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과 시련은 끊임없이 주어진다.
고린도 후서 6장을 끝낸 탓인지 기나긴 꿈을 꾸었습니다.
한편의 영화와도 같은 꿈이었는데 이것이 하나의 시험이라는 사실을 꿈속에서조차 알았지요.
불평등한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배웠으므로 정말 그렇게 살 수 있는가를 시험받았던 셈입니다.
평소 친분이 있던 사람으로부터 한사람을 소개받는 것으로 꿈은 시작이 되었는데 영화배우처럼 잘생기고 남성미 넘치는 외모에 수수한 옷차림도 마음에 들었으며 인성도 좋은지라 금방 친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의 만남에서 한 가지 제안을 하는 겁니다.
나더러 중국으로 가는 컨테이너 하나를 운송해주면 아파트 한 채 값을 주겠다고 했지요.
모든 절차는 자신들이 알아서 하고 오로지 화주(貨主)가 되어주기만 하면 거액을 준다고 하는 말에 마음속에서 유혹의 속삭임이 일어났습니다.
이쪽세관에도 자신들의 사람이 심어져 있고 배안에도 일을 맡아서 처리하는 사람이 있으며 중국 쪽 세관에도 돕는 이들이 있으므로 서류상으로만 화물주인이 되면 거액이 생기는데 해도 되지 않느냐는 악마의 속삭임이 일어났던 겁니다.
환갑을 넘은 나이에도 힘든 일을 하고 있으며 집한 채 없이 빈털터리로 살아가는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아니냐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지만 하지 말아야하는 이유를 떠올리는 순간 잠에서 깨어나게 되었지요.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적당한 선에서 현실과 타협을 하며 살아가는데 네가 무엇이 잘나서 고고하게 살아가느냐는 생각도 일어났으며 거절을 하게 되면 국제적인 범죄조직으로부터 살해당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일어났지만 죽음을 맞이하더라도 거절하겠다는 생각을 끝으로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세상 사람들은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세상적인 관점에서 찾게 될 겁니다.
법을 어기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한다 말하겠지만 내가 거절한 이유는 따로 있으며 그것은 영적이지 못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일은 중국에서 김치공장 할 때 현실 속에서도 경험했던 일이며 호주에 머물고 있을 때도 경험했었습니다.
어느 날인가 김치가 한국으로 나가는 날 몇 사람이 공장을 방문했었는데 김치박스에 담긴 물건을 컨테이너에 실어주기만 하면 거금을 주겠다고 했지요.
중국세관에도 자신들의 동료가 있고 한국세관에도 동료들이 포진하고 있으니 아무 걱정 말고 실어만 달라고 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했던 겁니다.(훗날 알아본 결과 로렉스시계 밀수였음)
이렇게 거절을 한 탓인지 김치가 제때에 세관을 통과하지 못하였고 신 김치가 되어서야 통관(通關)이 허락되었는데 그때는 이미 상품가치가 떨어져 누구도 사지 않아 폐기처분해야만 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러한 나의 고지식함이 김치공장이 망하는데 일조를 하지 않았나 여겨 집니다.
뿐만 아니라 어느 날인가 김치수입업자가 찾아와 레시피를 내밀며 한주에 두 컨테이너만 만들어 달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거절을 해야만 했습니다.
젓갈을 약간 넣어달라는 바람에 거절을 했는데 공장 식구들이 난리가 났으며 나더러 미쳤다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요.
아무리 채식주의자라고 해도 본인이 먹지 않으면 될 것을 어째서 거절 하느냐는 겁니다.
모든 경비를 제하고도 순수익만 오백이 넘을 일을 안 한다고 했으니 그런 반응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겠지만 나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내 돈도 아니고 채식단체의 회원들이 주신 돈으로 채식단체를 대표하는 사람이 젓갈 넣은 김치를 만든다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내 개인이 먹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채식 인들의 양심과 단체와 스승을 욕보이는 짓이라 생각했기에 과감하게 포기를 했던 겁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의 나는 과거와 같이 그렇게 채식에 진심이지 못합니다.
