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함의 방주를 만들라.
말씀을 듣고 난 후 다음날 글을 쓰게 됨으로 포스팅은 항상 하루 늦게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글은 두 번째 날의 보고서라 할 수 있으며 수요일저녁에 올릴 겁니다.
그런데 항상 그렇듯이 하나님의 실존과 성경이 진리의 책이라는 점을 강조하기위해 에덴동산이 실재했음을 주장하는 말씀이 두 번째 시간에 있었습니다.
이미 몇 차례에 걸쳐 이러한 점이 가지는 모순점을 지적하였지만 교회전체의 교리와 하나님의 실존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지금 이곳을 방문하는 분들은 영적으로 초보단계에 속한 이들이 아니라 영생을 얻을 만큼 성숙된 영혼이므로 속뜻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나 홀로목사로서는 어쩔 수 없이 속뜻을 말할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과정에서 목사님의 교리와 상충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부디 이해하시길 바라며 목사님이 인용하신 성경내용을 상고해보겠습니다.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창6:1)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창6:2)
That the sons of God saw the daughters of men that they were fair; and they took them wives of all which they chose.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창6:3)
And the LORD said, My spirit shall not always strive with man, for that he also is flesh: yet his days shall be an hundred and twenty years.
목사님은 1절만 인용하셨지만 3절까지 올렸습니다.
우리가 정말 성경을 통해 영생을 얻으려 한다면 목사님 말씀을 무조건 믿을 것이 아니라 우리스스로가 성경을 상고해봐야 합니다.
1절을 보면 지면에 사람들이(on the face of the earth) 증대하기 시작했을 때(when men began to multiply)그들에게 딸들이 태어났다고 했지요.(daughters were born unto them)
성경에 언급되는 딸은 단순하게 여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딸로서 성령을 잉태하는 사람(구도자)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2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the sons of God) 사람의 딸들의 공정하고 깨끗함을 보고(saw the daughters of men that they were fair) 그들을 선택하여(they chose) 모두의 아내로 삼았다고(they took them wives of all) 한 겁니다.
즉, 많은 사람들 가운데 믿음의 길을 걸으며 성령을 잉태하고자 노력하는 이들이(딸) 있으며 그들의 의로움과 깨끗함은 하나님의 분신인 성령의(하나님의 아들들) 이끌림을 유도하여 영적인 결합이(결혼)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해석이 되어야 3절 말씀이 올곧게 이해가 됩니다.
보다시피 그들의 날이 120년이라(his days shall be an hundred and twenty years) 했으므로 인간의 수명으로 보면 말이 안 되는 거지요.
지금 이 말씀은 노아의 방주사건 전에 일어난 일이므로 120년은 수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4=사람의 숫자) 하나님이(3=삼위일체 하나님)이 연합하여 완전해 진다는(10=완전의 숫자) 뜻으로 봐야 합니다.(4×3×10=120)
노아의 방주 전에는 사람의 수명이 9백년이 넘는 경우가 허다했다 성경이 기록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숫자에는 담긴 뜻이 따로 있는 겁니다.
또한 3절에서 하나님이 분명히 자신의 영이(My spirit) 아들들이라 했으므로 성령이 임하는 과정을 말해놓았음을 알 수 있지요.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볼 것은 성령이 사람의 몸 안에서 분투한다고 묘사한 점인데(My spirit shall not always strive with man)성령이 사람의 몸 안에서 육신과 투쟁을 벌이고 있음을 정확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영적인 길을 걷는 이들에게 일어나는 일로서 하나님 아들들의(성령) 선택을 받은 자에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육에 속한 이들이야 성령이 잠들거나 죽어있음으로 그저 본성이 원하는바에 따라 살아가기 때문에 영적으로 갈등을 하거나 투쟁할 까닭이 없지요.
그러므로 이 말씀은 구도자에게 영생을 얻을 기회를 주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이렇게 받아들이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음말씀도 속뜻을 헤아리기가 쉽습니다.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창6:14)
Make thee an ark of gopher wood; rooms shalt thou make in the ark, and shalt pitch it within and without with pitch.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창6:15)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창6:17)
And, behold, I, even I, do bring a flood of waters upon the earth, to destroy all flesh, wherein is the breath of life, from under heaven; and every thing that is in the earth shall die.
고페르의 뜻은 ‘속죄하다, 달래다’등이고 규빗의 뜻은 ‘팔의 어미’ 이므로 사람의 몸체를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보면 이 내용은 육신의 죄인 됨을 벗어나기 위해(속죄함) 위해 방주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깨닫고 하나님의 축복(5=축복의 숫자)으로 둘러싸여질 때 육의 속성들이 죽고 영으로 거듭나게 된다는 말이 됩니다.
14절에서 역청을 칠하라 한 것은 검다는 뜻의 ‘pitch’를 번역한 탓이지만 이는 육신이 검다는 뜻으로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육신은 안팎이 모두 검다는 뜻입니다.(pitch it within and without with pitch)
즉, 육신의 죄인 됨을 깨달아 알라는 말이지요.(육신의 한계를 깨달음)
그래서 속죄의 방주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며 삼위일체 하나님을 깨달아야 하나님의 은총으로 험한 세상 속을(물에 잠긴 세상) 안전하게 떠다닐 수 있게 되는 겁니다.(15절)
또한 이 말씀은 영육 모두를 동원해 최선을 다하라는 뜻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pitch:극도로의 뜻이 있음)
그리고 17절은 보면 하늘아래 있는(from under heaven) 생명의 숨결이 담긴(wherein is the breath of life) 모든 육체를 멸하기 위해(to destroy all flesh) 땅위에 홍수를 가져올(I, do bring a flood of waters upon the earth) 것이며 땅위에 있는 것들은 모두 죽을 것이다 했습니다.
물은 곧 생명이자 성령을 가리키므로 이 말씀은 성령으로 거듭나게 될 육신을 뜻한다고 볼 수 있지요.
육신 안에도 성령(생명, 숨결)이 담겨있지만 죄악으로 둘러싸여 있으므로(어둠으로 안팎이 칠해짐)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빛이신 성령이 감싸 안을 때 육의 속성들이 죽어 없어진다는 말입니다.(300규빗=삼위일체 하나님이 완전하심, 오십 규빗=은총으로 완전해짐)
이렇게 해석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심각한 모순점에 봉착하게 됩니다.
세상에는 엄청나게 많은 동식물 및 곤충들이 있는데 이정도 크기의 방주로는 도저히 그들 모두를 한 쌍씩 수용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넓은 세상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는 짐승들 모두를 단시간에 모두 모이게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러므로 성경은 담긴 뜻을 봐야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며 집회 두 번째 시간의 보고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