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당한 사람이 이익이 많다.
호주에 머물고 있을 때 이탈리아 이민자가 운영하는 딸기밭에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마이클이라는 젊은 사장이었는데 나를 무척 좋아했지요.
비록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손짓발짓을 동원해가면서 서로 대화를 하면 일하는 데는 별 지장이 없었고 성격상 일에 집중을 잘하는 나를 좋아했던 겁니다.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이 사람이 나에 대해 좋게 생각했던 것은 데리고 있던 월남직원이 워낙 마음에 들지 않았기도 하고 내가 꾀를 부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마이클은 수시로 외출을 나갔는데 이상하게도 돌아오면 정도이상으로 월남직원을 혼을 내곤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유가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농장의 주인은 마이클이었지만 월남직원이 실질적인 감독의 역할을 맡고 있었는데 직무에 충실하지 못했던 거지요.
사장이 외출을 나가면 곧장 나무그늘에 앉아 장시간 쉬는지라 혼이 날만했던 겁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쉬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고 일하러 나왔으면 일을 해야 한다 생각하기 때문에 오래 쉬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일을 찾아서 하고 물어가면서 일거리를 달라고 요청을 합니다.
이런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마이클은 점심시간에 내가 잠을 자면 시간이 오버되어도 깨우지 않고 내버려둡니다.
심지어 깨우려는 월남직원을 혼내기까지 했지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째서 마이클은 외출에서 돌아오기만 하면 월남직원을 향해 욕설을 퍼붓고 정도이상으로 화를 냈던가를 생각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마치 옆에서 지켜보았던 것처럼 화를 내는 것은 물론 심지어 멱살을 잡아 흔들어댈 정도였습니다.
확인을 한바는 아니지만 외출을 한 마이클은 멀리서 농장을 살피고 있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토록 혼이 나면서까지 월남직원은 농장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겁니다.
보트피플이라 갈 데가 없어서 인지는 모르겠으나 욕을 먹어가면서까지 일을 하는 것도 신기하고 일하는 태도를 바꾸지 않는 것도 신기합니다.
알고 보면 이두사람은 인과로 묶여져 있기에 이러한 상태로 일을 하고 있는 거지요.
마이클 입장에서는 싼 인력이 필요한데 월남사람이 아니면 실질적으로 농장을 운영하기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고용해야하는 측면이 있었습니다.
나만 하더라도 월남인 중개인을 통해 고용이 되었던 만큼 인력조달을 위해서라도 월남인 감독이 필요했던 겁니다.
물론 이것은 표면적인 일이며 속 깊은 내막은 따로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가 양심을 어기면서 살아갑니다.
남들 보는 앞에서는 열심히 일하는척하고 틈만 나면 쉽니다.
어찌 보면 이런 일은 너무나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행동은 결국 부메랑이 되어 언젠가는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마이클이 부실하고 눈속임을 잘하는 월남직원을 내보내지 못하고 데리고 있어야하는 것도 이러한 인과법의 적용을 받고 있기 때문이지요.
지금생각에는 내가 남 밑에서 일만하며 살 것 같지만 세세생생 살아야하는 영혼의 입장에서 보면 언젠가는 내가 고용주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나가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입장에서 판단을 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렇지만 입장이 뒤바뀌게 되면 곧바로 생각이 바뀌며 태세전환이 이루어집니다.
딸기농장에서 함께 일하던 말레이시아인들이 내게 이러한 상황을 잘 보여주었지요.
일반적으로 딸기농장에서 인부들을 고용할 때 두 가지 방식으로 채용합니다.
시간제와 능력제로 인력을 고용하는데 딸기수확에 맞춰 이렇게 하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처음 농장을 조성할 때와 모종을 심을 때, 또는 수확을 할 때까지는 돈벌이가 시원치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몰려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수확 철까지는 시간제로 사람을 고용합니다.
그러다가 딸기가 제철에 쏟아지기 시작하면 능력제로 전환하는데 이때 빨리 수확을 하지 않으면 딸기가 망가지기 때문이지요.
