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묵은때는 불려야 한다.

배가번드 2023. 12. 4. 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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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를 하던 중에 갑자기 한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지금까지 항상 빨래를 해왔는데 빨래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그다지 깊이 있게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지요.

그저 속옷은 매일같이 샤워 전에 세탁해버리고 작업복은 모아두었다가 세탁기를 돌리곤 했던 겁니다.

그런 가운데 얼마 전 세탁기를 바꾸기 위해 기존의 것을 버리고 나서는 아예 구입을 보류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작업복은 발로 밟아서 빨아야 하는지라 세탁기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빨래 해본 이들은 알겠지만 기름이 묻은 옷은 아무리 세탁을 해도 지워지지가 않으며 반드시 뜨거운 물에 불린 후 밟아야 겨우 지워집니다.

그래서 토요일 날 반신욕을 한 후 그물에 세제와 함께 불려놓았다가 밟아서 빱니다.

이러다보니 세탁기가 별로 필요가 없는 겁니다.

이불은 어차피 세탁기로 빨지 못하는지라 24시 빨래방으로 가져가면되고 외출복은 가끔씩 울샴푸를 풀어 미지근한 물에 담가두었다가 설렁거리며 헹구듯이 빨면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지내다보니 어느 날인가 문득 속옷 빨래도 방법을 바꾸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지금까지는 샤워를 하기 전에 비누칠을 해서 급하게 빨아 널고 말았는데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반주부들이 속옷을 삶아서 빠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터인데 삶지는 못할망정 세탁을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겁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했던 이유는 머리를 염색하기 위해 샴푸를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샴푸겸용 염색약을 써보니 지금까지 내가 너무나 급하게 속옷을 빨았구나 하는 자각이 일어난 거지요.

다른 이들은 효과를 본다는 염색약이 나에게는 효과가 없다는 말을 했을 때 동생이 시간을 너무 짧게 잡아서라고 충고를 하기에 그대로 해보았더니 정말 효과가 있었던 겁니다.

먼저 머리에 샴푸를 바른 후 속옷을 빨고 샤워를 하고 나서 머리를 씻었더니 염색이 제대로 되었습니다.

염색약이 머리에 착색될 때까지의 시간이 필요했던 거지요.

마찬가지로 빨래를 할 때에도 옷에 세재가 스며들 시간이 필요할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으며 방법을 바꾸게 되자 금방 효과를 볼 수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요즘은 빨래를 물에 담아 놓는 것과 동시에 염색약을 머리에 칠하고 속옷에 비누칠을 해놓고 몸에 바디샴푸를 한 후 면도를 합니다.

면도가 끝이 나면 이번에는 빨래를 하고 늘어놓은 후 샤워를 하지요.

이렇게 되자 머리도 염색이 제대로 되었고 속옷의 때도 잘 지게 되었습니다.

방법을 약간 바꾸었을 뿐이었는데 효과가 만점이었던 겁니다.

이러한 방법은 설거지할 때도 적용됩니다.

일단 주방세재가 작용할 시간을 주어야하기에 헹굴 때까지 약간 뜸을 들입니다.

내가 이렇게 하게 된 것은 가끔씩 그릇에 기름이나 양념이 깨끗이 지워지지 않을 때가 있기 때문이었지요.

이럴 때는 그릇에다 물을 담아놓은 채 세재를 풀어놓고 한참을 기다려야 합니다.

세재가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만들어야하는 겁니다.

이렇듯 모든 일에는 때가 있습니다.

성경은 여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지요.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전3:1)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전3:2)

죽일 때가 있고 치료 시킬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전3:3)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전3:4)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전3:5)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전3:6)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전3:7)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전3:8)

 

예문 전체를 보면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순간은 필요에 따라 주어진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또한 목적에 따라 행동양식이 달라짐도 알 수 있지요.

여기에는 이래야만 한다는 말은 없으며 이래서는 안 된다는 말도 없습니다.

그저 목적에 따른 행동만이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생활방식은 일반인들의 경우에 해당되며 영생을 향해 걸어가는 이들의 행동양식은 약간 다르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3:11)

(He hath made every thing beautiful in his time: also he hath set the world in their heart, so that no man can find out the work that God maketh from the beginning to the end.)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전3:12)

(I know that there is no good in them, but for a man to rejoice, and to do good in his life.)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전3:13)

(And also that every man should eat and drink, and enjoy the good of all his labour, it is the gift of God.)

 

11절에 하나님은 그의 때에 맞춰 모든 것들을 아름답게 만들었다고 합니다.(He hath made every thing beautiful in his time)

시기적절할 때 필요에 의해 모든 것들을 창조하셨다는 말이지요.

또한 그들의 마음 안에 세상을 조성해놓았다고 했습니다.(he hath set the world in their heart)

이 말씀은 천국이 너희 안에 있다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일치되는 것으로서 사람이 마음먹기에 따라 어떤 세상이든 경험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물론 세상만물 안에 빛이신 성령이 담겨있음을 이렇게 표현한 겁니다.

그렇지만 사람으로서는 하나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알자가 없다고 했지요.

육적인 인식의 범주아래 놓인 사람이 하나님 일을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전도자는 12절에서 그들 안에 선이 없다고 했습니다.(no good in them)

선하신이는 하나님밖에 없음으로 선이 없다는 말은 성령이 깨어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기뻐하고 선한 일을 행해야한다 말합니다.(for a man to rejoice, and to do good in his life)

자신을 위해 이렇게 사는 것이 좋다는 거지요.

비록성령의 내재함을 모르고(경험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할지라도 매사에 기뻐하고 선한 일을 행하면 그자체로하나님의 축복아래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전도자의 눈에는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로움의 산물을(the good of all his labour) 즐기는 것조차도 하나님의 선물로 보인다고 했습니다.

전도서 3장 전체 내용을 볼 때 영적인 길을 걸어가는 이들은 조급한 마음을 갖지 말고 인내심을 가지고 범사에 감사하며 선한 일을 행하며 살아가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아직 우리의 때가 오지 않아서 일뿐이며 맡은바 역할이 끝나지 않았기에 성령이 드러나지 않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으면 응답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합니다.

성령이 임하실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며 우리의 신구의가 씻길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덕지덕지 눌러앉은 세상 때를 벗기려면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묵은 때를 벗기고 싶은 이들은 들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