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일곱에 일곱번도 용서하라.

배가번드 2024. 4. 2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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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넬 결선을 해보면 배관의 방향에 따라 선이 제각각 들어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 것은 아랫방향에서 올라와 있고 어떤 것들은 옆방향이나 위쪽에서 내려와 있기도 하지요.

길게 말려있는 선을 펴고 접지선만 따로 분리한 후 회로에 따라 양방향으로 내려서 도면에 명시되어있는 대로 차단기에 물리는 작업을 하게 됩니다.

접지선 같은 경우에는 위쪽에서 잘라서 몇 가닥 씩 합쳐 조인을 한 후 물리면 깔끔하게 정리가 되지만 나머지 선들을 도면대로 물리려면 상당히 어렵습니다.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선들어온 방향이 틀리는지라 분리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럴 경우에는 물리고 나서 도면을 수정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깔끔합니다.

선이 들어온 순서대로 방향에 맞춰서 묶음 처리하고 내린 후 차단기에 물리게 되면 보기에도 좋고 일도 수월하다는 거지요.

이렇게 물리고 난후 순서에 맞춰 도면을 수정해버리면 아무런 문제없이 해결이 됩니다.

그런데 때에 따라서는 작업을 지시하는 사람이 도면대로 작업할 것을 주장할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선이 엉키게 되고 보기가 흉하게 되어 처리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으며 시간이 배로 걸립니다.

결선을 해본사람들은 알겠지만 작업을 마친 후에도 추가로 입선을 해야 할 때가 왕왕 있는데 이럴 경우에는 뒤죽박죽으로 엉켜있는 전선사이로 입선을 해야 하는지라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을 두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하게 되며 고지식하다 말하지요.

이럴 때마다 어처구니없다 여겨지는 것은 어차피 도면도 사람이 그린 것이고 편리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일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인데 무조건 고집할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하는 방식도 다양한 것인데 이러한 방식만을 고집할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의외로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절대 바꾸지 않으려 들고 자신의 방식과 다르다 싶으면 화를 내기까지 합니다.

십 수 년 동안 전기관련 일을 하면서 이렇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일을 잘하는 사람일수록 자기 고집이 더욱 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요.

그래서 나 같은 경우에는 혼자서 일하는 것을 즐겨하는데 요즘은 단독으로 작업을 못하게 하는지라 어쩔 수 없이 같이 일하며 무조건 하자는 대로 따라하게 됩니다.

그나마 현장 일을 하는 경우에는 서로가 대화를 통해 풀어갈 수도 있지만 영적인 길로 눈길을 돌려보면 더욱 심한 고정관념들로 무장된 사람들을 만나게 되지요.

믿음이 강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더라는 말입니다.

종교가 다르다 할지라도 목적지에만 도달하면 될 것을 오로지 자신의 길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나는 이 길이 좋아서 이 길을 가는 것뿐이며 당신은 그 길이 좋으면 그리로 가시라하면 될 것인데 구태여 자신의 길로 끌고 가려 하는 것은 물론 악담을 퍼붓기까지 합니다.

이것은 내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일로서 남의 이야기를 듣고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가족들과 함께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여겨서 교회를 나가게 되었는데 교회 나갈 때마다 따가운 시선을 느껴야했으며 심지어 어떨 때는 목사님으로부터 손가락으로 지적을 당한적도 여러 번 있습니다.

자신의 믿음에 대한 확신을 사람들에게 설교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특정한 누군가를 향해 손가락질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이것은 마치 내가 일을 해놓았는데 누군가 와서 뜯어버리고 새로 하는 것과 같은 겁니다.

그냥 말로서 조곤조곤 설명을 해도 될 것을 자신의 방식과 다르다는 이유로 불같이 화를 낸다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내가 일을 하러갔지 자신의 부하로 들어간 것이 아닌데 왜 그렇게 까지 화를 내는 것인지 지금생각해도 이해가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교회를 다니는 것은 식구들의 권유에 따른 일이기도 하고 성경을 공부하기위해서 인데 자신의 믿음과 차이가 있다는 이유로 함부로 손가락질을 한다는 것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지요.