처음 나와 함께 시간제로 일하던 말레이시아인들이 능력제가 되자 미친 듯이 일하는 모습에서 돈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시간제로 일할 때만 하더라도 힘에 겨워 억지로 일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저렇게 해서 병이 나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능력제로 바뀌는 순간부터 눈빛이 바뀌면서 사람이 달라져 보이는 겁니다.
그야말로 신들린 사람처럼 일을 했으며 어떤 월남인은 700kg 이상의 딸기를 딴 적도 있다고 합니다.
내가 일했던 농장에서 일등을 했을 때 420키로 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기록입니다.
처음에는 나에게 밀리던 말레이시아 청년들이 갑자기 숲으로 들어갔다 나오더니 엄청난 속도를 보이기에 놀랐는데 알고 보니 대마초를 피우고 온 거였습니다.
돈에 미치면 누구나 이렇게 됩니다.
아마 누군가는 내가 말하는 것을 듣고 당연하다 말할지 모릅니다.
월급제로 일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대충대충 하면 되는 것이고 능력제는 내가 일한만큼 벌 수 있으므로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생각할겁니다.
그렇지만 본인이 누군가를 고용하는 입장에 서보면 상황은 180도로 달라집니다.
일하는 사람이 돈 받는 것보다 더 열심히 일해주기를 바라고 더 오래 일해주길 바라며 더 많은 성과를 올려주었으면 합니다.
일꾼이 대충대충 하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으며 능력보다 적은 월급을 주고 더 많이 시키고 싶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고용하는 사람도 남 밑에 일하는 입장이 되면 또다시 상황은 바뀝니다.
본인이 그토록 원하던, 성실하고 부지런하며 불평불만 않는 직원이 될 기회가 왔지만 오히려 본인이 욕하던 사람의 위치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지요.
월급 받는 만큼만 일해주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정해진 시간이상의 일을 하고 싶지 않아하며 돈 받는 이상으로 성과를 올려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라면 입장에 따라 이렇게 상반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렇듯 사람들은 자신의 모순점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신은 언제나 상대방을 통해 자신을 볼 수 있게 만들어 놓았으며 상대방은 나의 거울이라는 말도 이래서 생긴 겁니다.
그러므로 남의 행동을 비판하기 전에 스스로를 먼저 점검해봐야 합니다.
나는 언제나 능력만큼 인정받아야 하고 일한만큼 성과가 따라야한다 생각하면서 타인들에게는 희생을 강요한 적이 없나 생각해봐야한다는 말입니다.
내가 세상을 살아오면서 이렇지 않은 사람을 만나본적이 없습니다.
사람은 무척 좋아 보이고 말하는 것도 겸손한 것 같은데 막상 자신의 이익 앞에서는 완전히 달라지는 모습을 숱하게 봐왔지요.
수행자들조차 이러한데 자신의 영혼조차 모르는 이들이 오죽하겠습니까,
남을 이용하는 것은 즐겨하면서도 자신이 이용당한다 싶으면 길길이 날뛰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이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반만 해도 자비로운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본인은 하지도 못하는 일을 상대방에게 원하는 것은 마왕이나 하는 짓이지 신의 품성이 드러난 사람이 할 짓이 아닙니다.
이러한 까닭에 나는 언제나 나 자신에게 떳떳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갑니다.
지금당장 죽어도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살아가고 있으므로 누구도 두렵지 않으며 누구눈치도 보지 않습니다.
언제나 나는 풍요로우므로 항상 베푸는 입장에 서있지요.
내 능력이 닿는 한에서 무엇이든 해주는 반면 누군가에게 정도이상의 무언인가를 요구하지 않으며 누구의 신세도 지고 있지 않습니다.
나에게 무엇인가를 원하는 이는 많아도 내가 무엇인가를 원하는 사람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만 내가 원하는 것은 사람들의 사랑입니다.
그것도 나를 사랑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며 살기 바랍니다.
부디 이용당하는 것이 이용하는 것보다 월등하게 이익이 많다는 점을 알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