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은 그리스도안에 깃든 하나님의 사랑.
영적인 사람과 육적인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너무나 간단합니다.
십억 짜리 수표와 천당행 표를 놓고 선택하라 해보면 대부분의 사람이 수표를 선택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부자는 제외=낙타보다 어려움)
이유를 들어보면 수표를 선택하고 천국갈 수 있게 착하게 살면 된다 말할 겁니다.
어찌 보면 타당성 있게 들리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영생의 하늘은 이렇게 해서 도달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그럴 것 같으면 예수께서 마귀의 시험을 받았을 때 적당한 타협을 보았을 겁니다.(마태복음 4장 참조)
그러므로 착한 일을 해서 갈 수 있는 곳은 영생의 하늘로 볼 수 없으며 낮은 천국으로 봐야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내재하신 성령은 정확히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돈을 선택한 것인지 도를 선택한 것인지는 하늘도 알고 땅도 알며 우리자신도 안다는 것을 말씀드리며 로마서 속으로 뛰어들겠습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롬8:31)
전체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신다면 누구도 우리의 길을 방해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을 다른 각도로 조명하면 이렇게 강력한 믿음이 있다면 모든 시험을 이겨낼 수 있다는 말도 됩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형상화된 자신의 아들인 인자를 보내주셨다는 사실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성령과 하나 될 수 있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8:32)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롬8:33)
Who shall lay any thing to the charge of God's elect? It is God that justifieth.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8:34)
Who is he that condemneth? It is Christ that died, yea rather, that is risen again, who is even at the right hand of God, who also maketh intercession for us.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자신과 하나 된 아들을 우리에게 내어주셨으니 우리 또한 하나님 아들(인자)과 하나 됨을 믿으면 성령과 하나 됨은 당연한 겁니다.(32절)
그래서 먼저 하나님왕국을 구하라 그러면 모든 것이 더한다는 성경말씀이 있는 거지요.(마6:33참조)
그러므로 하나님이 의롭다(God that justifieth) 선택하신 이들에게 책임을 물을 사람은 없다 했습니다.(33절)(Who shall lay any thing to the charge of God's elect?)
또한 성령으로 되살아나시고(Christ that died, yea rather, that is risen again)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신(at the right hand of God) 그리스도 예수를 온전히 믿으면 우리 안에서 성령으로 되살아나게 되어 하나님과 우리사이에 중보자가 된다고(also maketh intercession for us) 합니다.(34절)
이러한 까닭에 바울은 다음과 같은 말로 영적인 길을 걷는 이들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8:35)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롬8:36)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의 길을 걸어감에 있어 당케 되는 고난과 고통, 핍박과 헐벗고 굶주림, 위협이나 칼 따위를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겁니다.(35절)
영적인 길에서 마주하는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어려움은 성령과 하나 되기 위한 진통에 불과하다는 말이지요.
그리고 36절 말씀은 시편을 인용한 내용으로 잠시 보고난 후 돌아오겠습니다.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시44:22)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영히 버리지 마소서(시44:23)
성령과 하나 된다는 것은 결국 육적 속성을 죽이는 일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22절)
물질세상과는 별개의 세상을 추구하기에 영적인 사람은 도살당하는 양같이 여겨진다는 말이지요.(희생양의 의미)
그래서 다윗은 23절에서 우리 안에서 잠들어 계신 성령이 깨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겁니다.
사실 이 내용은 다윗이 성령이 깨어나지 않아서 이렇게 기록해놓은 것이 아닙니다.
시험과 고난을 두려워하여 믿음의 길을 포기하지 말라는 뜻에서 이렇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영생을 향한 길이 그만큼 어렵고도 험난하다는 거지요.
신약과 구약을 비교하고 보니 이와 같은 일은 2천 년 전의 예수생존시대나 3천 년 전 다윗의 시대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8:37)
우리에게 주어지는 그 어떤 시련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이 더욱 큼으로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전체이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우리가 확신을 하는데 무엇이 두렵겠냐는 뜻이지요.
그만큼 믿음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성령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그 어떤 장애물도 넘어설 수 있으므로 바울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롬8:38)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수 없으리라(롬8:39)
Nor height, nor depth, nor any other creature, shall be able to separate us from the love of God, which is in Christ Jesus our Lord.
결국 고난 및 온갖 핍박과 어려움은 성령과 하나 되게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시험이므로 간단히 넘어설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실 이겨낸다는 표현보다는 성령은 육신과는 별개의 존재임으로 물질세상의 그 누구도 터치를 할 수 없다고 봐야 합니다.
지위 고하는 물론이고 시공을 넘어서까지 하나님의 사랑과 이미 연결된 성령을 어찌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그래서 바울은 성령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라 표현하고 있는 겁니다.(the love of God, which is in Christ Jesus our Lord)
이것이 얼마나 큰 영광인지 육에 속한 이들은 알 수가 없을 것이며 영에 속한 이들은 알아볼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할거라는 점을 말씀드리며 8장의 막을 내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