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계가 있어야 하나님 자녀다.
교회에서 말씀을 듣다보면 한 번씩은 의아(疑訝)할 때가 있습니다.
도대체 저분들이 영적인 세계를 알기는 하나 싶을 때가 있다는 거지요.
본인이 경험해본적도 없는 말을 한다 싶은 것이 지옥에 빠지면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한다 말하기 때문입니다.
지옥에 빠져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분들이 지옥을 설명할 때 경험자들의 영상을 보여주는데 그자체로서 심각한 모순이 있는 겁니다.
지옥에 다녀온 사람의 영상을 보여주면서 지옥은 영원한곳이라 말하는 모순점을 스스로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이래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계율을 위반하면서 살아갑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전도활동도 열정적으로 하던 분이 바람이 나서 이혼까지 했다는 사실을 확인한바 목사님말씀이라고 해서 백퍼센트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아울러 사람 속을 알 수 없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지요.
과연 이러한 사람이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없는지를 우리가 판단하기는 어렵겠지만 예수님은 여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해 놓았습니다.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마5:27)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5:28)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마5:29)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마5:30)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린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마5:32)
이 내용을 보게 되면 바람이 나서 이혼한 것은 명백하게 계율위반이 됩니다.
그러면 바람을 피워서 이혼한 사람은 구원을 받았다고 봐야할 것인지 지옥에 떨어지게 되는 건지 궁금해집니다.
내가 다니는 교회목사님 말씀에 따르면 한번 구원을 받은 이는 절대로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으니 바람피운 일로 지옥에 떨어지는 일은 없어야만 합니다.
모르긴 하지만 스스로 구원을 받았다고 여기는 이들 가운데 남몰래 계율을 위반하는 이들이 상당수 있을 걸로 생각되며 그들 대부분은 죄를 지어도 이미 구원은 받았다 생각할거라 여겨집니다.
그렇지만 예문을 보자면 예수님은 지옥에 떨어진다 말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누구 말이 옳다고 봐야할지 우리 스스로가 판단해봐야 할겁니다.
이러한 이유로 가장 합당한 생각은 영원한 구원은 영혼이 성령과 하나 되었을 때이며 성령과 연합되지 못한 영혼은 좀 더 많은 시간의 반복된 학습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
또한 지옥에 떨어질 짓을 했더라도 뉘우치고 돌이키면 또다시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지요.
내가 개인적으로 바람피운 사람에게 물어본 적은 없지만 교회를 아직까지 다닌다는 사실을 볼 때 목사님말씀 중에 자신이 필요한 부분만 취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한번 받은 구원은 절대로 누가 뺏어갈 수도 없고 영원하다는 말을 하는지라 그 말씀을 붙들고 있을 거라는 말입니다.
이래서 내가 영생을 얻는 것은 육신이 아니라 영혼이라 말을 하는 것이며 영혼이라 해서 모두가 영생을 얻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하는 겁니다.
자신에게 영혼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영혼이 있다 여기는 이들조차도 성령과의 상관관계를 제대로 알고 있지는 못합니다.
많은 이들이 성령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여기고 있거나 예수님의 피가 우리 죄를 사해준다 믿고 있지만 그렇게만 여길 수는 없습니다.
자신의 행동역시 그러한 사실에 걸맞게 따라가야만 하는 거지요.
진정 구원을 받아 영생을 얻었다면 예수님처럼 행동하고 말할 수 있어야만 됩니다.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요8:7)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요8:9)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요8:10)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요8:11)
간음한 여인을 대하는 예수님처럼 우리역시 이러한 마음상태가 되어야 비로소 구원이 이루어져 성령과 하나 되었다 말할 수 있는 겁니다.
아직도 타인들의 행위에 대해 심판자의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면 본인역시 그 사람과 같은 처지에 놓일 가능성이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너도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보자는 식의 시험이 주어진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누구라도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본인의 육신에 초점이 맞춰져 살기 때문이지요.
자신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판단함으로 진정 정의롭고 공정해지기는 힘듭니다.
그래서 반드시 상대방의 잘못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봐야하는 겁니다.
내가 바람피운 것은 잘못이지만 그렇게 큰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쉽게 용서받을 수 있다 여기기 십상입니다.
그러나 막상 상대방이 바람을 피우거나 잘못을 저지르게 되었을 경우 쉽게 용서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이것이 쉬울 것 같지만 어려우며 누군가에게는 무척 힘든 일입니다.
특히 자기애(自己愛)가 강한사람일수록 이런 일은 어려우며 모든 잘못을 남 탓으로 돌리기 쉽습니다.
옛 속담에 처녀가 애를 낳아도 할 말이 있다고 했지요.
떳떳하지 못한 일에도 얼마든지 합당한 이유를 찾아낼 수 있다는 뜻에서 이런 말이 생겨났을 거라 생각됩니다.
머리가 좋은 사람들은 더 많은 핑계거리를 찾을 것이고 합당하고 타당성 있는 명분을 찾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기어코 찾아낸 명분과 정당성은 벌이 주어지거나 입장이 바뀜으로 인해 여지없이 무너집니다.
일반인들의 경우에는 모르겠으나 영적인 길을 걷는 구도자는 곧바로 이런 일이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자신이 저질러 놓은 일이 잘못된 것이라면 하나님은 어떤 형태로든 벌을 주게 되어있습니다.
그렇지만 본인이 벌을 받는다고 여기지 않는다면 입장을 바꾸어서 경험하게 만듭니다.
성경은 이 같은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지요.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 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히12:7)
If ye endure chastening, God dealeth with you as with sons; for what son is he whom the father chasteneth not?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히12:8)
But if ye be without chastisement, whereof all are partakers, then are ye bastards, and not sons.
우리가 징벌을 참는 것은(ye endure chastening) 징계를 달게 받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이 말인즉, 현실 속에서 마주치는 고통과 괴로운 순간들은 하나님의 징계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아들처럼 여기기 때문에(God dealeth with you as with sons) 징계가 있어야만 한다는 거지요.(7절)
그래서 만약 징계가 없다면(But if ye be without chastisement) 아들이 아니라 사생아라고 했습니다.(ye bastards, and not sons)
그런데 8절에 모든 일에 대한 모든 것들은 나누어진다고 합니다.(whereof all are partakers)
죄지은 이가 벌을 받지 않으면 그 죄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버림받은 이들이(영적이지 못한 사람들) 분담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징계가 주어진다면 싫어할 것이 아니라 다행이라 생각해야하며 징계가 주어지지 않으면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은 겁니다.
징계를 즐거워할 수 있는 이들만 들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