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잘못을 모르는 자는 짐승과 같다.

배가번드 2024. 4. 19.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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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더러 핵심을 말하지 않고 빙빙 돌려서 말한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령을 깨닫는 결정적인 일은 감추어두고 일반적인 일만 말한다는 겁니다.

그 말은 어느 정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자신 스스로를 들여다보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본인이 무슨 좋은 일을 한 적이 있는가를 살펴보라는 거지요.

주변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내말이 어떤 뜻이란 걸 알게 될 겁니다.

본인의 행동이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살펴보면 왜 남들이 보는 빛(성령)을 볼 수 없는지 알 수 있을 거라는 것을 말하며 성경에 둘러쳐진 비밀의 커튼을 열고 들어가 보겠습니다.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행14:1)

And it came to pass in Iconium, that they went both together into the synagogue of the Jews, and so spake, that a great multitude both of the Jews and also of the Greeks believed.

그러나 순종치 아니하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의 마음을 선동하여 형제들에게 악감을 품게 하거늘(행14:2)

But the unbelieving Jews stirred up the Gentiles, and made their minds evil affected against the brethren.

 

이고니온의 뜻은 “양의 가슴”입니다.

1절을 직역해보면 이고니온 안에서 이일이 일어났는데(it came to pass in Iconium), 둘이 함께 유대인의 교당에서(both together into the synagogue of the Jews) 말을 하자(so spake) 유대인과 헬라의 많은 무리가 믿었다가 됩니다.

그러므로 이 내용은 세상 죄를 짊어질 만큼의 넉넉한 가슴(사랑)을 가진 사람 안에 성령(바울과 바나바)의 가르침이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지요.

앞선 시간에서 밝힌 대로 바울(지극히 작은 자)과 바나바(위로 자, 권면 자, 권위자)는 영육이 하나 된 인자를 가리킵니다.

스스로를 낮출 줄 알아 겸손하고 순종하는 이에게 인자의 가르침이 받아들여진다는 뜻으로 이렇게 말해놓았습니다.

그래서 2절에서 (성령의 가르침을)믿지 않는 유대인들이(the unbelieving Jews) 이방인들을 선동하여(stirred up the Gentiles) 그 마음속에 악마가 형제들을 대항하도록 만들었다고 했지요.(made their minds evil affected against the brethren)

그런데 이러한 사람들도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가르침을 받다보면 달라진다고 합니다.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시니(행14:3)

 

액면 적으로 보면 바울과 바나바가 오랫동안 머물면서 표적과 기사를 보여준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가르침에 반대하던 많은 이들도 반복해서 듣다보면 마음이 돌아선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처음에는 입을 삐죽이며 속으로 악한 마음을 품고 있던 이들도 성령의 가르침을 지속해서 듣다보면 내면의 성령이 반응을 보이게 된다는 뜻입니다.

믿음이 왜곡되고(유대인) 제대로 서지 않던 사람들(이방인)조차 인자의 가르침을 반복해서 듣다보면 자신의 삶속에서 변화가 일어나며 기적과 이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는 기도의 마음을 유지해야하며 억지로라도 붙어있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도중에 포기를 하게 되며 물질세상으로 돌아서게 되지요.

이러한 점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 성내 무리가 나뉘어 유대인을 좇는 자도 있고 두 사도를 좇는 자도 있는지라(행14:4)

But the multitude of the city was divided: and part held with the Jews, and part with the apostles.

이방인과 유대인과 그 관원들이 두 사도를 능욕하며 돌로 치려고 달려드니(행14:5)

And when there was an assault made both of the Gentiles, and also of the Jews with their rulers, to use them despitefully, and to stone them,

 

성(육신)안에 군중들이 나뉘었다고 한 것은 당시 유대인들의 마음이 두 가지로 갈라졌음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기존의 가르침을 유지하려는 이들은 유대인을 잡는 것으로 표현했고(part held with the Jews) 성령의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부류를 사도들과 함께 한다 말하고 있습니다.(part with the apostles)

같은 말씀을 들어도 결과가 같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같은 교회를 다녀도 마음이 같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반응이 사뭇 다르다고 5절은 말합니다.

믿음이 왜곡되어 바로서지 않은 사람들과(both of the Gentiles, and also of the Jews) 물질 세상에 속해져 있는 사람들은(their rulers) 악의(惡意) 가득한 행동을 일삼았으며(to use them despitefully) 돌질을 했다고 했습니다.(to stone them)

공회에서 가르침을 전파했음을 볼 때 실질적으로 돌질을 당하지는 않았겠지만 언어폭력을 당한 것은 분명하리라 봅니다.

이 같은 일은 나 홀로목사가 당한일이기도 하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도 하지요.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숱한 공격을 받았으며 현실에서 조차 이러한 일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물질 세상에 속한 사람들(the Gentiles, and also of the Jews with their rulers)은 말하고 행동하는 방식이 언제나 이 모양입니다.

자신이 옳다싶으면 무조건 타인에 대한 비난과 비방을 퍼붓고 봅니다.

상대방의 실수를 결코 용납하지 않으며 자비심이라고는 없습니다.

자신의 실수에는 관대하고 타인의 실수에는 관용을 베풀 줄 모르는 사람들은 성령과 함께할 자격이 없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저희가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및 그 근방으로 가서(행14:6)

거기서 복음을 전하니라(행14:7)

 

루가오니아의 뜻은 “양의 가슴”으로 이고니온과 동일합니다.

그리고 루스드라의 뜻은 “양의 무리”이며 더베의 뜻은 “소나무”이지요.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보면 성령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성령은 더 이상 그곳에 머물지 않으며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루가오니아=양의 가슴)과 변치 않는 믿음(더베=소나무)을 가진 이들에게 성령의 불씨를 전한다로 해석이 됩니다.

짧은 내용이기는 하지만 1절부터 7절까지의 내용만으로도 성령과 함께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스스로가 진단할 수 있습니다.

일상생활에 있어서도 본인이 얼마나 편견과 오만으로 가득한 삶을 살고 있는지 스스로가 모른다면 본인의 영혼에 대해서도 모르는 겁니다.

내 말과 행동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은 영혼이 깨어나 있다는 뜻입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나오는 대로 지껄이고 행동하는 것은 짐승이나 다름없는 인식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지요.

물론 육신을 가진 사람인지라 본능적인 반응에 있어서는 짐승이나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그렇지만 본인이 스스로의 언행을 살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일과 시간이 끝나고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 십분 씩이라도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야하는 겁니다.

이런 일에 대해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마5:23)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5:24)

 

본인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은 짐승과 다름없으며 성령의 불씨를 전해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며 다음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