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속사람은 하나님 법을 즐거워한다.

배가번드 2024. 9. 13.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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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인터넷 서핑을 하다보면 성경내용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을 알게 됩니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목회자들의 인식까지 들여다보게 되는 거지요.

그중에 내 관심을 끄는 내용하나가 바로왕의 마음을 하나님이 강퍅하게 만들었다는 부분입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열 가지 재앙을 당하면서도 바로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놓아주지 않은 상황을 하나님이 그 마음을 강퍅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라 묘사한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목회자들마다 이부분에 대한 해석이 조금씩 다르지만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아는 이는 드문 것 같습니다.

다들 한쪽으로 치우쳐 있어서 하나님이 악인의 마음까지 움직인다는 생각을 하지 못합니다.

오로지 천국만 있게 만드시는 하나님만 생각하다보니 지옥을 있게 하신이도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거지요.

하나님이라면 어째서 사람에게 좋은 것만 주시지 나쁜 것을 주실 수 있냐는 생각에 이렇게 여기는 겁니다.

그렇지만 영생을 향해 걸어가는 길이 평탄하고 쉽기만 하다면 그 믿음이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영적인 길을 걷는 동안 수없이 많은 장애물과 시련을 이겨내는 동안 믿음이 커져만 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바로왕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강퍅하게 만들어야만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이 커지게 됩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하나님이 율법을 통해 사람으로 하여금 육신의 죄인 됨을 깨닫게 만들어야만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는 겁니다.

우리가 아무리 죄를 짓지 않고 살려고 해도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고 육이 우리의 본체가 아니라 성령이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인식해야만 영생을 얻게 되는 거지요.

그러므로 일찍이 예수님은 여기에 대해 말씀하신바 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16:24)

 

여기에서의 나는 예수의 육신이 아니라 영혼, 즉 성령을 가리킵니다.

성령과 하나 되려면(깨닫기 위해서는) 육신의 자신을 부인하고 고난과 시련을 마다않고 성령의 가르침을 따르라는 뜻이지요.

바울역시 우리에게 율법에 대해 설명함으로서 이러한 점을 가르쳐주고자 하는 겁니다.

과연 그러한지 로마서 속으로 들어가 확인해보겠습니다.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롬7:17)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롬7:18)

For I know that in me (that is, in my flesh,) dwelleth no good thing: for to will is present with me; but how to perform that which is good I find not.

 

17절 말씀은 지난 시간의 연장으로 육신에 초점이 맞춰진 채로 살아가는 인생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성령을 깨닫지 못하면 육신으로 행하는 모든 것이 악하다는 뜻이지요.

욕구와 욕망으로 가득한 육적인 본능만이 육신을 지배한다는 겁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인간에게 불어넣어놓은 성령이 깨어나지 못한 인생은 모두가 이럴 수밖에 없음으로 바울은 18절에서 육신이 악하다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바울자신이 육신에는 선한(하나님만이 선하심) 것이 거주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고 한 점입니다.(I know that in me (that is, in my flesh,) dwelleth no good thing)

원함이 함께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바울과 함께한다는(for to will is present with me) 뜻이지요.

즉, 내재하신 성령으로서의 바울이 자신의 육신이 하는 짓을 지켜보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롬7:19)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롬7:20)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지켜본다는 것은 이미 성령이 깨어났다는 뜻입니다.(19절)

그럼에도 바울이 이렇게 말해놓은 것은 아직 성령의 불씨가 제대로 타오르지 못한 이들이 스스로의 행위를 지켜보라는 겁니다.

바울로부터 성령의 가르침을 전해 받아 믿음의 길을 걷고 있지만 아직도 육신의 욕구와 욕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고 육신의 행위를 반복해서 거부하라는 말이지요.

비록 지금은 육신을 입고 있음으로 인해 욕구와 욕망으로 인해 하나님 뜻에 반하는 일을 하지만 반복된 거부의 몸짓으로 점점 더 성령과 하나 되어 간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덧붙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롬7:21)

I find then a law, that, when I would do good, evil is present with me.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롬7:22)

For I delight in the law of God after the inward man: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롬7:23)

But I see another law in my members, warring against the law of my mind, and bringing me into captivity to the law of sin which is in my members.

 

바울역시 육신을 가지고 있음으로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확실히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일반인들과 달리 바울은 악이 함께하는(evil is present with me) 이유를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21절)

선을 행하기 위해서는 악이 있어야 한다는 거지요.

22절의 속사람은(the inward man) 하나님이신 성령과 하나 된 바울의 영혼을 가리킵니다.

그 영혼은 하나님이 정해주신 율법을 즐거워하지만 몸 안에는 죄의 법(육적본능)도 있기에 서로 전쟁을 벌이며(warring against the law of my mind) 그때마다 육의 욕망에 굴복하여 죄악에 사로잡혀 포로가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고 했습니다.(bringing me into captivity to the law of sin)

그만큼 성령을 깨달았다 해도 육신의 욕구와 욕망으로부터 자유롭기는 어렵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백하듯 육신의 한계점을 말해줍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7:24)

O wretched man that I am! who shall deliver me from the body of this death?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7:25)

I thank God through Jesus Christ our Lord. So then with the mind I myself serve the law of God; but with the flesh the law of sin.

 

스스로를 가련한 사람이라 표현하고 있습니다.(O wretched man that I am!)

이는 바울 자신을 가리킨다기보다 이글을 읽는 우리자신을 위한 말씀으로 봐야 합니다.

육신의 한계를 깨닫고 성령에 의지하라는 뜻이지요.

그래서 24절 뒷부분에서 누가 사망의 몸으로부터 건질 수 있냐는 질문을 던진 것인데

여기에 대한 해답역시 25절에서 밝혔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성령을 깨달아야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고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길 수 있게 된다는 겁니다.

정리 요약하면 율법을 무시하지 말며 죄를 깨닫고 성령과 하나 되게 만드는 도구로 여기라는 거지요.

이렇게 해서 7장을 모두 마쳤으니 8장에서 다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