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육 모두를 관장하시는 이는 하나님.
선물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상대방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즐겁습니다.
그래서 다음번에는 좀 더 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그런데 불평과 불만을 듣게 되면 마음이 좋지 않을 뿐 아니라 다음부터는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집니다.
살아 나오는 동안 수없이 많은 선물을 주고받았기에 이 같은 점은 마음속깊이 각인되어 있지요.
내 딴에는 큰 마음먹고 선물을 했는데 상대방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거나 싫어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선물을 안 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매순간을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과 불만을 말한다면 신은 더 이상 축복을 주지 않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다음과 같은 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살전5:16)
Rejoice evermore.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5:17)
Pray without ceasing.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8)
In every thing give thanks: for this is the will of God in Christ Jesus concerning you.
모든 사람들의 내면에 신의 품성이 담겨있으며 우리가 바라고 믿는 만큼 모습을 드러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직까지 현실에서 만족을 찾지 못하고 있다면 신의 품성이 드러나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사실 알고 보면 내재하신 성령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애써 외면하고 있기 때문에 모르고 있는 거지요.
그렇지만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무조건 현실에 안주하고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지 말라는 말은 아닙니다.
만약 그럴 경우 하나님이 더 좋은 선물을 주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직장을 다니는데 무조건 만족한다면 더 좋은 곳으로 옮길 수가 없게 되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때로 그 마음을 움직여 불만족하게 만들고 불평하게 만듭니다.
그래도 움직이지 않으면 하나님은 그 주변의 사람들과 환경까지 변하게 만들어 기어코 옮기게 합니다.
당사자들은 모르겠지만 직장을 옮기거나 잘리는 이유조차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서입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나 같은 경우 몇 번이나 참아보고 안되면 현실에서 벗어나라는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군가 내 곁을 떠난다거나 직장이나 단체에서 나를 쫓아낸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돌아섭니다.
이것은 억지로 현실을 받아들인다는 말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겪었던 수많은 경험에서 얻은 결론입니다.
이런 일에 대한 이야기하나가 생각납니다.
하나님을 믿는 어떤 사람이 사는 마을에 홍수가 났다고 합니다.
그러자 평상시대로 이 사람은 하나님께 자신을 구해 달라 간절히 기도했지요.
이때 갑자기 누군가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나가서 보니 마을이장이 와서 빨리 대피하라고 했는데 이 사람은 자신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 괜찮다며 이장을 돌려보냈고 이후에도 비가 계속오자 지붕위에 올라가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제발 저를 홍수로부터 구원해주소서!”
이러한 기도 탓이었는지 이번에는 보트를 탄 민방위 대원들이 이 사람을 구하러 왔지만 또다시 자신의 믿음을 자랑하며 사람들을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이후에도 계속해서 비가 내리자 이번에는 높은 굴뚝에 올라가 참회를 하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어째서 제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제 잘못 때문인지 부모의 잘못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진심으로 뉘우치고 회개하오니 부디 용서하시고 노여움을 푸소서!”
이렇게 열심히 회개하고 기도해서인지 이번에는 헬기가 와서 타라고 했지요.
그러나 이번에도 자신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 괜찮다며 손을 뿌리쳤고 결국 물에 빠져 죽게 되어 하늘나라에 올랐습니다.
평상시 경건하고 착한 생활을 이어왔으므로 그나마 천국에 오를 수 있었던 겁니다.
그렇지만 이 사람은 생각보다 일찍 죽었다 생각되었기에 하나님께 따져 물었다고 합니다.
“하나님! 저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웃을 사랑하며 선하고 착하게 살아왔는데 어째서 당신은 나를 일찍 죽게 하셨는지요?”
그러자 하나님은 만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놈아! 내가 너를 구하려고 이장도 보내고 보트도 보냈으며 헬기도 보냈지 않느냐? 그때마다 내 손길을 거부한 것은 네놈이 아니더냐?”
이 이야기는 오래전 명상단체에서 들었던 것을 각색(脚色)한 것이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示唆)하는바는 큽니다.
내가 좀 더 나은 현실을 바란다면 가만히 움츠리고 있을 것이 아니라 개선을 위해 노력을 해야 하는 동시에 신의 손길을 외면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지금까지 육적이고 물질적인 삶을 살았다면 이제라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영적인 삶으로 돌이키라는 말입니다.
아마도 이 말을 듣는 이들은 헷갈려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족하는 마음을 얻으라는 말도 하고 노력하라는 말도 하는지라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할지 모르기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두 가지 모두가 하나로 귀결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영적인 것이든 육적인 것이든 둘 다 자신이 노력을 해야 하며 그 둘 모두를 움직이는 것은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육신의 목숨을 살리는 일에도 사람이 노력을 해야 하며 영혼을 살리는 일에도 우리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이러하기에 민심이 천심이라는 말도 생겨나지 않았을까하는 마음이 듭니다.
성경은 이러한 일을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10:28)
And fear not them which kill the body, but are not able to kill the soul: but rather fear him which is able to destroy both soul and body in hell.
영육 모두를 관장하시는 이는 하나님이라는 뜻이지요.
결국 내가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육적이고 물질적인 축복을 바란다면 하나님은 그것을 줄 것이고 영적인 축복을 원한다면 영적인 것을 선물로 줄 거라는 말입니다.
아마도 어떤 이들은 물질적 축복을 아무리 원해도 주시지 않는다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그분이 영혼의 세계를 몰라서 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육신이 바라는 것과 영혼이 바라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본인의 업장이 커서이기도 합니다.
죄를 산더미같이 쌓아놓고서도 욕심을 부리기에 안주시는 것이기도 하고 영혼이 깨어나서이기도 하다는 거지요.
만약 영혼이 깨어났다면 물질적인 것들을 바라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혹시 원하는 것이 오지 않더라도 그 이유를 알게 되어 애태우지 않게 됩니다.
그저 원하는바가 있다면 열심히 노력해보고 안 되는 것은 겸허하게 결과를 받아들인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현실을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고 불평과불만의 마음을 주시는 이도 하나님이며 이러한 말을 하는 것도 듣는 것도 하나님 뜻에 의한 겁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이 말씀은 영적인 길을 걷는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선물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