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목사

마태복음12.

배가번드 2016. 4. 10.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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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입니다.

이곳을 방문하시는 몇 안 되는 분들의 진정성에 감동되어 또다시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성경진도를 잠시 미뤄놓고 누군가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영적 질문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합니다.

오늘 제가 이러한 말을 하게 된 이유는 얼마 전 어느 재벌그룹의 회장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천주교신부님께 질문을 한내용이 인터넷을 통해 알려졌기 때문이지요.

한국최고 재벌그룹의 창업주로서 한 시대를 풍미한 고인께서 죽음을 앞두고 고민을 한 흔적이 여실하게 드러나는 질문들이었는데 어린 시절 나 홀로 목사가 마음속으로 삶의 목표로 삼았던 분이었기에 아주 관심 있게 보았습니다.

세계적으로도 일류기업으로 손꼽히는 그룹창업자께서 하신 질문은 그야말로 물질적인 성공의 끝자락이 어떠하다는 것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것이었기에 수행자의 한사람으로서 숙고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소식이 미디어(media)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천주교신부님께서 책을 발간하셨기 때문이었는데 책 내용이 어떠한지는 모르겠지만 이러한 질문이 우리에게 전달이 되었다는 것은 신이 우리로 하여금 생각해볼 기회를 주신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러면 먼저 고인이 죽음을 앞두고 고민한 흔적을 따라가 볼까요?

 

 

()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신은 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나?

신이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나?

종교가 없어도, 종교가 달라도 착한 사람들은 죽어서 어디로 가나?

성경에 부자가 천국에 가는 걸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에 비유했다.

부자는 악인이란 말인가?

 

 

폐암과 2년간 사투를 벌인 사람답게 많은 질문들을 하셨는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 역시 가슴에 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신을 믿지 않는 이유가 신이라는 존재를 볼 수가 없기 때문이라 여기는데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이들은 신을 보기도 하고 대화도 하기 때문이지요.

사정이 이러하다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지극히 개인적 일수밖에 없는데 질문을 하신분이 볼 수 없었을 뿐 신이 없다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 됩니다.

추정컨대 고인이 이러한 사실도 알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며 질문을 한 내용을 살펴보면 개인 안에서 존재하는 신의 모습보다는 모든 사람들에게 증명해 보일 수 있는 신을 말한 것이라 여겨집니다.

나 홀로 목사가 이렇게 말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데 고인은 살아생전 손에서 책을 놓지 않기로 유명하신분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출장을 가면 가장먼저 하는 일이 서점에 들러 책을 사는 일이라는 자서전 내용을 보더라도 알 수 있으며 질문의 내용들도 그저 한번쯤 해보는 생각이 아니라 긴 시간 숙고했다는 것을 알 수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들은 고인의 질문처럼 어떻게 모든 사람들에게 신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일 수 있을까요?

많은 분들이 자신이 본 신이야말로 진정한 신의 모습이라고 말씀 하시는군요.

또 다른 어떤 분들은 자신이 읽었던 책 내용을 말씀하시면서 신은 이러하게 나타난다 말씀하고 종교를 가지신 많은 분들은 자신들이 믿는 신이 어떻게 나타나며 어떻게 말해주신다는 말을 합니다.

참으로 많은 분들이 자신들이 경험한 일을 바탕으로 신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하는데 나 홀로 목사의 눈에는 그 모두가 일리가 있으며 그 모두가 신을 증명하는 일이 맞는다고 여깁니다.

아직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성경 안에는 여기에 대한 해답이 분명 나와 있으며 나 홀로 목사의 성경해석에도 많은 내용이 담겨져 있지요.

시간상 또다시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을 반복할 수는 없는 노릇인 만큼 고인의 질문에 집중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나 홀로 목사와 질문자의 차이점과 신을 증명하려는 많은 이들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알겠습니까?

우선적으로 질문자는 자신 안에 거하고 있는 신을 본 일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 나 홀로 목사와 다른 점이지요.

또한 신을 증명할 수 있다는 대다수의 사람들과 나 홀로 목사사이에도 엄청난 차이가 존재합니다.

