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용서받고 싶은자 먼저 용서하라.

배가번드 2024. 1. 11.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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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容恕)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말로는 용서했다고 말하지만 진정으로 상대방을 용서하려면 용서와 무관해져야 가능합니다.

흔히들 나는 너를 용서한다고 말하는데 이는 용서의 주체가 자신이라는 전제하에 하는 말입니다.

내가 잘했고 네가 못했는데 그 못남을 용서하겠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는 거지요.

하지만 속 깊은 내막을 알고 보면 일방적으로 잘한 경우는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용서를 하고 용서를 받는다는 것은 어떤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이고 다툼이 일어났다는 겁니다.

서로가 자신이 옳다는 것을 주장하는 바람에 다툼이 일어났으니 자신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것은 당연합니다.

말로는 내가 잘못했다고 화해를 했지만 속 깊은 마음에는 앙금이 가라앉아 있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잘했는데 귀찮기도 하고 더 이상 다투기 싫은지라 덮어버리고 싶은 거지요.

그래서 용서라는 말을 사전에서는 지은 죄나 잘못을 꾸짖거나 벌하지 않고 덮어두는 행위라고 적고 있습니다.

잘못을 덮어두는 것이지 진정으로 죄나 잘못을 사람이 없애지 못한다는 것을 사전에서조차 발견할 수 있는 겁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잘잘못을 따지기 위해 법에 호소하기까지 합니다.

일반인들의 삶은 이러한 일이 법으로 해결될지 모르지만 구도자의 삶은 법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법이라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이라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아무리 똑똑한 법관이라 할지라도 인간을 용서할 권한을 부여받지는 못했습니다.

그저 인간들끼리 약속한 것들을 이행하는 것뿐이며 그조차도 완전하게 적용한다고 볼 수 없지요.

우죽하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말이 생겨났겠습니까.

그래서 진정으로 우리가 구도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는 영의 세계를 알아야 하며 하나님의 용서에 대해 알아야합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이신 성령이 드러난 분의 용서를 배워야한다는 말입니다.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요8:7)

So when they continued asking him, he lifted up himself, and said unto them, He that is without sin among you, let him first cast a stone at her.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요8:8)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요8:9)

And they which heard it, being convicted by their own conscience, went out one by one, beginning at the eldest, even unto the last: and Jesus was left alone, and the woman standing in the midst.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요8:10)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요8:11)

She said, No man, Lord. And Jesus said unto her, Neither do I condemn thee: go, and sin no more.[KJV]

"No one, sir," she said. "Then neither do I condemn you," Jesus declared. "Go now and leave your life of sin."[NIV]

이 장면을 보면 이 세상에 죄가 없는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7절)

7절에 예수님이 몸을 일으키신 것은 세상(땅)을 살아가는(글을 쓰는) 사람이 영으로 부활해야함을 뜻하는 겁니다.

단순하게 일어난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을 일으켜 세웠다는 말은(he lifted up himself) 영의 몸으로 일어나셨다는 뜻이며 성령의 입장에서 인간들에게 너희 모두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거지요.

그렇지만 예수님이(성령) 사람들 속에 섞여 살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또다시 땅에다 글을 쓴다고 말해놓았습니다.

모든 사람 안에 성령이 담겨있음을 보여주고자 이렇게 기록해놓은 겁니다.

예수께서 참된 인간의 표본이 되어 말해주자 사람들의 마음 안에서 성령이 일시적으로 드러나 다들 심판의 자리에서 돌아서게 되었음을 9절은 말해줍니다.

그리고 뒷부분에 예수와 여자만 남았다고 한 것은 오로지 성령이신 하나님과(예수) 육신만이(간음한 여인, 죄인) 존재한다는 뜻입니다.(9절)

인간에게는 누군가를 단죄할 자격이 주어져 있지 않으며 오로지 자신을 심판할 이는 자신 안에 내재하는 성령이신 하나님밖에 없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10절에서 이 같은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있는 겁니다.

이야기의 흐름상 문답형식의 문장으로 만들어 놓았지만 사실은 우리에게 확인시켜주고 있는 거지요.

세상 누구라도 자신 안에서 성령이 되살아나게 되면 타인에 대한 심판을 하지 않게 됩니다.

상대방의 내재하신 성령이 그 사람을 심판하게 되는지라 구태여 자신이 나서서 심판을 내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예수께서는 11절에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노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간음한 여인을 용서한다는 말이 아니라 성령이 드러나게 되면 죄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뜻입니다.

11절 뒷부분에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한 부분은 더 이상 죄가 없다는(sin no more) 말로 바꾸어도 무방합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한글 성경은 [KJV]를 번역한 것으로 보이는데 [NIV]를 보면 좀 더 명확하게 가슴에 와 닿습니다.

뒷부분만 직역해보면 네 죄의 삶을 떠나라“leave your life of sin”입니다.

죄 많은 여인 앞에 성령이신 예수가 나타나는 순간 죄로 얼룩진 삶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아직도 여러분은 누군가를 용서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지요.

또한 타인의 믿음에 대한 심판을 아직도 하고 싶은지 묻고 싶습니다.

아마도 내게 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오늘 올린 예문은 예수님이 성령과 육신사이를 오가며 가르침을 펼치신 내용입니다.

8절 시작부분을 보면 내말이 참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다(요8:1)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저희를 가르치시더니(요8:2)

감람산으로 가셨다는 말은 높은 의식의 세계로 가셨다는 말이며(1절) 아침에 성전으로 들어오셨다는 말은 빛이신 성령이 육신을 통해 나타내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그에게 가서 가르침을 받은 거지요.(2절)

아침에 태양이 떠오르듯이 우리의 삶에서 빛이신 성령이 드러나야 우리자신의 죄를 진정으로 용서받을 수 있게 되며 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겁니다.

이 같은 일은 살아서도 경험할 수 있고 죽음에 임박하여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조심하여야 할 것은 남을 함부로 심판하게 되면 그 심판으로 인해 심판받는 하늘에 오른다는 사실입니다.

부디 모든 이들이 이런 사실을 알고 심판받지 않았으면 합니다.

자신의 죄를 용서받는 가장 확실한 길은 남의 잘못을 용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