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시아문(如是我聞).
지난 일요일은 평소 친하게 지내는 사형한분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식사를 하는 도중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지요.
늘 그렇듯이 구도의 길에서 만난 인연인지라 우리의 주된 이야기는 수행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요즘은 내가 성경에 몰입이 되어있는지라 주로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약간의 인식에 차이점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나로서는 성경의 가르침을 통해 얻어야할 것은 예수를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와 동일해져야한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고 사형은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 우상숭배의 형태가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는 말을 하기에 약간의 의견차이가 있었던 겁니다.
사실 이러한 차이는 별거 아니라 여길 수도 있지만 생각에 따라서는 확실하게 구분되어지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성경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내가 읽고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누가 해석한 것을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가 주장하는 바였지요.
비록 내가 성경해석을 한다하더라도 내말을 따를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에 옳다싶은 것을 따라야 한다는 말입니다.
95년 입문을 한 뒤로 지금까지 나를 힘들게 했던 일이 바로 이러한 점이었다 말할 수 있습니다.
한분의 스승을 모시고 수행의 길을 걸어오는 동안 늘 들어야했던 말이 “스승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었지요.
본인도 머리가 달렸고 눈도 귀도 코도 달렸는데 왜 스승이 말씀하신 것만 주야장천(晝夜長川) 인용하려 드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던 겁니다.
호주 살 때 이런 일의 심각성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발생하였는데 채식식당 오픈을 앞두고 회의가 벌어졌을 때입니다.
둥그렇게 자리를 만든 것 까지는 아주 좋았는데 말끝마다 스승님의 말씀을 들고 나오는 통에 회의가 결말을 내지 못한 채 끝나고 말았지요.
식당을 오픈하기위한 자금마련부터 시작해서 장소며 운영방식까지 단한가지도 결정을 못 내리고 회의자체가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이쪽에서 스승님께서 어느 장소에서 어떤 말씀을 하셨다 말하면 건너 쪽에서는 또 다른 말씀을 하셨다는 말로 응수를 하는지라 도무지 결론이 나지 않는 겁니다.
사실 이런 일은 회의를 하고 말고 할 것이 아니라 뜻이 있는 몇몇이 모여서 결정하면 간단하게 끝날 일이지요.
어차피 돈이 필요한 일인 만큼 자금력이 있고 요리 실력이 있는 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여 실행하면 될 것을 모든 회원들을 동참시키려다보니 일어난 해프닝이었던 셈입니다.
이와 같은 일은 지금도 일어나는데 내가 지금하고 있는 성경 연구도 고깝게 여기는 시선들이 있습니다.
스승님이 계시는데 왜 자신이 스승노릇 하느냐는 것이 명상단체 사람들의 생각이며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나더러 예수흉내를 내고 있다 말합니다.
참으로 답답한 것이 스승을 따르는 목적은 스승의 가르침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데 있는 것이지 스승을 숭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하는 것인데 왜 그렇게들 오해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을 통해 얻어야할 것은 구원이며 예수와 하나 되는 것인데 어째서 예수를 숭배하는 자리에 스스로를 못박으려드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진정 스승을 신으로 여기고 예수를 하나님처럼 여기려면 그분들 가르침의 핵심을 알아야 하는 것인데 말에 최면이 걸려 그 속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언젠가 이런 일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볼 기회가 주어진 적이 있었지요.
스승의 법문 중에 지구가 둥근 것이 아니라 타원형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었습니다.
이런 말이 나온 이유는 일부과학자들의 주장을 사실로 받아들였기 때문으로 현 지구과학에는 부합하지 않는 이론입니다.
지구가 돈다는 것을 확실시 하는 이론에서 출발한 이러한 가설은 상당히 과학적인 겁니다.
수억 년을 돌고 있다면 원심력에 의해 지구가 타원형이 되는 것이 타당하다 여겨질 수 있으며
이러한 관점(觀點)은 현대문명과 과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요.
