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도 회개하면 용서받는다.
기독교인들에게 천국을 말해보라하면 흔히들 걱정근심이 없고 평화로운 곳이라 말합니다.
그러면 걱정 근심 없이 사는 사람은 천국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느냐 물으면 그렇지 않다고 하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라야 천국에 이를 수 있고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하지요.
이렇게 말하는 이들과 밤새 논쟁을 벌여봐야 소용이 없으며 결론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의 천국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고 봐야하며 진정한 영생은 빛이신 성령과 하나 되었을 때 가능함을 알 수 있는 겁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천국은 따로 있지만 구태여 공통점을 찾으려면 빛으로 통일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나 같은 경우, 빛은 어둠이 바탕이 되어야 빛날 수 있는 것 같이 걱정근심도 진정한 평화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여깁니다.
그리고 천국은 정형화(定型化)된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하나님도 어떤 틀 속에 갇힌 분이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만약 천국이 특정한 틀을 가지고 있고 하나님이 형상에 매여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천국도 하나님도 아니라는 거지요.
지금껏 성경을 통해 몇 번에 걸쳐 확인한바 있지만 오늘 또 다시 확인해 보겠습니다.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행11:1)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힐난하여(행11:2)
가로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행11:3)
베드로가 저희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행11:4)
이 말씀을 액면대로 받아들이게 되면 마치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에게 말씀전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렇게 되면 그야말로 성경을 오해하는 것이며 잘못 알고 있는 겁니다.
복음전파의 목적이 이방인들(무 할례 자)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데 있는 것인데 그러한 일을 비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러므로 이 내용은 베드로가 말씀을 전하는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이야기 형태로 풀어놓은 것으로 봐야합니다.
4절에 기록된 대로 10장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어떤 뜻이 담겨있고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에 대해 설명하겠다는 말입니다.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이렇게 기록해놓은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가로되 내가 욥바 성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보니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을 네 귀를 매어 하늘로부터 내리워 내 앞에까지 드리우거늘(행11:5)
이것을 주목하여 보니 땅에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보이더라(행11:6)
또 들으니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행11:7)
내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지 아니한 물건은 언제든지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하니(행11:8)
또 하늘로부터 두 번째 소리 있어 내게 대답하되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말라 하더라(행11:9)
이런 일이 세번 있은 후에 모든 것이 다시 하늘로 끌려 올라가더라(행11:10)
10장에서 읽었던 장면을 그대로 옮겨놓았으니 따로 해석을 필요로 하지 않지만 눈여겨 볼 대목은 베드로가 육신(욥바=세상=육신)으로 기도할 때 비전을 보았다는 점입니다.
이 장면은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며 하나님이 인간의 육신을 통해서 역사하신다는 점을 말하고 있는 거지요.
그렇지 않다면 같은 장면을 또다시 반복해서 말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그이유가 나옵니다.
마침 세 사람이 내 우거한 집 앞에 섰으니 가이사랴에서 내게로 보낸 사람이라(행11:11)
성령이 내게 명하사 아무 의심 말고 함께 가라 하시매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행11:12)
11절에서 세 사람을 언급한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뜻하며 우거한 집이란 성전 안에 들어앉은 성령(베드로)을 가리킵니다.
세상에서(가이사랴: 로마황제의 땅) 삼위일체 하나님을 깨달은 사람에게 성령이 함께 하게 된다는 것을 말해주는 거지요.
그래서 12절에 성령이 의심 말고 함께 가라 명했다고 했으며 여섯 형제가 함께 그 집에 들어갔다고 했습니다.
여섯 형제는 영적부활을 뜻하며 그 사람의 집은 강력한 믿음과 자격을 갖춘 고넬료(뿔=믿음)를 가리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당연히 성령의 임하시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을 베드로가 방문하는 것으로 묘사한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외적으로 성령이 임하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내적인 응답이 동시에 이루어진다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그가 우리에게 말하기를 천사가 내 집에 서서 말하되 네가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행11:13)
그가 너와 네 온 집의 구원 얻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함을 보았다 하거늘(행11:14)
위 내용은 고넬료가 체험한 것을 그대로 옮겨놓았는데 앞서 성령이 베드로에게 나타난 시기와 같다는 점을 알 수 있지요.
중간에 사람이 가고 왔다는 점만 빼고 나면 동시에 일어난 일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이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말하고자 이렇게 반복된 내용을 올려놓은 것이며 육신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을 가르쳐주고 있는 겁니다.(사도인 베드로와 이방인 고넬료에게 동시에 나타난 일)
이어지는 내용역시 우리에게 이러한 점을 알게 합니다.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행11:15)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행11:16)
Then remembered I the word of the Lord, how that he said, John indeed baptized with water; but ye shall be baptized with the Holy Ghost.
사도인 베드로가 말을 했고 그 말을 진정으로 믿게 되자 성령이 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15절)
예수의 가르침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때(피와 살을 먹음) 성령이 임하신 것과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16절에서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지만 예수님은 빛이신 성령으로 세례를 준다고 했습니다.
이 내용을 보고 요한의 세례가 효과 없다 여길지 모르지만 그렇게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영어성경 뒷부분을 보면 요한이 물로 세례 준 것도 참되다고 말해 놓았으며(John indeed baptized with water) 다만 제자들은 성령이신 빛으로 세례 받으라 했다고 합니다.
물로 세례 받는 것은 제한적이며 빛으로 세례 받는 것은 시와 때를 가리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행11:17)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행11:18)
사람들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온갖 분별 심을 가지고 있지만 빛이신 성령은 그렇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회개하면 용서받고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진정으로 회개하는 분들만 이 말씀을 듣기를 바라며 오늘의 시간을 마무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