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행한 바에 따라 머물 곳이 다양하다.

배가번드 2024. 6. 22. 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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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기독교인들은 사람의 육신을 두 가지로 나누어 말합니다.

영과 육으로 나누어 말하며 영의 세계도 천국 아니면 지옥이라 가르치고 있지요.

이 같은 가르침은 영의 세계를 경험하지 못한 상태에서 성경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며 크게 오해하고 있는 겁니다.

이것은 마치 학교 다니는 아이들의 성적이 100점 아니면 0점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예수님도 여기에 대해 말씀하신 적이 있지요.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요14:2)

In my Father's house are many mansions: if it were not so, I would have told you. I go to prepare a place for you.

 

하나님의 집에는 살 수 있는 집이 수없이 많다고(In my Father's house are many mansions) 했으니 각자 행한 바에 따라 머물 곳이 다양하다는 뜻이지요.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지만 자신을 믿고 함께 한다고 해서 모두가 천국 가는 것도 아니고 각자의 행위에 따라 천국을 상속받을 수 있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내용을 상급이나 신분에 따라 사는 집이 달라진다고 여긴다면 하나님과 하나된 것이 아니라고 봐야합니다.

영생을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이라 말은 하면서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생을 얻어 하나님과 하나 된 예수나 바울과 같은 인자를 만나 가르침을 받아야하는 겁니다.

하여 오늘도 변함없이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부형들아 내가 지금 너희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하더라(행22:1)

Men, brethren, and fathers, hear ye my defence which I make now unto you.

저희가 그 히브리 방언으로 말함을 듣고 더욱 종용한지라 이어 가로되(행22:2)

(And when they heard that he spake in the Hebrew tongue to them, they kept the more silence: and he saith,)

 

사람들아, 형제들아, 그리고 아버지들아 들으라(Men, brethren, and fathers, hear ye my defence) 한 것은 지금부터 바울이 말하는 것이 시공과 물질(육적)세계를 초월한 영적인 이야기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는 겁니다.(1절)

그래서 2절에서 히브리 혀로 말한다(he spake in the Hebrew tongue) 한 것이며 사람들이 더욱 침묵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의 뜻은 “건너온 사람”으로 영생을 얻은 이들을 가리키므로 영혼이 깨어난 이들은 들으라는 뜻이지요.

그러므로 앞으로의 내용은 영혼의 귀를 열고 들어야 합니다.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행22:3)

I am verily a man which am a Jew, born in Tarsus, a city in Cilicia, yet brought up in this city at the feet of Gamaliel, and taught according to the perfect manner of the law of the fathers, and was zealous toward God, as ye all are this day.

내가 이 도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행22:4)

And I persecuted this way unto the death, binding and delivering into prisons both men and women.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저희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행22:5)

 

먼저 바울은 하나님을 찬양하는(유대인) 무리들(길리기아) 가운데 기쁨(다소)을 얻었으니 성령과 하나 된 사람임을 밝히고 있습니다.(3절)

그리고 가말리엘의 뜻은 “하나님의 상급”으로 바울이 영생을 얻기 위해 하나님 율법의 엄한 가르침을 받으며 살았다는 뜻입니다.(at the feet of Gamaliel, and taught according to the perfect manner of the law of the fathers)

그런데 4절에서 이 길을 핍박하여(I persecuted this way) 사람을 죽이고 남녀를 결박하여 감옥에 가두었다고 했지요.

즉, 과거에 바울이 영생에 이르는 길을 핍박하여 영혼을 죽이거나 감옥에 보내는 가르침을 펼쳤다는 뜻입니다.[진정한 영혼(성령)은 성별이 없음]

5절을 보면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바울의 증인이라 했는데 이는 성령으로서 지켜보았다는 겁니다.

다메섹의 뜻은 “물이 풍부한 거주지”로 생명이 넘쳐나는 영생의 하늘을 가리킵니다.

형제들에게 전달되는 편지를 가로채어 그들을 결박하여 예수살렘으로 데려다가 벌을 받게 했다는 것은 영생의 하늘에 이르는 길을 잘못 가르치고 있었다는 뜻이지요.

본인이 빛이신 성령에 대한 체험도 없는 상태에서 성령의 불씨를 전달하는 이들을 함부로 심판내리는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그의 삶에 목적은 오로지 영생에 있었고 사람들을 천국으로 이끄는데 있었으므로 하늘로부터 응답을 받게 됩니다.

 

가는데 다메섹에 가까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서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취매(행22:6)

And it came to pass, that, as I made my journey, and was come nigh unto Damascus about noon, suddenly there shone from heaven a great light round about me.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행22:7)

And I fell unto the ground, and heard a voice saying unto me, Saul, Saul, why persecutest thou me?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행22:8)

 

바울 스스로가 영적인 여정을 걸어(I made my journey) 다메섹에 가까이 다가왔다고 합니다.(come nigh unto Damascus)

생명이 넘쳐나는 곳(다메섹)에 도달했으니 영생의 하늘에 가까웠다는 뜻이지요.

그러니 빛이신 성령을 볼 수 있었던 겁니다.(noon=정오=빛이 가장 강력할 때)

그만큼 바울은 처음부터 영적인 사람이었고 성령과 함께할 자격을 갖추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빛으로 나타나신 예수께서 왜 자신을 핍박하느냐 말하고 있습니다.(why persecutest thou me)

나사렛의 뜻은 “지켜보다, 파수꾼, 망루”등이므로 예수께서 하나님과 하나 되었음을 알 수 있지요.

즉, 성령이신 하나님과 하나 된 예수께서 빛으로 나타나신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을 가져야 합니다.

이렇게 바울은 하나님을 만났는데 어째서 교회에서는 하나님을 볼 수 없다 말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봤다는 사람을 귀신들린 사람 취급을 하는가 말입니다.

바꾸어 말해서 나처럼 빛이신 성령을 만난 사람을 귀신취급하면 예수를 귀신 취급하는 것과 같다는 거지요.

만약 2천 년 전에는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말한다면 2천 년 전의 진리는 지금의 진리와 다른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세상이 아무리 바뀌어도 하나님의 진리는 불변하며 영원하게 되어있습니다.

이것은 나 홀로목사의 말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내용이라는 점을 말씀드리며 다음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