이러한 가설이 사실이 되려면 지금껏 알고 있던 과학자들의 주장이 모두 부정되어야만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지금까지 영상을 통해 보았던 모든 것들이 CG라는 말이며 제대로 된 지구사진이 단한장도 없다는 말입니다.
이 말인즉 인류가 단 한 번도 우주공간에 나간 적이 없다는 말인 동시에 과학자들의 뻥에 인류가 속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깨달은 스승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지구과학은 엉터리가 되는 것이며 지구과학이 진리라면 깨달은 스승이 잘못알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나 같은 경우 스승의 말씀을 지구과학에 대해 맹신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지난 일요일 내가 했던 말도 바로 이러한 뜻에서 한 말이었는데 무작정 누군가의 말을 믿을 것이 아니라 따져보고 상고해보라는 뜻이었지요.
그날 또다시 인류의 달 착륙에 대한 일을 내가 거론하게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과학자들의 말에 최면이 걸릴 것이 아니라 보다 합리적인 사고력을 발휘하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겁니다.
삼단 로켓이 필요한 이유가 대기권을 벗어나 우주공간으로 나가기 위한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라는 사실이 인정된다고 한다면 달에서 이륙할 때 역시 추진력을 얻어야 지구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연료 없이 돌아오는 방법이 있다면 모를까 모든 연료가 소진된 아폴로가 무슨 방법으로 돌아올 수 있었는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비행기가 1만 미터 이상을 날지 않는 이유가 공기가 희박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알면서도 공기가 없는 상태에서 달나라에 가는 추진력을 어떻게 얻을 수 있었을까를 고민하지 않는다면 사고력(思考力)에 이상이 생긴 겁니다.
산에 올라가서 밥을 해본 이들은 알겠지만 높은 산에 올라가면 밥이 잘되지 않습니다.
공기가 희박하여 불완전 연소가 되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이유로 공기 없이 연소가 되는 연료가 나오게 되었음을 과학적으로 증명을 하거나 아니면 무중력상태에서 사람이 활동할 수 있음을 증명할 수 있지 않다면 달에 다녀왔다는 것은 인정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몇 번이나 거듭해서 말하거니와 지구자전속도 1600키로와 공전속도 10만 8천 키로를 능가할 수 있는 추진력은 지금의 지구과학에는 없습니다.
대기권을 벗어나기 무섭게 2천도가 넘는 고열에 노출된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주장인데 그렇다면 어째서 우주복이 2천도의 열에 견딘다는 사실을 보여주지 못하는 건지 따져봐야 합니다.
우주선에 사용되는 수많은 전선과 부속품들이 2천도 고열에 멀쩡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면 달에 다녀왔다는 말을 하는 사람 모두는 거짓말쟁이거나 위선자들입니다.
과학을 주도하는 이들은 사기꾼들이고 그들의 말을 듣는 사람들은 사고(思考)가 사고(事故)를 당해 사고력(思考力)을 상실해버린 겁니다.
이런 일에 대해서도 예수님은 말해놓으셨지요.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마15:9)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마15:11)
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가로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줄 아시나이까(마15:1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심은 것마다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마15:13)
그냥 두어라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신대(마15:14)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지구가 돌지 않고 평평하다는 사실을 믿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지구가 돌고 있음을 듣고 안다고 말하지 말고 돌 수밖에 없는 합당한 이유를 말하라는 것이고 평평하다면 평평하다 주장하는 근거를 대라는 뜻입니다.
부화뇌동(附和雷同) 하지 말라는 말인 동시에 우상숭배의 자리에서 내려서라는 거지요.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목사님의 말을 따를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찾아야만 합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일찍이 석가모니의 제자 아난은 여시아문(如是我聞)을 말했던 겁니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는 말로 풀이되는 이 말을 아난이 한 것은 각자가 받아들이는 진리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남이 깨달은 바를 옮기는 사람이 되지 말고 본인이 깨달아야 한다는 뜻이지요.
내말을 믿는 이들만 들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