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넘치게 베풀면 모두 돌려받는다.

배가번드 2024. 11. 15.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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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주간은 무척이나 바쁜 날들을 보냈습니다.

구도자의 일생이 그렇기는 하지만 특히 지난주는 바쁘게 살아야만 했던 겁니다.

보통의 경우 새벽4시 알람소리에 잠을 깨는데 이상하게 지난주는 매일같이 새벽3시전후로 깨어나 하루를 시작하곤 했지요.

마치 내면에서 깨우듯이 일어나 보고서를 작성하고 6시면 출근하는 일이 계속되었는데 일요일 어머니 면회를 끝으로 모든 일정이 끝이 났습니다.

그러나 30년 전부터 이 같은 일은 지속되어 왔으며 다만 다른 점은 명상이 성경연구로 바뀌어있을 뿐입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성경연구가 명상이 되어있으며 일을 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이 지속되고 있는 겁니다.

행주좌와 어묵동정을 실천하고 있으며 범사에 감사하라는 하나님말씀을 청종(聽從)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말씀을 들을 때 집중을 하고 있으며 어떤 말씀을 어떤 목적으로 하는지를 살필 수밖에 없으며 졸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내가 조는 경우는 말씀에 흥미가 없거나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말을 한다 싶을 때뿐이며 그때는 조는 것이 아니라 명상을 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까지 이래왔듯이 이번에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한 주간 말씀을 듣는 가운데 가장 놀라웠던 점은 설교를 하는 목사님이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스스로가 모르고 있다는 점이었지요.

가장 대표적인 것이 조 용기 목사님의 간증을 인용한 부분과 성철스님의 열반 송을 예로 든 일입니다.

성경을 달달 외우다 시피하고 십자가 보혈을 앞세우는 사람조차 지옥 갈 수 있다는 점은 뒤로한 채 무조건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아 천국을 가게 되고 영생을 얻는다 말하는지라 너무나 어처구니없더라는 겁니다.

평생을 목회자의 길을 걸었고 성경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보혈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조 용기 목사 같은 분이 지옥을 갈수 있다는 것은 본인들도 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마치 본인들은 절대 지옥을 가지 않을 것처럼 사람들에게 구원을 주겠노라 큰소리치는 것은 조심해야할 일이지요.

분명히 말하지만 성령을 깨닫지 못하면 죽음과 함께 영혼이 멸망의 길을 걷게 됩니다.

영적인 길을 걷고 이웃을 하나님처럼 여기며 살았다면 그러한 대접을 본인이 받을 것이고 타인을 하찮은 짐승처럼 여기고 홀대했다면 거기에 걸맞은 대접을 본인들이 받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눅6:36)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눅6:37)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6:38)

Give, and it shall be given unto you; good measure, pressed down, and shaken together, and running over, shall men give into your bosom. For with the same measure that ye mete withal it shall be measured to you again.

 

한글성경은 비판이라 했지만 영어성경은 심판하지 말라 기록하고 있으며 용서하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좋게 받아들여(good measure) 눌러 참고(pressed down) 의좋게 지내며(shaken together)넘치게 베풀면(running over) 모두 돌려받게 될 것이라 말합니다.(shall men give into your bosom)

이 말씀은 인과응보의 말씀으로 하나의 법칙과도 같습니다.

해보면 알겠지만 베풀게 되면 반드시 돌아옵니다.

우리가 만약 물질적으로 자비를 베풀었다면 물질적인 것이 돌아올 것이고 영적으로 사랑을 했다면 영적인 사랑이 돌아올 것은 자명(自鳴)한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남에 대해 비판을 했다면 비판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며 단죄를 했으므로 단죄 당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나 같은 경우 지옥을 세 번이나 다녀올 정도로 많은 죄를 저질렀음을 스스로 고백하고 있으며 지옥을 경험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내가 만약 지옥을 가지 않았더라면 그 많은 죄를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을 까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내가 처해있는 현실을 내가 심어놓았던 결과물로 받아들이고 있는 거지요.

누군가 나에게 비판의 화살을 날린다면 과거에 내가 누군가를 비판했던 일이 돌아오고 있다 여기고 있으며 힘든 현실을 초래하게 된 것 또한 누군가를 힘들게 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현실을 받아들인다는 것이 아니라 피하려 노력해도 안 되면 그것은 운명이라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이치로 나에게 비판을 가해오면 나로서는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제도 이러한 일을 생각나게 만드는 일이 있었는데 오랜 기간 동안 함께 명상하던 동료수행자 한분이 전화를 걸어온 겁니다.

회원명단에서 삭제되기 전에 명상하러 나오라기에 신경 쓰지 않으며 집에서 명상을 하고 있다 말씀드리고 전화기를 내려놓았는데 옛날일이 떠올랐지요.

함께 명상하던 이들이 타단체로 떠났다는 사실에 걱정하며 대책마련에 몰두 했던 내과거가 되돌아왔음을 상기(想起)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떠난 분들이 회원들에게 전화를 해서 데리고 나가려했기에 대책을 강구해야한다 생각했던 것이지 떠나려는 사람들을 잡고자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일은 인과응보가 되어 돌아오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안과 밖이 둘이 아니라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됩니다.

그러는 한편으로 전화를 걸어온 이의 앞날이 무척 걱정됩니다.

내가 알기로 그분은 몇 년 동안 명상하러 나오지 않은 걸로 알고 있으며 그때조차 나는 전화한통 해본일이 없습니다.

졸업을 했거나 다른 공부가 더 필요해서 나갔거니 했던 겁니다.

떠난 사람 잡지 않고 오는 사람 막지 않는다는 스승의 말씀을 실천하고 있었기에 이 같은 일은 너무나 당연하다 여겼지요.

사실 이런 전화가 올 때마다 점점 더 명상센터를 나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나마 동수들에 대한 연민이 남아있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사라진다는 말입니다.

요즘도 채식을 하고 있으며 시간만 나면 한두 시간씩 앉아서 명상을 하고 있는데 구태여 센터에 나오라고 하는 이유를 도무지 알지 못하며 이해가 안 됩니다.

나보다 먼저 입문을 했으니 벌써 30년이 지났으며 깨달음을 얻어도 열 번은 얻어야 마땅합니다.

그럼에도 아직도 엄마젖을 더 먹어야한다 말한다는 자체가 나로서는 너무나 웃기는 일입니다.

지금까지는 비판을 무릅쓰고서라도 단체 명상에 참석하곤 했지만 이제 더 이상 철없는 아이들의 투정은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명단에서 삭제당하는 것 따위는 두렵지도 않으며 입문 증을 반납하라 해도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온 우주가 하나님 품안에 있고 내가 하나님을 품고 있거늘 도대체 누가 누구를 삭제하겠다는건지 무척 궁금합니다.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하며 편재하신 하나님이 없는 곳이 있다면 모를까 광명한 하늘아래 어떤 곳도 숨겨질 수 없는데 어디에다 나를 떠밀어 낼 건지요.

재주가 있다면 부디 나를 명단에서 삭제해주기를 바랍니다.

나는 저희를 공산명월(空山明月)로 알거니와 저희들은 나를 흑싸리 껍질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비판도 감당하려니와 나에 대한 비판을 어찌 돌려받을 건지 걱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