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된 자가 먼저되다.
가끔씩 함께 일하는 이들 가운데 경험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노가다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으며 약간의 눈썰미만 있으면 누구든지 일할 수 있다는 겁니다.
완전히 틀리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맞는 말이라고 볼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경험이 없는 사람과 경험이 많은 사람의 일하는 모습은 다르고 일하는 방식도 다르며 결과도 다르므로 경험자와 비경험자는 엄연히 차이가 납니다.
하다못해 복장조차도 다르기 마련이며 행동하나하나가 초보자와는 확실히 다릅니다.
이러한 까닭에 사람들은 그럴듯하게 복장을 꾸미며 장비하나에도 신경을 쓰는 거지요.
개인 돈을 들여서라도 비싼 작업복이나 작업화를 신으며 자신이 경험자라는 것을 보이려고 하는 겁니다.
말도 그럴듯하게 하며 마치 자신의 경험이 많다는 듯이 말하는데 한 두 마디만 들어보면 밑천이 드러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이 경험이 필요 없다 말하기 때문이지요.
경험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은 경험이 많은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는 자체만으로 이미 자신의 실력을 드러내는 것과 같습니다.
함께 일해 보면 그 사람의 경험치는 금방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하다못해 부레카 작업만 하더라도 경험자와 비경험자의 작업방식과 결과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언젠가 이런 일에 대해 확실하게 인식하는 일이 있었지요.
자신이 사람들을 데리고 한 분야의 일을 맡아서 해본모양으로 나에게 경력을 물어온 적이 있었는데 말로는 제법 경험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겁니다.
그런데 막상 일을 해보니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 확연하게 드러났습니다.
우선 장비를 다루는 솜씨가 아니었고 어설프기 짝이 없었으며 순서도 엉망이었지요.
그러다보니 일하는 속도는 물론이고 일해 놓은 결과가 좋지 못한 것은 물론입니다.
관리자와 개인적인 친분으로 완장을 차고 있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마치 자신이 대단한 기술자인양 행동한 것은 작업 시작함과 동시에 탄로가 났으며 실력이 바닥을 드러낸 겁니다.
보통의 경우 브레카 작업을 그저 벽이나 바닥을 허물고 배관을 심기만 하면 된다고 여기고 있지만 여기에도 많은 노하우가 필요합니다.
경험이 많은 사람은 벽이나 바닥을 많이 허물지도 않을 뿐 아니라 작업의 종류에 따라 방법을 달리하며 속도도 무척 빠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해야 하며 저러한 상황에서는 저러한 방법을 취해야한다는 점을 확실히 알고 있기에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일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사람은 일하는 방법을 찾는데 만 해도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예를 들어 박스 하나를 심더라도 용도에 따라 종류를 달리해야 하는데 경험이 없으면 무턱대고 작업을 마쳐놓고 뒤에 다시 수정을 해야 하는지라 이중일이 되고 말지요.
스위치를 달 것인지 콘센트를 달 것인지에 따라 박스의 깊이가 달라져야하기 때문에 경험이 많지 않으면 시행착오를 겪기 마련입니다.
이렇듯 경험자는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후에 오늘날에 이르렀기 때문에 경험자 대우를 받는 겁니다.
이러한 일은 작업 현장에만 국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영적인 일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천국과 지옥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남의 말을 듣고 그대로 따라서 옮길 수는 있어도 제대로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마치 경험 없는 이가 그럴듯하게 말은 해도 막상 작업을 할 때면 헤매는 것과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가끔씩은 일 잘하는 사람가운데도 경험이 많지 않은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보다 잘 안다 싶은 사람이 있거나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본다는 겁니다.
실지로 나와 일하는 사람 가운데 이런 사람이 있었지요.
골프장에서 시설부장으로 일하던 분인데 나보다 경력이 적었음에도 실력이 뛰어났습니다.
