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대승과 소승은 한몸.

배가번드 2016. 3. 23.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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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불교를 논함에 있어 대승이니 소승이니 구분들을 하지요.

하지만 그 둘은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바늘과 실과 같은 관계입니다.

이 세상 험난한 세파 속에서 수행해나가는 것을 대승이라 한다지만

대승을 행함에 있어 자신의 길을 꿋꿋이 지켜나가는 소승적인 견지가 필요합니다.

어떠한 세상유혹으로부터도 흔들림 없이 자신의 수행을 지켜 나갈 수 있을 때

비로소 대승적인 수행자가 되는 것이지

이곳저곳의 유혹에 중심도 없이 휘돌리는 것은 이미 수행자이기를 포기한 행위랍니다.

이러한 연유로 대승 속에는 소승이 확고하게 자리하고 있는 거지요.

소승역시 마찬가지임은 물론입니다.

자신만의 수행을 위해 세상을 등지고 있다하더라도

그 마음만큼은 대승적인 견지에서 세파에 시달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자신의 얻은 바를 아낌없이 나누어줄 때 그야말로 대승이 꽃을 피우는 겁니다.

그러나 알아야할 것이 있어요.

이러한 대승적인 행위를 하기위해 자신의 소승적인 본분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계율이 무너진 대승적인 행위는 이미 빛을 잃어버린 등불과 같아서

결코 어두운 미명을 밝혀주지는 못한다는 거지요.

자기 자신의 소승이 꽃을 피우고 난후에야 그곳에서 대승의 마음 꽃이 핀다는 것을 알고

더욱더 자기 자신만의 소승(小乘)을 지켜나가야 할겁니다.

깨달음을 얻은 스승들의 과거행적을 핑계 삼아 자신의 계율을 쉽게 허물어버리는 행위들은

마구니의 꾐에 넘어간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하지요.

보다 중요한 사실은 과거에 누군가 행한 행위를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득한 경지를 나 역시 득한 이후에

그 같은 행위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겁니다.

진정한 불자라면 소승이든 대승이든 구분하지 말고 대승 속에 소승을 지켜나가고

소승을 밑거름으로 대승을 꽃피워야하지요.

그래서 대승과소승은 한 몸 안에 피어난 두 가지 꽃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