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영적체험은 인생길을 바꾼다.

배가번드 2024. 7. 3.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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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친구 중에 의사직업을 가진 이가 있습니다.

한동안 같은 동네에 살았고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같이 다녔으니 꽤나 깊은 인연이 있는 것 같은데 정작 그다지 친하게 지내지는 않았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년 전에 우연히 친구가 운영하는 술집에서 조우(遭遇)를 하게 되었습니다.

종합병원 산부인과 과장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친구에 대한 소문을 술집사장인 사회 친구를 통해 듣게 되었던 겁니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의사가 어느 날 교통사고를 당한 후부터 성격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말을 듣고 관심을 기울여 알아보니 사후세계를 경험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평소에는 후배의사나 간호사들에게 외면당하던 사람이 그렇게 친절할 수가 없고 주변사람들을 챙기더라는 거지요.

내 주변에는 이렇게 사후세계를 경험한 이들이 몇 명 있는데 그들 대부분이 살아생전 좋은 일을 많이 해야 한다 생각한다는 점을 볼 때 영의 세계가 따로 있음은 분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무엇보다도 내 삶을 되돌아보면 이 같은 일은 너무나 명확해지며 확신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술자리에서 갑자기 내게 찾아온 영적체험은 나를 더 이상 물질 세상에 머물지 못하게 만들었지요.

30년 전에 나를 아는 이들 모두는 내가 얼마나 음주가무를 즐겨했는지 잘 압니다.

그렇지만 그이후의 나를 아는 이는 내가 얼마나 신을 갈망하며 살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어린 시절부터 나는 내안에서 나를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을 느끼며 살고 있었지요.

다만 그러한 느낌이 너무나 싫어서 도망치듯 술에 취한 삶을 살고 있었던 겁니다.

내면의 울림을 무시하며 살아가다 도저히 달아날 수 없는 코너에 몰렸을 때 내적인 폭발이 영적체험으로 주어졌던 셈입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되살아난 것처럼 영적부활의 순간이 멀쩡한 정신에서 경험되어지고 난후 친구들에게 내가 한말은 “살아생전 좋은 일 많이 하자” 이었습니다.

이런 나를 친구들은 이해하지 못하였고 만날 때마다 여전히 술을 마시고 장난삼아 도박을 하는 것으로 귀한 시간을 낭비하곤 했지요.

이미 갈 길이 달라졌기에 더 이상 그들과의 인연을 이어갈 수는 없었고 물질세상과는 거리가 먼 인생길이 내 앞에 펼쳐졌던 겁니다.

벌써 그렇게 걸어온 길이 30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이제와 과거를 되돌아보고 지금의 나를 보면 나는 성경을 연구하는 노동자가 되어있고 오래전의 친구들 중에는 물질적으로 꽤 성공한 이들도 보입니다.

그들의 기억 속에는 내가 지워진지 오래되었겠지만 나는 그들을 잊어버리지 않고 있으며 여전히 영원 속에서 멈춰진 영상으로 남아있습니다.

때로는 좋은 기억으로, 때로는 나쁜 기억으로 남아있지만 그 모든 기억들은 지금의 나를 만들었으므로 현재의 내가 과거의 기억들을 좋게도 나쁘게도 만들고 있지요.

지금의 내가 만족하고 행복하다면 그 모든 순간들은 행복의 밑그림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관점은 나를 중심으로 한 상태에서의 결론이며 나를 상대했던 사람들의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아직도 지옥과 같은 세상을 살고 있으며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나는 이미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맺어졌던 모든 순간들을 영원의 하늘로 날려 보냈지만 그들은 여전히 어느 한순간을 붙들고 있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인과로부터 자유로운지를 구분 짓는 이정표가 아닐까 합니다.