알고 보니 엔지니어 출신으로 기술계통의 일을 오래하신 분이었는데 응용력이 남달랐으며 자신이 모른다 싶으면 주저 없이 물어보는 겁니다.
이런 까닭에 이 사람의 실력은 다른 사람과는 비교가 되지 않게 높았고 경험자들조차 이 사람을 대우할 수밖에 없었으며 나 역시 이 사람을 기술자로 모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이 사람으로 인해 회로를 알게 되었으니 어찌 보면 나에게는 세상차원의 선생님입니다.
반면에 어떤 이는 경험은 엄청 많은데 실력이 그다지 좋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현장 경험이 많다보니 기초공사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없으며 실력 또한 갖추었는데 회로에 대해서는 모르더라는 거지요.
한번은 두 사람이 한조가 되어 경비실에 전등설치를 했는데 전선투입을 두고 다툼이 벌어진 겁니다.
당연히 현장 경험이 많은 사람의 주장대로 일을 진행시켰는데 나중에는 전등불이 들어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경비실에 일괄스위치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입선과 결선을 보통의 경우와 달리해야하는데 그것을 몰랐던 거지요.
이렇듯 경험이 많다고 해서 모두를 아는 것은 아니며 경험이 적다고 해서 실력이 없다고 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예수님은 성경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마20:16)
So the last shall be first, and the first last: for many be called, but few chosen.
이 말씀은 포도원에서 일한 품꾼들의 불평을 통해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게 일어나는 영적인일을 말해놓은 겁니다.
사실 이 내용은 천국에 이르는 것은 세상기준과는 다르다는 것을 설명한 것으로 물질세상의 잣대로 판단할 것은 아닙니다.
부르심 받는 이는 많아도 선택받는 이가 적다는 것을 예수님은 확실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for many be called, but few chosen)
오래 일한 사람과 잠시 동안 일한사람의 품삯을 다르게 적용하는 것은 세상기준으로는 당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을 함께 보심으로 이번생의 일만 보는 것이 아니며 그 사람의 내적인 면까지도 보십니다.
전생부터 축적된 공덕과 사랑의 마음을 헤아리며 영적인 길을 걷고자하는 마음과 그들과의 인연의 깊이정도를 본다는 거지요.
그래서 영생을 상속받는다는 말이 생겨난 겁니다.
이러함으로 평생을 성경을 붙들고 몸부림을 쳐도 빛이신 성령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영생을 얻은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험이 아무리 많은 기술자라 하여도 전등불을 밝힐 수 없다면 제대로 된 기술자가 아닌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런 말씀을 남긴 거지요.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만약 이 말씀을 액면대로 받아들이면 예수가 이 세상에 다시 올 때까지 기다려야합니다.
그렇게 되면 구약속의 많은 선지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고 예수님이 보혜사를 보낸다는 말씀도 부정되어야 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통해 영생을 얻게 된다는 점을 믿는 이들은 성경을 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점을 배제(排除)하고 보다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두 눈을 하나로 모으면 예수께서 보낸다는 보혜사는 나타납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재하신 성령이 모습을 드러낼 거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빛이신 성령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충분히 겸손하지 못하다는 말이며 하나님기준에 미달이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실력이 없는 기술자와 같이 경험을 하지 못한 이들은 중언부언 말이 많을 것이며 경험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말하게 됩니다.
영적인 일에 대해 관심이 전혀 없는 이가 아니고 기본소양을 갖춘 이라면 사람을 보는 순간 어느 정도 알아봅니다.
이 사람이 영적인 사람인지 세상일에 빠져있는 사람인지를 알아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나 같은 경우 뺀지나 드라이브 등의 장비를 다루는 손동작만 보아도 짐작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에 대해 말씀을 들어보면 영적체험여부를 단박에 알아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매일같이 천상의 음류(音流)를 듣고 있는 이의 특권입니다.
볼 수 있는 귀를 가진 이들은 이 말씀을 먹을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