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완전하시니 부족함이 없도다.
하나님과 하나 된다는 것과(성령과 하나 됨) 구원 받는 것을 하나로 볼 수 없다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하나님 왕국에 올랐다 보기 어렵습니다.
세상으로 돌아와야 하는 낮은 천국은 모르겠지만 영생의 하늘에 오른다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지난시간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판단범위를 벗어나 있다는 말을 한 겁니다.
같은 맥락에서 나 홀로목사역시 영적스승의 말을 100% 믿지 않는다면 구원이 아니라는 말을 한거지요.
영적스승이란 과거의 선지자를 현대식으로 표현한 것으로 오늘날의 성직자나 목회자를 가리킨다고 보면 됩니다.
그들의 말을 100% 신뢰하라는 말은 그들이 하는 거짓말조차도 참말로 알아들으라는 말이 아니라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으라는 뜻입니다.
즉, 말속에 담긴 뜻을 헤아리라는 말이며 지혜롭게 판단하라는 말이지요.
하나님과 하나 된다는 것은 완전해 진다는 의미로 어떤 경우에도 진리를 찾아내게 되어 있습니다.
달리 표현해서 지금 현시점에서 완전함을 볼 수 없다면 영생을 얻은 것이 아니니 좀 더 겸손 되게 가르침을 청하며 낮아지라는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이비 목회자 밑에서 계속 머물러 있으라는 말이 아니라 본인의 부족함을 알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니 부족함이 없으며 구원을 받았다는 것도 하나님과 하나 되었다는 것과 같으므로 부족함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구원을 준다는 쪽도 완전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쪽도 완전하지 않다면 둘 다 부족한 겁니다.
그러하므로 타인들을 비웃을 것이 아니라 본인들 앞날을 걱정해야 됩니다.
이것은 나 홀로목사가 사사롭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나와 있는 내용이며 지금까지 바울의 입을 통해 들었던 내용입니다.
과연 그러한지 오늘 또다시 로마서 속으로 들어가 확인해 보겠습니다.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롬9:19)
지금 이 말씀은 지난시간의 연장으로 하나님이 모든 일을 관장하신다면 어째서 우리의 잘못을 보시느냐와 하나님의 뜻을 누가 거스를 수 있냐고 묻는 겁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잘못을 저지를 수도 없고 뜻에 위반되는 짓을 할 수도 없어야 되지 않느냐는 거지요.
한마디로 표현해서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내가 잘못을 못하게 하면 되지 않느냐는 말입니다.
이러한 질문에 바울은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롬9:20)
Nay but, O man, who art thou that repliest against God? Shall the thing formed say to him that formed it, Why hast thou made me thus?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롬9:21)
Hath not the potter power over the clay, of the same lump to make one vessel unto honour, and another unto dishonour?
20절에서 바울은 피조물인 주제에 어떻게 하나님에게 대적하여 맞대응하려 하느냐 되묻고 있습니다.(who art thou that repliest against God?)
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신 분으로 토기장이와 같은데 그분이 만든 그릇의 용도는 그분이 결정하지 않느냐는 말을 하고 있는 겁니다.(21절)
성경을 읽어본 이들은 알겠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육신을 악하다 표현하고 있으며 성령은 선하다 표현하고 있지요.
그래서 육신은 징계를 받을 대상이고 성령은 영광받을 대상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육신을 가진 이로서는 징계를 피할 길이 없으며 성령과 하나 되기까지는 질고의 고통을 받아야만 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성령과 하나 되었다 해서 징계의 대상이 아닐 수는 없으며 다만 징계를 받아들이는 마음상태와 결과가 달라집니다.
똑같은 육신이라는 그릇에 담겨있지만 영광 받을 사람이 당하는 징계와 처벌받을 사람이 당하는 징계는 다르다는 것을 귀한 그릇과 천한그릇에 비유한 겁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바울은 다음과 같은 말로 징계 받는 구도자를 위로하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롬9:22)
What if God, willing to shew his wrath, and to make his power known, endured with much longsuffering the vessels of wrath fitted to destruction:
지난시간 보았듯이 바로 왕을 통해 하나님은 그의 노여움을 보이셨고(shew his wrath) 그의 권능을 알게 하셨습니다.(his power known)
즉, 바로왕의 마음을 완악하게 만드신 이유는 멸하기로 작정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거지요.
본인이야 곧바로 징계가 주어지지 않는지라 마음 내키는 대로 온갖 악행을 저지르며 살겠지만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준비해놓은 것으로서 세상마지막 날에 영과 육 모두가 멸망에 이른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이와는 반대로 영광을 얻을 이들은 다르다고 합니다.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롬9:23)
And that he might make known the riches of his glory on the vessels of mercy, which he had afore prepared unto glory,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롬9:24)
Even us, whom he hath called, not of the Jews only, but also of the Gentiles?
23절을 보면 영광을 얻을 이들은 고난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자비를 베푸신다 했습니다.
이 말씀은 구도자에게 주어지는 고난과 괴로움들은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he might make known the riches of his glory) 주어지는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뜻입니다.
물론 구도자라고 해서 물질적 축복이 오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다만 영적인 길을 걷는 이들은 하나님께서 크나큰 영광을 주시기 위해 시련을 겪게 하신다는 거지요.
그런데 이러한 일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하며 이방인 중에서도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 받는 이들은(whom he hath called) 해당된다고 합니다.(24절)
비록 교회를 다니지 않더라도 내재하신 하나님(성령)에 대해 알고 성령의 가르침을 믿고 따른다면 하나님의 자비로서 영광을 얻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고 비난을 해서도 안 되며 함부로 심판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이런 말을 듣고도 눈도 깜짝하지 않을 사람들이 많겠지만 진실하게 말하자면 본인이 비난하는 것으로 비난받을 것이며 심판한 잣대로 심판 받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것은 나 홀로목사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이라는 것을 밝히며 다음시간에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