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게 하소서.
어린 시절 하나님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목사님들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계실까를 생각해보니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왜냐하면 창세기에 기록된 내용처럼 우주만물을 만든 하나님이 있다면 불합리한 세상을 단 한 번에 정리해 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하나로 우주를 생성케 하고 하늘의 별과 해와 달을 만들 정도면 지옥 같은 세상을 없애버리고 천국만 남겨두면 너무나 간단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가만히 내버려두고 있을 뿐 아니라 너무나 기가 막힌 짓을 하고 있는 겁니다.
지옥과 천국을 만들어 놓고 천국으로 오라고 손짓을 하는가 하면 지옥 가는 짓을 하는 이에게는 벌을 내리고 있으니 이보다 더한 모순은 없다는 생각을 했던 거지요.
그렇지만 성경을 제대로 연구해보니 하나님은 분명 있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라는 존재는 인격체를 갖춘 단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자 생각이 달라진 것이며 빛의 영역에는 수없이 많은 하나님이 존재함을 알게 되었지요.
성경에는 이와 같은 생각이 사실임을 증명할 수 있는 구절들이 나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창3:22)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창6:1)
And it came to pass, when men began to multiply on the face of the earth, and daughters were born unto them,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창6:2)
That the sons of God saw the daughters of men that they were fair; and they took them wives of all which they chose.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 이십년이 되리라 하시니라(창6:3)
And the LORD said, My spirit shall not always strive with man, for that he also is flesh: yet his days shall be an hundred and twenty years.
창세기3장 22절에 아담과 하와를 만드신 하나님이 말씀하시길 여러 명의 하나님이 존재함을 스스로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6장을 보게 되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아내로 삼았다 했으니 이 또한 하나님이 여럿임을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 내용을 상세하게 들여다보면 하나님의 아들과 인간의 딸이 따로 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몸이 영육의 합일체라는 점을 밝히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성경에 기록된 딸은 대부분 믿음의 딸로서 하나님을 믿는 마음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6장2절에 딸들의 공정함이라 말해놓은 거지요.(they were fair)
한글성경은 fair를 아름다움이라 번역했지만 깨끗함과 광명정대함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진 이들에게 영으로서 함께 한다는 것을 말하기위해 이렇게 표현했다는 사실을 6장 3절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사람들과 영원히 함께 하지는 않는다(My spirit shall not always strive with man) 했으니 육신이 영원하지 않음을 말해줍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strive입니다.
이단어의 뜻은“갈등, 불화, 다툼” 등이며 노력하고 분투하며 매진한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지요.
사람이 사는 동안 내적으로 영육간의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난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이 내용은 사람의 몸을 가리키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사람의 수명을 120년이라 한 대목으로 이것은 삼위일체(3) 하나님이 인간(인간의 숫자4)의 몸과 연합되어 완전함을(완전의 숫자10) 이루게(3×4×10=120) 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영으로서 인간의 몸 안에 거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우리의 본체는 육신이 아니라 영이라는 사실에 접근할 수 있는 겁니다.
이렇게 영이신 하나님은 사람들 내면에 들어 있으므로 하나님이 생기를 코에 불어넣어 인간을 창조하셨다 기록한 거지요.(창2:7)
한사람 안에만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생기가 들어있음으로 그가 바로 성령입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의 영은 인간의 몸 안에 들어있음에도 인간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는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러한 점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시각을 아프리카 초원으로 돌려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지금도 생물학자들이 동물에 대한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지요.
어떤 이들은 육식동물을 연구하고 있고 또 다른 이들은 초식동물을 연구하는 중입니다.
그렇지만 이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동물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습니다.
동물들은 그들만의 삶에 방식이 있으므로 함부로 개입하게 되면 생태계에 혼란을 초래하기 때문에 관여하지 않는 겁니다.
만약 육식동물을 연구하는 이들이 육식동물을 위한답시고 초식동물을 쉽게 잡아먹을 수 있게 만들어주게 되면 육식동물의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나는 대신 초식동물의 숫자가 줄어들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초식동물이 줄어든 피해는 고스란히 육식동물에게 돌아오게 되지요.
마찬가지로 초식동물을 연구하는 이들이 육식동물로부터 초식동물을 보호하게 되면 육식동물이 멸종되고 맙니다.
이러한 일을 알기에 동물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특정한 동물을 위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멸종위기에 처해있는 동물의 경우에는 특별한 관리를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자연에 맡기는 겁니다.
이런 일과 같이 하나님은 육신의 범주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의 일에는 관여하지 않으며 오로지 영생을 얻고자 하는 이들의 삶에만 관심을 기울입니다.
이 같은 시각을 외계인에게로 돌려보면 우리가 처해있는 지금의 현실이 어떤 지경인지를 알 수가 있지요.
인간세상의 과학이 엄청나게 발달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외계인들이 타고 다니는 비행접시하나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볼 때 외계인들은 사람의 수준에서는 하나님과 같다고 봐야합니다.
인간들이 유전공학의 발달로 새로운 종의 동물을 만들어 낼 정도가 되었으니 그들의 과학이라면 지금의 사람을 만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인간들의 삶에 관여하지 않는 것은 이세상사람들의 삶에 개입하는 것은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영혼의 입장에서 보면 경험을 위해 세상을 반복해서 사는 것이기에 함부로 개입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살인을 저질렀고 그러한 행위에 대한 벌로서 죽임을 당해야하는데 외부의 세력이 구해주게 되면 인과의 법칙은 무너지게 됩니다.
이런 일을 두고 인과에 개입한다고 말하며 남의 인과에 개입을 하게 되면 그 인과를 본인이 가져오게 됩니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남의 인과에 개입하지 말라 말하고 있지요.
이러한 까닭으로 외계인과 텔레파시로 교감을 나누었던 마틸다는 노트에 영적각성상태를 돕기 위해 지구에 남는 선택을 한 외계사령관에 대해 언급했던 겁니다.
본인의 영적등급은 이미 세상을 벗어나 있지만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세상에 남는 선택을 하는 영혼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미 몇 차례 언급한 적이 있듯이 성경에는 아주 아름다운 말이 기록되어 있지요.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13:13)
진정한 사랑은 희생 없이는 생성될 수 없으며 사랑 없는 희생은 그 값어치를 상실한다 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면 그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한 희생은 고귀하며 값진 것이어서 외계인들조차 감동을 하게 만듭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으니 지극한 사랑은 하늘도 감동시킵니다.
저 하늘에 하느님!
내안에 하나님!
우리 안에 공히 거하시는 성령이신 하나님!
삼라만상 안에 편재하시고 전능하신 빛이신 하나님!
사랑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