그러므로 살아생전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남을 이용하여 이득을 취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반드시 봉사와 헌신의 행위를 해야 자신이 지어놓은 업을 소멸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은 이러한 일들과 무관하다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물질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치고 이러한 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음식장사를 한다고 쳤을 때 내가 장사를 잘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내 능력과 노력으로 이루어놓은 것이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장사가 잘될 때 주변의 다른 식당들이 망해간다는 생각을 한다면 무턱대고 내 능력과 노력의 결과만이라 여길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그렇다 해서 능력과 노력을 무시하라는 말이 아니라 그 이면에 작용하고 있는 신의 섭리를 알라는 것이고 내 행복이 상대방의 불행을 딛고서 주어진다는 사실을 인식하라는 말입니다.

아마도 직장인들이 자영업 하는 이들과는 다르다 여길지도 모르지만 직장인 역시 이러한 범주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간부직을 맡고 있다고 가정했을 때 누군가의 인사에 영향을 미치게 되지요.

마음에 들지 않아 부하직원을 잘랐다고 했을 때 그가 거느린 식솔들이 많을 경우 많은 사람의 생계를 절단 내는 결정을 내린 겁니다.

본인이야 당연히 자를 사람을 잘랐다 말하겠지만 가만히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얼마나 잔인한 결정을 내렸는지 잘 알게 됩니다.

자신의 가까운 형제자매가 자신의 부하직원으로 있었을 경우를 생각해보라는 말입니다.

진정 잘라야할 이유가 있었는지 자르기 위해 이유를 찾았는지를 스스로 살펴보는 것조차 어려운 것이 세상 사람의 마음이지요.

상대방을 이해하려면 끝도 없으며 오해하는 것도 끝이 없습니다.

좋게 보면 얼마든지 참고 견딜 수 있는 것이 사람의 마음인데 누군가와의 관계를 정리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이 식어버린 겁니다.

좋게 말하면 관계를 정리한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인연의 고리를 절단내버린 거라는 말입니다.

이러한 일에 대한 결과를 지옥 아니면 천국 식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단지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을 할 수는 있습니다.

내가 한일이 무엇인지는 나중에 결과로 돌아올 거라는 말이지요.

이러한 이유로 나는 언제나 내게 주어지는 일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겁니다.

또한 어지간하면 현실을 참고 견디며 인내하고 봉사와 헌신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로 삼습니다.

과거 내가 김치공장을 하러 중국에 들어갈 때도 이러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스승님 사업과 단체홍보활동에 일조를 한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것인데 결과는 처참했지요.

돌아온 건 원망에다 빚만 잔뜩 짊어지게 되었지만 결국에는 그 모든 순간들을 지금을 있게 한 거름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노동자가 되기 위해 그 많은 고통과 어려움의 시간이 주어졌던 겁니다.

내가 하는 성경연구가 도움이 되는 사람에게는 영생을 얻게 함으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이익이 있지만 값어치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일고(一顧)의 가치가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물심양면으로 도운사람들은 반드시 그 결과를 받을 거라 자신 있게 말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미 돌려받고 있으며 다만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다는 것을 본인이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영적인 길을 걷고 있으면서도 물질적인 가치관을 내려놓지 못했기에 돌아오는 그 무엇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 원인과 결과가 짝을 이루지 않는 법은 없는 겁니다.

아직도 이러한 점을 모른다면 좀 더 봉사와 헌신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까닭에 봉사와 헌신의 시간이 주어지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해야 하며 물질적 가치관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처음 내가 입문을 했을 당시에는 물질적 보시를 최고로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법보시야말로 최고의 보시이며 영적인 길을 걷는 이들이 지향해야할 덕목(德目)입니다.

성경적으로 말하자면 복음전파야말로 최고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이라는 겁니다.

여기에 대해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지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막12:30)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막12:31)

 

복음말씀을 전하는 사람을 이해하고 돕는 것은 이웃을 돕는 것이나 다름없으며 하나님을 돕는 것이나 진배없다는 뜻입니다.

이웃은 가까이 있는 사람을 뜻하는지라 내 옆에 누군가 와있다면 그 사람을 돕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