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흘림의 진정한 뜻.
지난시간에 이어 긍정적인 면을 말해보겠습니다.
이미 수차례 말했듯이 예수의 피를 믿고 죄 사함을 받아 구원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얼마든지 찬성합니다.
피가 죄를 도말(塗抹)시킨다고 했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내 죄를 모두 가져가셨다면 그보다 좋을 수는 없는 일이지요.
그러나 피가 가지고 있는 속뜻을 모른다면 여전히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피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살펴봐야 됩니다.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 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지며(레16:8)
And Aaron shall cast lots upon the two goats; one lot for the LORD, and the other lot for the scapegoat.
아론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레16:9)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 채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레16:10)
But the goat, on which the lot fell to be the scapegoat, shall be presented alive before the LORD, to make an atonement with him, and to let him go for a scapegoat into the wilderness.
또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휘장 안에 들어가서 그 수송아지 피로 행함 같이 그 피로 행하여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릴지니(레16:15)
Then shall he kill the goat of the sin offering, that is for the people, and bring his blood within the vail, and do with that blood as he did with the blood of the bullock, and sprinkle it upon the mercy seat, and before the mercy seat:
두 염소 중에 한 마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위하고 다른 한 마리는 희생양을(the scapegoat) 위해 뽑으라고 했습니다.(8절)
그런데 어째서 희생양을 아사셀로 번역했는지 알 수가 없는 일입니다.
아사셀의 뜻은 “떠나보냄”으로 죄를 전가하여 광야로 보낸 것이라 생각해서 이렇게 번역한 것으로 보이지만 영어성경 모두는 희생양으로 기록하고 있지요.
희생양이 될 염소는 살아있는 채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 제물로 만들어(make an atonement with him) 희생양으로서 광야(험한 세상)로 보내라는 겁니다.
이 말씀인즉 세상 죄를 짊어지고 가는 어린양(염소)이 될 사람은 하나님 전에 있다가 세상으로 내려온 영혼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15절에서 속제물의 염소를 백성을 위하여 죽이고(he kill the goat of the sin offering, that is for the people) 그 피를 휘장 안으로 가져가(bring his blood within the vail) 거세한 수송아지의 피처럼(as he did with the blood of the bullock) 자비의 자리에 뿌리라(sprinkle it upon the mercy seat) 한 겁니다.
여기에 언급되는 휘장이란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을 가리켜며 거세한 수송아지는 성별과 상관없는 영혼, 즉 성령을 뜻하며 자비의 자리란(the mercy seat) 하나님이 앉으시는 성좌(聖座)입니다.
희생양(예수와 같은 인자)이 성전에 올라 하나님과 동등한 자리에 앉게 된다는 것을 이렇게 비유한거지요.
이렇게 구약의 가르침이 워낙 비유로 이루어져 있기에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속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애꿎은 짐승을 잡아 제사를 지내왔던 겁니다.
이러한 일을 예수께서 타파하기 위해 본인이 희생양으로서 피 흘림의 진정한 뜻을 보여주려 십자가에 매달렸던 거지요.
그러므로 피는 곧 생명이자 성령을 뜻한다고 봐야하며 육을 죽이고 성령을 되살려야한다는 뜻에서 부활을 보여주었다고 봐야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문설주에 피를 바른다는 것은 성령을 깨달은 사람을 가리킨다고 봐야 하며 그러한 사람은 죄의 심판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뜻이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교회에서 전해들은 가르침은 틀리지 않나 생각할지 모르지만 영혼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진리의 가르침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의 피 흘림이 내영혼의 죄를 씻어주기 위해서라 생각한다면 틀린바가 전혀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육신이 지은 죄는 반드시 육신으로 갚아야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아이를 유괴해서 죽여 놓고 예수의 피 흘림을 믿고 죄 사함을 받았다 말해서는 안 된다는 거지요.
해보면 알겠지만 죄 사함은 영혼의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이며 육신으로 살아가는 동안 지은 죄는 어떤 방식으로든 갚게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이런 말을 하면 죄 많은 이나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은이들은 모두가 걱정을 할 겁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자신의 영혼이 죄 사함을 받는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오히려 살아생전 벌 받는 것을 즐거워하게 됩니다.
또한 죄를 씻는 방법 또한 알 수 있습니다.
타인이 내게 저지르는 죄를 내가 용서함으로서 내 죄가 용서된다는 이치를 깨닫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예수는 다음과 같이 기도하라 했지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마6:12)
And forgive us our debts, as we forgive our debtors.
직역을 해보면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자를 용서하듯이(as we forgive our debtors) 우리의 부채를 용서하라(forgive us our debts) 했습니다.
우리가 용서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타인을 용서해야한다는 뜻이지요.
그러므로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상대방의 행동에 맞대응하기보다 용서하는 기회로 삼아야 하는 겁니다.
모르긴 하지만 아직도 이러한 성경해석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거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성경말씀을 제대로 믿게 되면 이렇게 살기 마련입니다.
성령이신 하나님이 내안에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정말 믿는다면 그때부터 엄청난 일들이 우리에게 주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일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마24:1)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마24:2)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마24:3)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마24:6)
육신은 성전이요 성전에 거하시는 성령이 드러난 이가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성전에서 나왔다 했으며 제자들 역시 육신이 성전 되었는지를 점검받기 위해 예수께 다가온 거지요.(1절)
그러므로 돌처럼 단단한 고정관념이 완전히 무너져야 한다 말하고 있습니다.(2절)
이 말씀인즉 육신의 한계점을 철저하게 깨달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교회에서는 이 말씀을 두고 로마 침공 때를 가리킨다 말하지만 전혀 아니며 성령이 임하게 되는 순간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를 묻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주님이신 예수와 함께 있는데 불구하고 또다시 주님의 임하심과 세상 끝을 말해놓은 거지요.
어찌되었건 우리가 육신의 한계를 깨닫고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중요한 것이며 그러한 사실을 믿기만 하면 영혼의 구원은 이루어짐으로 교회에서 말하는 구원은 상당히 긍정적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다만 타인에 대해 함부로 심판 하는 것 때문에 본인들이 심판을 받게 된다는 점만 기억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