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배가번드 2024. 5. 29.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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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연구하는 동안 가장 충격적인 구절이 몇 군데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교회에서는 말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며 잘못 기록된 부분이 숱하게 많지만 그중에서도 본질을 흐려놓는 구절이 있더라는 말입니다.

그러한 내용을 잘못 받아들이게 되면 성경을 통해 얻어야할 영혼의 구원이 이상하게 왜곡되어 버림으로 반드시 바로잡아야만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러한 내용 중 몇 구절을 집중적으로 보기로 마음먹었지요.

제일먼저 내가 놀랐던 내용은 욥기입니다.

 

나의 이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욥19:26)

And after my skin has been destroyed, yet in my flesh I will see God;[NIV]

And though after my skin worms destroy this body, yet in my flesh shall I see God:[KJV]

내가 친히 그를 보리니 내 눈으로 그를 보기를 외인처럼 하지 않을 것이라 내 마음이 초급하구나(욥19:27)

I myself will see him with my own eyes -- I, and not another. How my heart yearns within me![NIV]

Whom I shall see for myself, and mine eyes shall behold, and not another; though my reins be consumed within me.[KJV]

너희가 만일 이르기를 우리가 그를 어떻게 칠꼬 하며 또 이르기를 일의 뿌리가 그에게 있다 할진대(욥19:28)

"If you say, `How we will hound him, since the root of the trouble lies in him,'[NIV]

But ye should say, Why persecute we him, seeing the root of the matter is found in me?[KJV]

 

일반적으로 한글성경은 [NIV]를 번역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KJV] 내용이 원본에 가까운지라 때로 이해가 어렵기 때문에 한글 성경 대부분의 내용은 [NIV]를 해석한거지요.(영적체험 없이는 [KJV] 일부 내용을 이해하기가 불가능함)

그런데 어쩐 일인지 26절 내용만큼은 성경을 번역한 사람의 개인적인 판단에 따라 해석된 것으로 보입니다.

두 성경 모두 육신 안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했는데 한글성경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죽고 나면 영혼이 빠져 나와야 하는데 육신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영어성경이 이렇게 기록된 이유가 27절에서 나옵니다.

[NIV], [KJV] 모두 앞부분은 한글성경과 동일합니다.

그렇지만 뒷부분은 많이 다릅니다.

NIV성경은 “내 심장이 내안에서 얼마나 갈망하는지!”(How my heart yearns within me!) 적고 있습니다.

심장을 가리키는 단어heart는 사랑을 뜻하며 성경 상으로는 성령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이 내용은 성령이 내안에서 갈망하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KJV는 “내 콩팥이 나를 사로잡을지라도”(though my reins be consumed within me)하며 적고 있지요.

콩팥은 성경 상으로 감정과 애정이 머무는 곳으로 인간의 감정을 나타냅니다.

인간의 감정으로 인해 눈(지혜안, 영안)이 가려져 하나님을 볼 수 없을 지라도 기어코 하나님을 보고 말거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렇게 해석을 하고보니 두 가지 성경모두가 한글성경과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육신 안에 성령이 잠들어 있지만 죽게 되면 하나님을 만날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거지요.

28절을 직역해보면 이 같은 점은 더욱 명확해 집니다.

먼저NIV를 보면 “만약 너희가 말하기를(If you say) 문제의 뿌리가 그 안에 있다 해서(since the root of the trouble lies in him)어떻게 우리가 그를 괴롭힐 수 있나(How we will hound him)”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있다면 모든 문제의 근본원인은 하나님일진대 어떻게 하나님을 괴롭힐 수 있겠냐는 뜻이지요.

KJV는 약간 다릅니다.

그러나 너희는 말해야만 할 것이다(But ye should say) “모든 문제의 뿌리가 내안에서 발견되었다 해서(seeing the root of the matter is found in me?) 왜 우리가 그를 핍박하는가(Why persecute we him)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이 거하고 계시므로 문제의 근본원인 제공자가 하나님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으며 육신과 영혼이 죄를 짓고 있다는 뜻이지요.

즉, 성령과 육신은 완전히 별개이며 영혼이 성령과 하나 되기까지는 많은 과정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다시 27절로 돌아가 보면 이와 같은 나 홀로목사의 말이 참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I) 내 스스로(myself) 하나님을(him) 나 자신의 눈으로 볼 것이라(with my own eyes) 했으니 육신이 아니라 영혼으로 본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외인처럼 보지 않는다(I, and not another) 했는데 이는 욥의 영혼이 성령과 동일하다는 점을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28절 내용은 보편적인 사람의 영혼과 성령과의 상관관계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며 욥의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욥은 29절을 통해 인간들에게 경고를 하고 있지요.

 

너희는 칼을 두려워할지니라 분노는 칼의 형벌을 부르나니 너희가 심판이 있는 줄을 알게 되리라(욥19:29)

Be ye afraid of the sword: for wrath bringeth the punishments of the sword, that ye may know there is a judgment.

 

대개의 경우 우리 모두는 어이없는 현실 앞에 분노를 표출합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분노는 하나님이 내재하고 있음을 몰라서(믿지 않아서) 일어나는 감정입니다.

주어지는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기에 분노를 하게 되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본인이 심판의 자리에 오른다는 말이지요.

육신을 가진 누구든지 이 말을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이것은 너무나도 명백한 진리의 말씀입니다.

심지 않은 것에 싹이 날수 없다는 점을 우리가 안다면 이와 같은 말은 진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기가 막히고 어처구니없는 현실이라 할지라도 내육신이나 영혼이 무엇인가를 잘못심어 놓았기에 잘못된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겁니다.

물론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불구덩이와 같은 현실 속에 안주하라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피하거나 개선을 위한 노력을 해봐도 어쩔 수 없이 다가온다면 그것은 내가 심어놓은 것이 돌아온 거라는 말입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나는 내게 다가오는 그 어떤 현실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누군가 내게 다가오면 운명이라 생각하고 떠나가면 숙명이라 여기는 거지요.

그래서 나는 동생이 교회를 가자하면 따라가고 동수들이 명상하러 가자하면 따라갑니다.

다만 교회를 갔는데 나를 귀신들린 사람취급하면 다시는 가고 싶지가 않으며 명상하러 갔는데 당신은 스승이 아니라거나 깨달은 사람이 아니라 말하면 다시는 상종하기 싫어집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대접을 받을 때만 그런 마음이 들었을 뿐 아직도 여전히 교회식구들과 명상하는 친구들과의 교류는 이어지고 있습니다.

내가 교회를 다니지 않았더라면 관음법문 속에 갇혀있는 자 자신을 알지 못했을 것이고 관음법문을 하지 않았더라면 성경에 담긴 속뜻을 몰랐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에게는 두 길이 모두 산꼭대기로 인도하는 길로 보이고 있으며 열심히 올라오는 사람들만 보이고 있습니다.

 

빛을 본 사람은 온몸이 밝을 뿐 아니라 온 우주를 밝힐 것이요. 빛을 보지 못했다면 눈뜬 봉사나 다름없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