솔직히 말해서 내가 같이 화를 내면 받아내지도 못할 사람들이 까불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모든 일을 과거에 내가 저질렀던 일에 대한 응보로 받아들이기에 참고는 있지만 속으로는 여간 조심스럽지 않습니다.

언제 갑자기 폭발을 해버릴까 걱정이 된다는 말입니다.

다행히 성경말씀을 내 삶에 지표(指標)로 삼고 있기에 힘들지 않게 받아들이고는 있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이 같은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바 있지요.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번까지 하오리이까(마18:21)

Then came Peter to him, and said, Lord, how oft shall my brother sin against me, and I forgive him? till seven times?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지니라(마18:22)

 

이 말씀을 가지고 기독교인들을 시험하는데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예수님은 칠십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했는데 어찌 그리 참을성이 없느냐고 말하지만 속뜻을 보면 그런 것이 아닙니다.

먼저 21절은 보면 얼마나 자주(how oft) 내게 대한 형제의 죄를 용서해야 되는가를(my brother sin against me, and I forgive him?) 묻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곱 번이라는 말을 되풀이해서 말하고 있음을 볼 때 여기에는 분명히 담긴 뜻이 따로 있는 겁니다.

성경상의 7은 완전의 숫자로서 창조의 한주기를 뜻합니다.

영적으로 완성될 때까지 참아야함을 말하고 있는 거지요.

그러므로 이 내용은 물리적인 시각으로 볼 것은 아니며 영적으로 해석해야 됩니다.

영적으로 완성될 때까지는 어쩔 수 없이 참아야한다는 것으로 사람들과 논쟁이나 다툴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한 가지 길은 열어두셨습니다.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마10:14절)

 

여기에서 말하는 집이나 성은 사람의 육신을 가리킵니다.

영적인 사람을 우습게 여기거나 가르침을 가볍게 여기는 이들과는 인연을 끊어버리는 말입니다.

한낱 먼지에 불과한 사람으로 취급하여 가볍게 넘어서라는 뜻이지요.

조금은 잔인하게 들리겠지만 사람들의 공격으로부터 맞대응하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한일로 여겨야 합니다.

나쁜 말을 한 적도 나쁜 행동을 한 것도 아닌데 사람을 불러다놓고 손가락질을 하는데 대한 벌로서 이만하면 양호한편입니다.

사도들 또한 예수님과 동일한 반응을 보인 적이 있습니다.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핍박케 하여 그 지경에서 쫓아내니(행13:50)

두 사람이 저희를 향하여 발에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행13:51)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행13:52)

 

물질세상의 시스템아래 놓인 사람들을 경건한 귀부인과 유력자들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권력에 맛들인 사람들 전체를 가리키며 완장 찬사람 모두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보면 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작은 권한으로 사람을 억압하고 군림하려 드는 사람들 모두는 영적인 사람과는 반대된다는 점을 알아야합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반대자들과의 인연을 끊어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갔다고 한거지요.

이고니온은 “양의 가슴”으로 성령이 깃들 수 있는 사람의 마음을 가리킵니다.

겸손하고 온화한 성품을 가진 사람에게 빛이신 성령이 함께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언제나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기록하고 있는 겁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 역시 과거에는 엄청난 고정관념의 소유자였고 폭력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95년 명상단체에 입문을 하고난 후 완전히 거듭나게 되었지요.

지금의 나는 내주장이 별로 없으며 누군가의 주장에 항상 따라가는 사람에 불과합니다.

함께 하는 동안에는 그 어떤 주장도 않을 것이며 다만 길이 달라지는 순간 발에 먼지를 털어버릴 겁니다.

이것이 내가 사람을 대하는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