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성령과 대화는 개인의 역량.

배가번드 2024. 6. 24.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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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공부하면서 이상하고 신기한 것은 어째서 똑같은 성경을 보는데 시각차이가 이렇게 생기나 입니다.

내 눈에는 숱하게 많은 이들이 하나님을 만나기도하고 씨름까지 한 내용들이 보이는데 어째서 오늘날의 목회자 중에는 하나님을 만난 이들이 안보이며 그런 사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걸로 보이는 지요.

이미 몇 차례나 말해주었듯이 하나님이신 성령을 보지 못했다면 예수님의 다음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만 합니다.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눅11:34)

The light of the body is the eye: therefore when thine eye is single, thy whole body also is full of light; but when thine eye is evil, thy body also is full of darkness.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눅11:35)

Take heed therefore that the light which is in thee be not darkness.

 

두 눈이 하나일 때 온몸이 빛으로 가득할거라 했으니 지혜안을 열어야한다는 뜻입니다.(when thine eye is single, thy whole body also is full of light)

견성성불의 의미와 같은 뜻으로 빛을 봐야한다는 말이지요.

본인이 빛을 보지 못했다면 빛의 세례를 줄 수 있는 예수나 바울과 같은 이를 따라가야만 합니다.

내말을 믿든지 말든지 성경은 기록하고 있으니 성경을 믿는다면 이 말을 명심해야 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빛이신 성령을 만난 바울을 통해 간접경험을 해보겠습니다.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행22:9)

And they that were with me saw indeed the light, and were afraid; but they heard not the voice of him that spake to me.

내가 가로되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정한바 너희 모든 행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행22:10)

And I said, What shall I do, LORD? And the Lord said unto me, Arise, and go into Damascus; and there it shall be told thee of all things which are appointed for thee to do

 

성령의 임하시는 것이 개인적인 체험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체의 하나님이라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이지만 빛이신 성령으로 임하시는 것은 극히 개인적인 일이라는 뜻입니다.

즉, 성령이신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담겨있지만 직접 대화를 나누는 것은 개인의 역량에 달린 일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10절에서 다메섹으로 들어가면 누군가가 행할 일을 가르쳐 준다고 했습니다.

다메섹은 “물이 풍부한 거주지”로서 영생의 하늘을 뜻합니다.

성령과 함께 하게 되면 모든 일이 정해져있음을 알게 된다는(all things which are appointed for thee to do) 뜻으로 모든 행할 것을 알려줄 거라 말하고 있는 거지요.

사실 이 내용은 성령이 임하게 되는 과정을 말하고 있는 것일 뿐 이자체가 큰 의미가 있다고 보기 어려우며 액면대로 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이신 예수님이 나타나셨으니 직접 말해주면 될 것을 또다시 누군가를 만나야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지요.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왜 이렇게 복잡하게 기록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됩니다.

 

나는 그 빛의 광채를 인하여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행22:11)

And when I could not see for the glory of that light, being led by the hand of them that were with me, I came into Damascus.

 

빛이신 성령을 보게 되면 일시적으로 눈이 멀게 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실지로 어떤 불교종파에서는 좌선을 할 때 눈을 반쯤 뜨고 합니다.

견성(見性)을 하게 될 때 눈이 멀게 됨을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알고 보면 이것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육신의 눈과는 별개의 눈인 지혜안으로 보게 된다는 것을 말하기위해 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한 겁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손에 끌리어 다메섹에 들어갔다는 것은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믿는 사람들은 성령을 알아보고 함께 영생을 얻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어지는 내용은 이 같은 점을 명확하게 말해주고 있지요.

 

율법에 의하면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행22:12)

And one Ananias, a devout man according to the law, having a good report of all the Jews which dwelt there,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행22:13)

Came unto me, and stood, and said unto me, Brother Saul, receive thy sight. And the same hour I looked up upon him.

 

아나니아의 뜻은 “여호와는 은혜가 깊으시다, 야훼께서 나타나심”입니다.(사도행전5장 참조)

영생의 하늘에(다메섹) 거주하는 모든 유대인(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율법을 따르는 경건한 사람 중에 하나인 아나니아라고(one Ananias) 했으니 성령을 가리킨다고 봐야 합니다.

그래서 너의 시력을 받으라(receive thy sight) 말하고 있는 거지요.(지혜안을 열라는 뜻)

영생(다메섹)의 하늘에 있는 존재(아나니아)가 형제여라고 불렀으니 바울역시 성령과 하나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만 나타나서 말해주게 되면 영생의 하늘에 오르는 이가 예수밖에 없다는 말이 되는지라 이렇게 아나니아를 등장시켰으며 바울역시 성령과 하나 되었음을 밝히고 있는 겁니다.

여기에 대한 보충설명이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그가 또 가로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저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행22:14)

And he said, The God of our fathers hath chosen thee, that thou shouldest know his will, and see that Just One, and shouldest hear the voice of his mouth.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너의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행22:15)

For thou shalt be his witness unto all men of what thou hast seen and heard

 

액면대로 보면 바울은 단지 정의로운 이(예수)를 보고(see that Just One) 그의 음성을 듣는 (hear the voice of his mouth)사람에 불과하다 여기게 됩니다.

하지만 성령과 동등한 위치에 도달한 사람이라야 인자를 알아보고 성령과 대화를 나눌 수 있으므로 둘은 하나입니다.

바울이 예수를 위해 모든 사람 앞에서 증인이 되리라 했지만 성령과 하나 되었음을 선포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아직은 말하기 어렵지만 다음시간에는 더욱 기가 막힌 내용들이 나오리라 생각합니다.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오늘 강해는 여기에서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