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는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된 숫자.
집회 다섯 번째 시간에 대한 보고서입니다.
이번에도 목사님은 어김없이 구약의 내용을 여기저기에서 인용하였지요.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성경이 쓰였다고 하셨는데 과연 그러한지 관련 내용을 가져와 보겠습니다.
그러나 네가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찾게 되리니 만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그를 찾으면 만나리라(신4:29)
But if from thence thou shalt seek the LORD thy God, thou shalt find him, if thou seek him with all thy heart and with all thy soul.
이 모든 일이 네게 임하여 환난을 당하다가 끝날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그의 말씀을 청종하리니(신4:30)
When thou art in tribulation, and all these things are come upon thee, even in the latter days, if thou turn to the LORD thy God, and shalt be obedient unto his voice;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이라 그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너를 멸하지 아니하시며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리라(신4:31)
원래는 30절만을 인용하였는데 제대로 된 뜻을 알기위해 몇 구절 더 올렸습니다.
목사님께서 이 내용을 인용하신 것은 오늘날의 이스라엘민족이 독립할 수 있었던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말씀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4장 전체를 읽어보면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마음과 영혼을 다하여 찾으면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고 했습니다.(thou seek him with all thy heart and with all thy soul)
제대로 된 믿음의 길을 걷기까지 우상숭배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게 되면(if thou turn to the LORD thy God) 결국에는(even in the latter days) 만나게 되고 말씀에 순종하게 된다는 뜻이지요.(shalt be obedient unto his voice)
그래서 31절에서 자비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하나님의 백성=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버리지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잊지 않는다 하신 겁니다.
이러한 점을 잘못 받아들이게 되면 2천 동안이나 저주받던 이스라엘민족이 오늘날에 와서야 하나님의 약속대로 구원받게 된 것이라 주장하게 됩니다.
이럴 경우 예수사후에 태어난 사람은 물론 구약시대의 모든 선지자들조차 영생의 하늘에 오르지 못하고 우주 어느 특정한 곳에서 예수의 재림을 기다려야만 합니다.
실지로 목사님은 이러한 주장을 하기위해 요한계시록에 세상멸망의 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받는 숫자까지 명시되어 있다 주장하지요.
이해를 돕기 위해 관련구절을 보겠습니다.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계14:1)
시온의 뜻은 “요새”로서 믿는 사람의 마음, 즉 성전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14만 4천명은 육신을 성전 되게 만들만큼 강력한 믿음으로 무장한 구도자를 뜻하는 거지요.
그래서 어린양과 함께 섰다고 한 것이며 그 숫자가 144000명이라 기록한 겁니다.
어린양은 인자되신 예수님을 가리키며 함께 섰다는 것은 인자가 되었다는 말입니다.(인자는 예수의 전유물이 아님)
언제나 그렇듯이 성경에 기록된 숫자에는 깊은 뜻이 담겨있습니다.
십사만 사천 명은 사람의 숫자가 아니라 12의 거듭난 숫자를 가리킵니다.
12는 삼위일체(3) 하나님과 사람(4)의 연합된 숫자이며(3×4=12) 그러한 사람들이 거듭나는 것을 144에(12×12=144) 비유한거지요.
0은 꽉 찬 숫자이며 완전의 숫자이므로 아무리 많이 갖다 붙여도 의미는 같은 겁니다.
이렇게 받아들이지 못하면 금쪽같은 성경말씀을 걸레처럼 만들어 버리게 됩니다.
오로지 예수만을 위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성경이 마련되어있을 것 같으면 이방인들인 우리들은 성경을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
정말 이러한 가르침은 그야말로 재앙이며 사람으로 하여금 저주 속에 빠지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래서 입만 열면 지구멸망을 말하게 되며 성경말씀을 오해하여 가르치게 되는 거지요.
하나님을 믿지 않거나 성경에 대해 모르는 이들에게는 그러한 가르침이 효과를 발휘할지 모르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는 오히려 역효과로 작용합니다.
성경을 배워야 하는 쪽은 내가 아니라 그들이라는 말이며 하루라도 빨리 그러한 인식으로부터 탈출해야만 하는 겁니다.
지구멸망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본인의 멸망을 걱정해야한다는 말입니다.
정말 무엇을 걱정해야할는지 목사님이 인용하신 성경말씀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마24:1)
And Jesus went out, and departed from the temple: and his disciples came to him for to shew him the buildings of the temple.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마24:2)
And Jesus said unto them, See ye not all these things? verily I say unto you, There shall not be left here one stone upon another, that shall not be thrown down.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나왔는데(Jesus went out, and departed from the temple) 제자들이 또다시 성전건물을 보여주려 다가왔다고 합니다.(his disciples came to him for to shew him the buildings of the temple)
이장면만 보더라도 이 내용에는 담긴 뜻이 따로 있음을 알 수 있지요.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온 성령이라는 뜻이며 제자들이 보이려는 것은 성전이 아니라 자신들의 육신이라는 점을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즉, 육적속성이 완전히 무너져야 육신을 성전 되게 만들 수 있으며 성령과 하나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마24:3)
And as he sat upon the mount of Olives, the disciples came unto him privately, saying, Tell us, when shall these things be? and what shall be the sign of thy coming, and of the end of the world?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24:13)
But he that shall endure unto the end, the same shall be saved.
얼핏 보면 세상의 멸망을 말해놓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13절 내용을 보면 이것이 비유의 가르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받는다 했으므로 예수사후 2천년이 지난 오늘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만약 이것이 지구멸망의 날을 가리킬 것 같으면 교회목사님이 주신다는 구원은 가짜라는 결론을 얻게 되지요.
구원은 곧 영생이며 영생은 하나님나라에 올라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인데 단한사람도 하나님과 하나 된 사람이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의 하나님이라는 사실만 알아도 재앙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며 다섯 번째 보고서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