신을 알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이 자신들의 믿음 안에만 있다고 하지만 나 홀로 목사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신을 믿지 않는 이들 안에도 신은 거하고 계시며 만물을 생동케 하시며 우주를 운행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수행에 관해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수행관련서적을 한두 번쯤 접해 보았을 것이며 그러한 수행서적이나 종교서적을 통해 감동을 받고 자신이 직접 수행을 하거나 종교생활에 심취해본결과 이런저런 신에 대한 체험들이 따르게 되지요.

그렇게 해서 많은 이들이 신을 경험하며 증명을 하게 됩니다.

이제 확실해졌나요?

그러면 첫 번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신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려면 어떠한 특정한 신을 믿는 것만이 아니라 각자의 믿음 정도에 따라 증명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이 같은 나 홀로 목사의 말이 틀리다면 종교가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신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어야하겠지만 그러한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으며 일어날 수도 없고 일어나지도 않을 겁니다.

질문자가 생전에 종교를 가졌는지 그렇지 않았는지 나 홀로 목사는 알 수가 없으며 구태여 알 필요도 없습니다.

만일 종교를 가지지 않았다면 당연히 신을 증명할 수가 없었을 것이며 가졌었다 하더라도 믿음이 약했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두는 생각을 해보십시오.

질문자께서 타개하시기 한 달 전 천주교 신부님께 이와 같은 질문을 하셨는데 살아생전 천주교 신자였다고 한다면 왜 신에 대해 확신을 하지 못했을까요?

그렇다면 천주교는 하나님을 증명할 수 없다고 해야 할까요?

천만에 말씀입니다.

우리들은 역사적인 사실을 통해서, 혹은 성경을 통해서, 아니면 또 다른 경로를 통해서 신을 증명할 수 있는 수많은 증거들이 천주교를 통해 나타났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몇 가지 사실을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질문자가 종교생활을 하지 않았거나 자신 안에서 신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거지요.

, 고인의 후손들이 모 불교단체에 거액을 기부한 사실을 보건데 고인이 살아생전 특정한 종교생활에 심취해 있지는 않았던 것 같으며 성경을 통해 신을 만날 수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말을 하다 보니 한 가지 걱정스러운 일이 생각이 나는군요.

나 홀로 목사는 지금 고인이 되신 재벌총수님께서 성경을 통해 아시고자 했던 신의 모습을 설명하는 중일뿐 특정한 종교를 지지하거나 배척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사족처럼 달아두고자 합니다.

분명하게 밝혀 두지만 세상의 어떠한 종교도 누군가에게 신을 증명해 줄 수는 없는 동시에 모든 이들에게 신을 증명해 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특정한 어떠한 믿음이 증명해 주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누군가가 자신 안에서 증명을 할 수가 있다는 겁니다.

이제 첫 번째 질문은 여기에서 마무리 짓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볼까요?

 

 

신은 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나?”

 

 

여기에 대한 대답도 첫 번째 질문과 그다지 다를 바가 없습니다만 좀 더 심도 있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것은 분명 질문자가 자신의 답답함을 나타내 보인 거라 할 수 있습니다.

신이 있다고 한다면 모든 이들 앞에 나타나서 속 시원하게 말해주면 해결이 될 문제인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신이 없지 않겠냐는 질문자 마음의 반영이지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많은 이들이 고인의 질문에 동감을 표하시는군요.

좋습니다.

그렇다면 이 같은 질문에 대해 답을 하기위해서 한 가지 가정을 해보도록 하지요.

어떤 불교도가 있다고 하고 그분이 신을 보았다고 합시다.

이러한 경우 이분이 말씀하시는 신을 크리스천들이나 타종교인 들은 인정을 할 수 있을까요?

마찬가지의 예로 크리스천들이 보았다는 하나님의 실체를 타종교인 들이 인정하겠습니까?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최 정점에서 본 신의 경우는 마찬가지가 되겠지요.

예수가 보았던 빛과(예수자체가 빛) 부처가 말한 아미타(무량광)는 동일한 빛을 말하며 높은 깨달음을 나타내고 있지요.

너무 높이 올라왔나요?

그렇다면 잠시 내려가도록 하지요.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나 홀로 목사는 지난 20년 가까운 세월을 명상에 심취해 살았습니다.

