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괴로움은 천국의 밑거름.
성경말씀을 믿거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거나 하나님 자녀가 아닌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살거나 모르고 있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런 일을 알려주어야 하는데 그런 이들을 가리켜 선지자(先知者)라 부르기도 하고 사도라 부르기도 하는 겁니다.
선지자라는 단어가 마치 기독교도들의 전용인 것처럼 알고 있지만 실상은 모든 이가 하나님 자녀라는 사실을 먼저 깨달은 이를 가리키며 타종교에서 선각자(先覺者)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뜻이지요.
성경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도 이런 사실을 알리는데 목적이 있는 것일 뿐 누군가를 숭배하게 만드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영의 세계를 모르고서는 우리가 하나님 자녀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에게 우리자신을 종속시키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육신에 초점을 맞추고 살던 삶에서 영적인 삶으로 전환하라는 겁니다.
이것은 마치 굳게 닫힌 문과도 같으며 우리가 스스로 열어야만 하기에 선지자 및 사도들은 하나같이 육신을 죽이고 성령으로 거듭날 것을 주문하고 있지요.
그런 의미로 오늘도 굳게 닫힌 교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의 하는 것이 참인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행12:9)
And he went out, and followed him; and wist not that it was true which was done by the angel; but thought he saw a vision.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성으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절로 열리는지라 나와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행12:10)
When they were past the first and the second ward, they came unto the iron gate that leadeth unto the city; which opened to them of his own accord: and they went out, and passed on through one street; and forthwith the angel departed from him.
베드로가 드디어 육과 영의 감옥으로부터 탈출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wist는 재치와 지혜를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앞서 빛과 함께 나타난 천사(성령)가 말해주는 것을 베드로가 처음에는 지혜롭지 못하여 환상을 보는 것으로 여겼다고 했지요.(9절)
그래서 10절에서 첫 번째와 두 번째 실을 지나갔다 했는데(they were past the first and the second ward) ward는 병실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지식을 뜻하기도 합니다.
육신과 낮은 영혼의 차원을 지식의 단계에 비유한 것이며 성령과 함께 하는 동안 이러한 단계를 뛰어넘은 것을 비유한 겁니다.
그리고 성에 연결되는 쇠문은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으로 통하는 문을 가리키는데 시험을 통과하자 저절로 문이 열렸던 거지요.
이것은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을 뜻하므로 천사는 곧 떠났다고 했습니다.(the angel departed from him)
외부에서 임하시는 성령은 시험을 통과하는 순간 베드로와 하나가 됨으로 더 이상 필요 없게 된다는 뜻이지요.
한마디로 표현하면 베드로가 영육이 하나가된 상태에 도달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처음 영적인 길을 걷기 시작하면 각가지 체험이 주어집니다.
이러할 때 처음에는 환상을 보는 것인가 여기지만 각종 시험을 거치면서 성령이 우리인생의 주관자라는 사실을 확실히 인식하게 됩니다.
이때에 이르러서야 성령(하나님)에게 기대는 것을 멈추고 본인이 직접 주관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며 타인들에게 성령의 불씨를 나누어지는 인자로서 살아가게 되는 거지요.
이 같은 일을 불가(佛家)에서는 해오(解悟)의 단계와 확철대오(廓徹大悟)로 구분 짓고 있는데 지식과 지혜가 그만큼 차이가 있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들어서 아는 것은 지식의 차원이고 본인이 직접 체험하는 것이 지혜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체험을 한 후 베드로는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성경은 보여줍니다.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나서 가로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줄 알겠노라 하여(행12:11)
And when Peter was come to himself, he said, Now I know of a surety, that the LORD hath sent his angel, and hath delivered me out of the hand of Herod, and from all the expectation of the people of the Jews.
영적체험은 이렇듯 강력합니다.
육신의 차원을 뛰어넘고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영의 세계에 대한 기대치도 더 이상 가지지 않게 되었다고 하지요.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것들에 대한 욕구와 욕망은 물론(헤롯의 손아귀를 벗어남)(out of the hand of Herod) 영의 세계에 대한 환상조차 넘어서버렸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하면 뭔가의 기적과 이적이 일어나는 것을 바라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것들은 세상 적이고 육신적인 것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욕구와 욕망을 버리게 되면 자연스럽게 영의 세상에 대한 환상도 깨어지게 되는 겁니다.
물론 처음에는 예수님과 같은 인자의 가르침에 따라 물질의 풍요와 육신의 안락함을 희망하고 영적인 희열을 기대하며 살아가지만 사는 동안 마주하는 각종 어려움을 겪으면서 점점 더 인식의 확장이 이루어집니다.
삶에서 마주하는 고통과 괴로움이 천국을 맛보게 하는 밑거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거지요.
번뇌가 보리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깨닫게 되고 이 세상 자체가 천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될 때까지 성령의 손을 단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있어야 함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밤낮을 멈추지 않고 기도했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뜻입니다.
예문을 통해서도 확인되다시피 베드로는 일찍이 영적체험을 했던 사람이지요.
그러나 처음에는 환상이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시시각각으로 주어지는 삶의 질고 속에서조차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기도를 해왔기에 결국에는 성령과 하나 되는 영광을 얻게 된 겁니다.
여기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행12:12)
마가의 뜻은 “큰 망치”이고 요한의 뜻은“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인데 마가는 요한의 로마식 이름입니다.
이렇게 말해놓은 이유는 시험을 깨트린 것을 말하기 위해서이며 시험을 넘어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서였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이지요.
마리아의 뜻이 “사랑(받는), 높여진, 바다의 별, 고귀한분, 귀부인” 등이라는 사실을 볼 때 성령과 하나 된 베드로와 같은 인자는 하나님의 은총에(요한) 힘입어 시험을 이겨내고(마가) 높아지고 고귀해진다는 뜻이 됩니다.
이와 같은 일은 영적인 길을 걸어봐야 제대로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처음 내가 성령의 임하심을 경험한 것은 약 30여 년 전입니다.
그렇지만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은 훨씬 뒤의 일이라고 할 수 있지요.
내가 체험한 영적 비전이 환상이 아니라 실재한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내가 본 것들 모두가 환상에 불과하다 여겨졌던 겁니다.
그렇지만 그럴 수 없었던 것은 그때마다 따뜻한 성령의 손길이 나를 받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 영혼이 이미 깨어나 24시간기도를 하고 있었고 성령의 불씨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음을 내가 알기에 육신의 생각을 거부할 수 있었던 거지요.
어려움이 크면 클수록 믿음이 강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 영육이 하나 될 때라는 것을 말씀드리며 오늘의 성경강해를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