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는 순한 양과 같다.
예전에 신통력에 대한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메두사라는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악령에 사로잡혀 신통을 일으키는데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일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주인공이 미워하는 사람이 죽었으면 하는 마음을 먹으면 멀쩡하던 사람이 창문 밖으로 뛰어내려 자살하는 일이 발생하더라는 거지요.
이것은 어디까지나 영화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기는 하지만 현실 속에서 만약 우리에게 이런 능력이 생긴다면 큰일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자신에게 조금만 위해를 가한다 싶으면 당장 죽일 듯이 반응하는 마음을 가진 상태에서 신통력이 생기면 숱하게 많은 사람들을 죽이게 됩니다.
그러므로 나 같은 경우 수행 길에 접어듦과 동시에 신통력이 생기지 않길 간절히 바랐습니다.
어떤 능력도 원하지 않았더니 온 세상이 내 가슴 속으로 들어오는 기적이 일어났지요.
신통력에 대한 욕구와 욕망을 버리면 영의 세계가 열린다는 사실을 체험으로 알았던 겁니다.
나 홀로목사만 이런 것이 아니라 사도들도 이렇게 경험했음을 지난시간 성경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령과 함께 하는 사도들에게 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보았으면 합니다.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행8:26)
And the angel of the Lord spake unto Philip, saying, Arise, and go toward the south unto the way that goeth down from Jerusalem unto Gaza, which is desert.
주의 사자는 내재하신 성령을 가리키며 가사(Gaza)의 뜻은 “강하다”입니다.
예루살렘은 성전을 뜻함으로 빌립이 성령을 깨달았음을 알 수 있으며[사도(성령)들은 예루살렘(성전)에 머물고 있음] 복음전파를 위해 세상으로(광야) 나아가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과 하나 된 사람답게 성령을 담을 만큼 강한 육신에게 말씀을 전하라는 뜻이지요.
그러면 누가 과연 이렇게 강한 육신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행8:27)
돌아 가는데 병거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행8:28)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행8:29)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뇨(행8:30)
대답하되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 하고 빌립을 청하여 병거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행8:31)
에디오피아는 고대 그리스어 “아이티오피아”에서 유래된 말로서 “검은 얼굴의 사람들에 땅”이며 간다게의 뜻은 “감독자”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에 대해 모르는 사람을 에디오피아에 비유했으며 인생전체를 감독하는 이(간다게)는 그 사람의 영혼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진정한 영혼에는 성별이 없음으로 내시라 말해놓은 것이며 성령을 모르던 사람이 일순간 영적인 감흥이 일러 영적인 일에 관심을 기울인 것을 예루살렘에 왔다는 표현을 한 겁니다.(27절)
하지만 곧바로 마음을 돌이켜 육신으로 돌아가는 중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읽었다고 합니다.(28절)
이렇게 또다시 육신에 초점을 맞춘 생활을 하려던 찰라(돌아가던 중) 성령이 빌립에게 가까이 가라 명을 내렸습니다.(29절)
병거는 전쟁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의 육신을 가리키지요.
그래서 그 사람(영혼)에게 이사야의 글을 이해하는가를 물었던 겁니다.(30절)
그런데 31절은 보면 에디오피아 사람의 영혼이(내시) 영적 스승을 무척 갈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위의 내용을 현실로 가져와보면 빛이신 성령을 모르는 이방인(어둠속에 머무는 사람)이 영적인일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면 반드시 사도와 같은 영적스승을 찾게 되며 육신(병거) 안에 성령의 불씨를 담게 된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면 어둠속에 갇힌 영혼이 알고 싶은 내용이 무엇일까 보도록 하지요.
읽는 성경 귀절은 이것이니 일렀으되 저가 사지로 가는 양과 같이 끌리었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의 잠잠함과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행8:32)
The place of the scripture which he read was this, He was led as a sheep to the slaughter; and like a lamb dumb before his shearer, so opened he not his mouth:
낮을 때에 공변된 판단을 받지 못하였으니 누가 가히 그 세대를 말하리요 그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이로다 하였거늘(행8:33)
In his humiliation his judgment was taken away: and who shall declare his generation? for his life is taken from the earth.
내시가 빌립더러 말하되 청컨대 묻노니 선지자가 이말 한 것이 누구를 가리킴이뇨 자기를 가리킴이뇨 타인을 가리킴이뇨(행8:34)
And the eunuch answered Philip, and said, I pray thee, of whom speaketh the prophet this? of himself, or of some other man?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행8:35)
이 내용은 이사야서 53장 7~9절에 나옵니다.
워낙 비유로 이루어진 내용인지라 본문을 봐야하지만 시간관계상 다음으로 미루고 우선은 사도행전에 나오는 내용만 보도록 하겠습니다.
영적체험 없이는 이해하기가 어렵게 되어있기에 빌립이 풀어주었는데 아쉽게도 풀어놓은 내용은 기록되지 않았지요.
하여 나 홀로목사가 성령으로서의 빌립에게 요청하여 내용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우선 32절에 도살자에게 끌려가는 양과(as a sheep to the slaughter) 털 깎는 자 앞의 어린양은(like a lamb dumb before his shearer) 성령을 깨달은 인자를 뜻하는 겁니다.
양이 목자의 처분에 그 어떤 불만을 나타내지 않듯이 인자(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는 어린양)는 삶에 대한 그 어떤 불평불만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opened he not his mouth) 비유한거지요.
성령이신 하나님이 이 세상 모든 것을 관장(管掌)하는 줄 아는지라 주어진 매순간을 하나님이 주신다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내적으로 그에 대한 굴욕감과 심판이 빼앗겼다 했으니(In his humiliation his judgment was taken away) 공정한 판단을 받지 못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뉘라서 감히 그의 세대라 말하겠느냐 되묻고 있는 것인데(who shall declare his generation?) 성령과 함께하는 자가 누구냐는 말이지요.
33절 마지막 부분에서 생명이 땅으로부터 빼앗겼다 한 것은(his life is taken from the earth) 육에 속한 이에는 성령(생명)이 머물지 못한다는 것을 비유한 겁니다.
그런데 34절을 직역해보면 대답하여 기도한다고(the eunuch answered Philip, and said, I pray thee) 기록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즉, 내시의 영혼이 성령과 하나 된 빌립에게 기도했다는 것이며 내재한 성령이 깨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영적으로 어둠속을 헤매던 사람이 성령의 불씨를 전해주는 빌립을 만나 제대로 된 성령의 불씨를 전해 받게 되었음을 비유로서 말해놓았습니다.
그가 궁금해 한 것은 이사야서에 나오는 양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이었는데 그것이 예수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것을 빌립이 말해주었다고 합니다.(35절)
정확히 표현하면 이사야서를 통해 예수가 도살자에게 끌려가는 양과 같음을 설명해 주었다는 말이지요.
아쉽게도 제한된 지면관계로 더 이상 진도를 나갈 수 없기에 여기에서 잠시 끊었다가 곧바로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