한분의 스승을 모시고 수행을 해나왔는데 그 단체에서도 이와 같은 일들은 숱하게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자신 안에서 신을 만났고 누군가는 신의 근처에도 못 갔는데 그러한 사실로 인해 숱한 논쟁과 다툼이 있어왔지요.

누군가 신을 보았으며 어떻게 말해주더라고 하면 타인들은 그것을 인정 못할 뿐 아니라 귀신들린 자 취급을 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나 홀로 목사가 몸담았던 단체에서 일어나는 일인 동시에 현 인류가 가지고 있는 종교의 현실입니다.

이제는 감이 옵니까?

신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미 드러내 보여주고 있지만 우리들이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이와 같은 제 말의 뜻이 누군가 신을 보았다고 해서 그의 말을 믿고 따라야 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신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정의 내려져야하고 신을 제대로 알기위해서는 어떠한 마음자세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 질문에 대한 해답역시 질문자가 믿음을 갖지도 않았고 자신 안에서 거하는 신을 보지 못했다는 것을 나타내 보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한 가지 생각해볼 문제가 있습니다.

왜 질문자는 그토록 오랜 세월을 책을 보았으며 성경도 읽었는데 신을 볼 수 없었는가 하는 것이지요.

여기에 대한 해답이 성경에 있었는데 잠시 인용을 해볼까요?

 

 

집 하인이 두주인 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하게 여길 수 없느니라(16:13)

No servant can serve two masters: for either he will hate the one, and love the other; or else he will hold to the one, and despise the other. Ye cannot serve God and mammon.

 

 

모두들 자세히 보셨나요?

분명히 예수는 두주인 을 섬기지 못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물질과 영이 어떻게 나눠지는가를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긴다고 가정하면 한 주인에게만 충성을 하고 다른 주인을 미워할 수도 없고 이 주인을 중하게 여기면 저 주인이 서운하게 여긴다는 비유야말로 기가 막히게 영과 물질을 구분지은 것이지요.

한글로 된 성경은 마지막 구절에 대한 해석을 하지 않았지만 영어성경은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Ye cannot serve God and mammon.”

너희는 신과 재물을 동시에 섬기지 못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물질적으로 타락되어있기에 성경에 대한 해석마저도 이와 같은 점은 중요시 여기지 않고 있지요.

본인이 신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하고 보지 못했다고 한다면 자신이 물질에 사로잡혀 있음을 알아야한다는 말입니다.

누군가는 말할 것입니다.

나는 내안에 신이 거함을 보았으며 돈도 엄청 많이 가지고 있다고요.

나 홀로 목사는 그분을 진정 존경한다 말하고 싶습니다만 잠시 그와 같은 인사는 뒤로 미뤄두고 한 가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신이 당신에게 돈을 준 이유가 당신이 호의호식하기를 바라서인가요?

아니면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나타내 보이라고 하던가요?

 

 

진정 그분이 자신 안에서 신을 보았다고 한다면 거기에 따라 그분의 행동도 걸맞게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신의 재산이 축이 날까봐 벌벌 떠는 사람이 자신 안에서 거하는 신을 보았다고 한다면 다들 코웃음을 칠 것이 분명하며 그와 같은 신을 사람들은 마왕이라 할 것입니다.

너무 직설적이었나요?

사실 사람들마다 신이라는 존재를 각자가 규정함으로 우리들이 이렇다 저렇다 말할 성질은 아니지요.

각설하고, 이런저런 예를 보더라도 신이 자신의 존재를 개인들에게 나타내 보이지 않는 것은 신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이 신과는 무관한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물질적인 일에 초점이 맞춰진 삶을 사는지라 영적인 삶을 살지는 못하고 있다는 말이며 신을 아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을 신으로 여기는 삶을 살고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특히 크리스천들이 물질적 부를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면 명백하게 성경에 위배되는 삶을 살고 있음입니다.

나 홀로 목사는 감히 말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떠한 종교도 물질을 귀하게 여겨 섬기라는 말을 적어놓지 않았으며 그 어떠한 스승도 물질 추구의 삶을 살라 가르치지 않았다고 말입니다.

이쯤에서 두 번째 질문을 마무리하고 다음 질문을 보도록 할까요?

