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생각 긴여운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배가번드 2024. 11. 21. 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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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들 중에도 나처럼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7일 안식교회라고 불리는 곳으로 침례교의 평신도였던 월리엄 밀러에 의해 만들어진 교단으로 알려져 있지요.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한국의 침례교회와 별 다를 바 없지만 채식을 하는데 있어서는 많은 차이점이 있으며 일부에서는 이단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이분들과는 김치를 판매하기위해 몇 번 접촉을 한일이 있는데 같은 채식주의자라는 이유로 종교에 관계없이 교류를 하며 친하게 지냈습니다.

채식을 한다는 공동의 목적이 있었기에 이 같은 일이 가능했지요.

생각해보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할 것인데 채식이 우선시된다는 점은 이상한일입니다.

같은 기독교인들과는 친하게 지내지 못하면서 채식하는 타종교사람들과 친하게 지낸다는 것은 어찌 보면 모순일수 있는 겁니다.

이는 마치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에서 이슬람국가들이 뭉치는 것과 같은 현상으로 볼 수 있을 거라 생각됩니다.

이슬람국가들 사이에도 시아파와 수니파가 갈려 가끔씩 전쟁을 하는데 공동의 적인 이스라엘이 등장하자 원수 같던 이들이 합치는 것과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겁니다.

이모든 것이 잘못된 믿음으로 인해 생기는 일이며 이 같은 일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같은 믿음아래 놓인 사람들 가운데도 반목과 갈등이 있다는 것은 완전한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는 증거인 동시에 육신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피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다 여겨집니다.

이러한 일에 대해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지요.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롬14:7)

For none of us liveth to himself, and no man dieth to himself.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8)

For whether we live, we live unto the Lord; and whether we die, we die unto the Lord: whether we live therefore, or die, we are the Lord's.

 

바울은 같은 믿음아래 놓인 이들을 상대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겁니다.

진정으로 창조주하나님을 믿는다면 자신을 위해 살거나 죽지 않는다고 합니다.(7절)

피조물로서 생사여부를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는 삶을 살기 마련이기에 8절에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라 했습니다.(we are the Lord's)

그렇지만 육신을 가진 사람으로서 이렇게 살기란 여간 어렵지 않으며 뭔가 표본이 필요하지요.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해줍니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롬14:9)

For to this end Christ both died, and rose, and revived, that he might be Lord both of the dead and living.

 

우리가 살아도 죽어도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to this end) 그리스도가 부활했다고 합니다.(Christ both died, and rose, and revived)

이 말씀인즉, 예수그리스도가 죽음으로부터 부활한 것은 우리의 표본이 되기 위해서라는 거지요.

영과육의 주인이라 했으니 인자라는 뜻이며 영육이 하나 되었다는 말입니다.

육의 속성을 죽이고 성령으로 되살아나는 것을 표본 되어 보여주었으니 너희들도 본받으라는 겁니다.

사소하게 먹는 것으로 서로 시비를 가리려말고 신앙생활을 하는 진정한 목적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라는 거지요.

그러므로 바울은 무엇이 중요한 것인가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롬14:10)

But why dost thou judge thy brother? or why dost thou set at nought thy brother? for we shall all stand before the judgment seat of Christ.

 

함부로 사람을 심판하거나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고 나면 하나님 앞에 가서 심판을 받게 될 것인데 어째서 함부로 대하느냐는 겁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볼 것은 형제의 범위를 어디에 둘 것인가 입니다.

내교회식구들에게만 적용할 것인지, 아니면 기독교 믿는 사람들만 형제로 여길 것인지, 그도 아니면 모든 사람을 형제로 여길 것인지, 혹은 살아 움직이는 모든 생명을 형제로 여길 것인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거지요.

이는 하나님을 어떤 존재로 여길 것인가와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품성을 담지 않은 그릇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이와 같은 말이 어떤 뜻이라는 점을 알게 됩니다.

하여 바울은 다음과 같은 말로서 하나님의 크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롬14:11)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롬14:12)

So then every one of us shall give account of himself to God.

 

이 말씀은 이사야서를 인용한 것이므로 보고난 후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땅의 모든 끝이여 내게로 돌이켜 구원을 받으라 나는 하나님이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사45:22)

Look unto me, and be ye saved, all the ends of the earth: for I am God, and there is none else.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기를 내 입에서 공의로운 말이 나갔은즉 돌아오지 아니하나니 내게 모든 무릎이 꿇겠고 모든 혀가 맹세하리라 하였노라(사45:23)

I have sworn by myself, the word is gone out of my mouth in righteousness, and shall not return, That unto me every knee shall bow, every tongue shall swear.

 

땅의 결말이라 했으니(all the ends of the earth) 물질세상 모든 것들의 마지막을 가리키며 나를 보고 구원을 받으라 했고(Look unto me, and be ye saved) 나 외에는 신이 없다 말하고 있습니다.(for I am God, and there is none else)

즉, 모든 것들의 마지막은 하나님께로 귀속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로마서와 이사야서가 약간 다른 점이 있지요.

로마서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직고(直告)한다 했는데 이사야서에는 맹세 한다 기록하고 있습니다.

직고한다는 account는 변명한다는 뜻으로 자신이 지은 죄를 모두 자백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사야서에 swear는 맹세한다는 뜻도 있지만 여기에서는 단언한다는 의미입니다.

종합하여 분석해보면 사람은 누구나가 죽어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되고 그때가 되면 자신이 지은 죄를 자백하는 동시에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확신하게 된다는 뜻이지요.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죽기 전에 이 같은 사실을 깨닫고 타인을 향한 심판의 칼을 함부로 휘두르지 말라는 겁니다.

다른 이에 대한 걱정일랑 접어두고 본인들 영혼의 앞날을 걱정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죽어서 하나님 앞에 무릎 꿇지 않을 사람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성경은 그런사람들을 버린바 되었다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갈 사람들만 들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