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영혼은 부모를 선택해서 온다.

배가번드 2023. 10. 12.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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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끔씩 직장 동료로부터 자신의 신세한탄을 듣곤 합니다.

부모를 잘못만나 자신이 힘들게 살아간다는 거지요.

아마 주변에 부모를 잘 만나 잘 먹고 잘사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으로 물려받은 것 없이 힘들게 살아가는 본인의 현실이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나 역시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비슷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집에서 공업용 재봉틀로 삯바느질을 하는 바람에 심심치 않게 원단을 매고 와야만 했지요.

어린나이에 얼마나 힘이 들었든지 내가 어디에서 주워온 자식일거라 생각했을 정도입니다.

게다가 새벽 4시가 되기 전부터 일어나 어머니 장사를 위한 물품을 실어 와야 했으니 원망하는 마음으로 해결이 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통금이 해제되는 새벽 무렵 지방으로 장사 다니던 어머니 짐을 시외버스정류장까지 실어드리고 돌아오면 밥을 하는 부엌에서 시험공부를 해야만 했고 동생들 학교 보낼 준비를 마친 후에야 학교를 갈수 있었지요.

이러다보니 부모원망을 넘어서 내가 별나라에서 이 세상으로 유배 왔다는 생각까지 하게 된 겁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하는데 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어찌되었건 어린나이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신기한 일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힘든 어린 시절을 경험했던 것은 그야말로 축복이었던 것인데 당시에는 이런 사실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영혼을 깨닫는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먹고사는 일에 급급한 나머지 본인의 영혼이 따로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것은 물론 영혼의 세계에도 많은 차원이 있음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모두가 육신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다보니 육신적이고 물질적인데만 관심을 기울이고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부모를 잘 만났으면 이런 고생을 하지는 않을 것인데 라는 마음이 이래서 생기는 거지요.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볼 점은 지금의 내 자식의 생각은 어떠할까 입니다.

그들 역시 우리 기성세대들이 했던 부모원망을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내가 하고 있는 부모원망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나 역시 어린 시절 부모원망을 해보았기에 내 자식에게 만큼은 고생을 물려주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인생길이라는 것이 그렇듯이 본의 아니게 많은 고통의 시간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말았지요.

누군들 자식을 고생시키고 싶겠습니까.

내 자식이 남들보다 좀 더 편하고 풍족하게 살았으면 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공부도 더 많이 시키고자 하며 잘했으면 하는 겁니다.

그러나 그것조차 마음대로 되는 법이 없습니다.

아예 공부에 취미가 없는 이들도 있고 열심히 노력해도 안 되는 아이들이 있기 마련이지요.

고액과외를 시켜도 공부 못하는 아이들은 어쩔 수가 없으며 혹시라도 공부를 잘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부모마음처럼 자식이 잘 먹고 잘살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공부는 무척 잘했는데도 불구하고 바닥을 면치 못하고 살아가는 인생도 이 세상에는 무척 많습니다.

그들 역시 부모를 탓하며 세상 탓을 합니다.

권력을 가진 부모를 만났더라면 취직도 잘했을 것이고 부자부모를 만났더라면 놀고먹어도 문제가 없었을 거라 생각할겁니다.

이 같은 생각은 어느 정도 타당성 있게 들리기는 합니다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치에 합당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주변에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 태어나 자수성가한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볼 때 이러한 생각은 망상에 지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지요.

부모를 못 만났어도 본인이 출중하면 부모님 덕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식 덕을 보게 만들어주는 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사 모두는 본인 할 탓이며 본인이 가지고 온 복이 말해준다고 합니다.

사실 알고 보면 우리가 이 세상에 온 것은 모두가 경험을 위해서입니다.

지난시간에 잠시 언급이 있었지만 사람은 완벽한곳인 에덴으로부터 왔습니다.

그렇지만 영혼이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동안 온갖 죄업을 짓게 됨으로 인해 신의식이 옅어지며 대신에 죄의식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던 거지요.

죄는 두려움을 낳고 두려움은 빛을 피해 어둠속으로 달아나게 만듭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사람이 윤회를 하는 것이며 몸을 바꿔 가면서 살아가게 되는 겁니다.

숱한 세월을 윤회하다보면 세상살이에 흥미를 잃게 되고 또다시 원천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집니다.

그때가 바로 빛을 찾을 때이며 영적인 길을 걸어가야 할 때입니다.

이 같은 점을 성경은 상세하게 말해줍니다.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전1:1)

The words of the Preacher, the son of David, king in Jerusalem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1:2)

Vanity of vanities, saith the Preacher, vanity of vanities; all is vanity.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전1:3)

What profit hath a man of all his labour which he taketh under the sun?

 

일반적으로 전도자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으로 봅니다만 사실은 성령을 깨달은이들 모두는 다윗의 아들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성령을 깨달았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며 다윗이 하나님의 아들이면 그들도 하나님의 아들이자 솔로몬의 아들인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다윗의 후손이라 부르기도 하지요.

지혜의 대명사인 솔로몬의 뜻은 “평화롭다”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평화를 얻은 솔로몬역시 멜기세덱의 등급에 오른 다윗의 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절을 보다시피 성전을 가리키는 예루살렘의 왕(king in Jerusalem)이라 했으니 전도자는 천국복음을 전파하는 이를 뜻합니다.

솔로몬도 포함되지만 누구라도 성령을 깨달았다면 모두가 전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말하길 모든 것이 헛되다 했으니 세상이 덧없게 여겨진다는 말이지요.

해아래서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his labour which he taketh under the sun) 무슨 이득이 있는가를 말하고 있음을 볼 때(What profit hath a man) 세상을 졸업하고 돌아갈 때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3절)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심한 고생을 하는 것은 반드시 이유가 있다고 봐야합니다.

내가 잘못 살았거나 아니면 영혼이 이 세상에 머물고 싶지 않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세상살이가 지긋지긋해서 더 이상 머물고 싶지 않을 때 세상을 떠나게 되는 것이며 두 번 다시는 오고 싶지 않다 생각할 때 더 이상 윤회를 않게 됩니다.

이러한 점을 알게 되면 지금의 고생을 그다지 나쁘게 받아들일 필요가 없는 겁니다.

영혼에 대해 모르기에 이런 말을 하게 되는 것이지만 알고 보면 부모를 영혼이 선택해서 옵니다.

부모가 기도를 열심히 해서 아이를 낳으면 영적인 아이가 태어날 수밖에 없는 이치와 같은 거지요.

따라서 부모 탓이나 세상 탓을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을 탓해야 합니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큰 탓이로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