그저 고기만 없으면 먹어도 상관없다 생각하고 있으며 과거와 같이 음식에 비 채식 양념이 들어갔는지를 확인하는 짓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 나에게 과거와 같은 일이 주어진다면 또다시 똑같은 짓을 할 거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 책임을 맡았고 나에게 그 역할이 주어졌다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나에게 누군가 찾아와 묻는다면 당연히 김치에 젓갈을 넣어서 만들어주라고 말할 겁니다.
당신의 역할이 김치공장 사장이라면 사장답게 행동하라 말하겠지요.
그러면 그 사람이 나처럼 영적인데 초점이 맞춰져 있을 경우 당연히 나처럼 행동할 것이고 물질적으로 치우쳐져 있다면 젓갈 넣는 김치를 만들어 팔게 됩니다.
이처럼 사람의 생각이 달라지는 것이며 이것이 정답이라 말할 것은 없습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며 살아간다는 것이지 이렇게 살면 천국가고 저렇게 살면 지옥 가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러한 내 생각은 호주에서도 마찬가지로 작용했지요.
한국 유학생들을 농장에 소개해주고 시간당 1~2불의 커미션(commission) 챙기는 사람을 컨츄렉터(contractor라) 부릅니다.
과거에는 자격증이 없었지만 요즘은 이러한 일도 자격증을 갖추어야한다고 합니다.
내가 호주에서 머물고 있을 당시 농장주로부터 이러한 제안을 받게 된 것은 더듬거리기는 하지만 손발 짓을 섞어 가며 대화가 통한다 싶었기 때문인데 이 역시 하지 않게 되었지요.
그 일이 지금은 호주정부에서 인정하는 일이 되어 있으며 라이센스까지 발급한다고 하니 분명히 불법적인 일은 아닙니다.
이러한 일로 일 년에 수억 원을 벌 수 있다고 하는지라 어찌 보면 상당히 좋은 직업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은 나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으며 구도자로서는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사람을 모아 한집에서 합숙하게 만들어야하고 여기저기 다니며 일자리를 만들어야하는지라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던 겁니다.
사람을 거느린다는 것은 책임이 따르는 일로서 함부로 할 일이 아니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돈을 많이 벌면 벌수록 책임과 의무가 더욱 크게 주어진다는 점을 알기에 자유를 얻기 위해 정진하는 구도자가 할 일을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던 거지요.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아무리 그쪽 일을 하려해도 하나님이 정확하게 그 길목을 지키고 있음으로 할 수가 없게 됩니다.
김치수출이 성공직전에 중국과 대만사이에 무역 분쟁이 터져 농수산물 수입금지 조치가 내려진 일을 비롯하여 호주에서 양털이불 계약이 성사되는 날 한국에 IMF가 터진 일 등과 같은 일이 삶 곳곳에서 일어나더라는 말입니다.
이러한 일이 구도의 길에서 마주하는 하나의 시험이라는 사실을 이번에도 꿈을 통해 확인을 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떤 때는 받아 들여야만 하는 일도 생깁니다.
내가 성경을 연구하게 된 일이 바로 그렇다고 할 수 있지요.
중국에 살 때 공장세를 못 내고 쩔쩔 맬 때 동생의 제안으로 성경강연회에 참석하게 된 것을 계기로 성경을 연구하게 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손길은 그야말로 경이롭습니다.
내가 만약 동생이 비 채식 인이고 나와 가는 길이 다르다는 이유로 손절하며 지냈다면 동생이 중국공장을 방문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며 내가 동생의 도움을 받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랬다면 오늘날 성경연구를 할 이유조차 찾지 못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내가 처음 강연회에 참석했을 때 목회자 몇 분과 상담을 했는데 그때서야 내가 성경을 집중적으로 연구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지요.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그저 시간이 나면 읽는 정도에 그치고 있었지만 몇 번의 강연회 참석으로 인해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내가 걸어온 삶의 길에서 마주하던 모든 순간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일을 밝히 드러내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일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하는 산과 강이 있으며 이번과 같이 꿈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조차 이러한 경험을 했다는 사실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마4:5)
시간관계상 관련 내용을 모두 올릴수는 없으나 이내용은 내면에서 일어나는 영적 전쟁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가 잘해낼 것 이라는 말씀을 드리며 일요일 아침을 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