀리지 않지요.

사실상 heart는 사랑으로도 쓰이는 단어인지라 사랑하는 마음이라 번역해서 안 될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외형적인 것보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그 마음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사람에게 잘못한일도 진심으로 뉘우치면 용서받을 수 있는 법인데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용서를 구한다면 어찌 용서받지 못하겠습니까.

부모가 자식을 진심으로 사랑하여 매를 들듯이 하나님도 자녀를 진정 사랑하기에 징계로서 억울하게 만들고 애통하게 만드는 겁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내 이웃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것이고 원수조차 사랑하게 됩니다.

 

사랑하고 싶은 이들은 들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