 

 

신이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나?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사실 질문자 자신이 가지고 있지요.

본인이 타인들에게 행복과 불행을 동시에 주고 있음을 자각하지 못했기에 이러한 질문을 했겠지만 실상은 자신이 바로 많은 이들에게 고통과 불행을 주고 있다는 겁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물질로 인해 행복과 불행을 느낍니다.

그렇지 않나요?

바로 이러한 까닭에 물질적인 풍요를 줄 수도 있고 뺏을 수도 있는 힘을 가진 질문자께서 해답을 가지고 있다는 말인 동시에 신이라는 말도 되는 겁니다.

물론 이 같은 일을 영적인데다 대비를 하게 되면 상황은 달라지겠지요.

신과 인간을 별개로 보게 된다면 돈을 주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어디까지나 질문자가 될 것이며 돈을 받아 행복감을 느끼는 이는 돈을 받은 사실을 기뻐하며 돈을 준 사람에게 감사할겁니다.

그러나 신을 믿는 사람인 경우에는 주는 사람도 신이 자신을 통해 남을 도운다고 생각할 것이며 받는 이도 신이 자신을 돕는다고 여길 것이 틀림없습니다.

!

어떤가요?

신앙을 가지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에 대해 명확하게 다른 점이 보이지 않습니까?

질문과는 방향이 약간 다른 것 같습니까?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더 질문으로 돌아가 보도록 하지요.

신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또 하나의 무대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맛있는 과일하나가 두 사람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과연 신은 누가 먹도록 만들어야 할까요?

이제 해답을 찾으셨나요?

신이 나의 행복을 위해 과일을 나에게 주게 되면 타인은 불행해 지는 것이 이세상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마땅하겠습니까?

저기 어린아이하나가 손을 번쩍 들며 말하기를 과일을 나누어 먹으면 함께 행복해진다고 하는군요.

어쩌면 어린아이가 이렇게 지혜로울 수가 있는지요.

어른들도 못하는 일을 아이가 해냈지 않습니까?

신이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아서 불행과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합니다.

질문자가 이러한 질문을 하게 된 근본원인이 자신에게 있으며 신이 자신으로 하여금 신의 사랑을 실천하는 전령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사실이 인식되지 않고서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인간사의 불행이란 욕심에서 비롯된다는 의미는 바로 이러한 것이지요.

!

한 가지 빠트린 것이 있군요.

 

 

신은 왜 죽음을 주는가?

 

 

사실 죽음을 신이 준 것이 아니라 우리인간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겁니다.

가장 확실한 이유는 우리가 신을 몰라서인데 우리자신이 신과 하나 되어 영생을 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몰라서라는 말입니다.

너무 어렵습니까?

그렇다면 약간 내려와 볼까요?

신이 죽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죽음을 맞이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역할 바꾸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번에 과일을 먹어보았으니 다음에는 네가 먹어볼 차례라는 거지요.

이것이 바로 인과응보의 법칙인 것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설이 바로 이러한 점을 말해주는 것이지요.

많은 크리스천들은 이러한 윤회설을 인정하지 않는데 그이유가 성경에 그와 같은 윤회설이 나와 있지 않기 때문이라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도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이 분명하게 기록되어있지요.

또한 성경에는 자신의 재산을 모두 팔아서라도 영혼을 구하라 했는데 이 말씀을 기록한 이유가 바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인 영(진아)을 알아야 윤회로부터 자유로워지기 때문입니다.

가끔씩 철없는 기독교인들이 예수만 믿으면 천국을 가서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고 하는데 천만에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단연코 말씀드리지만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자신의 영을 깨닫지 못하고서는 윤회의 쇠사슬을 피할 길이 없기에 성경은 전 재산을 팔아서라도 영을 깨달아야 한다고 기록한 것입니다.

물질적인 욕심을 내려놓지 않고서 신과 하나 되어 영생할 길이 없다는 것을 기록해 놓은 것이지요.

만약 누군가 예수를 믿는 사실만으로 구원을 받거나 십자가의 보혈로 영생을 얻는다고 말한다면 마치 과일을 먹어보지도 않고서 과일이 맛있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물질적인 욕심을 버리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의 영혼을 깨닫는다는 것은 미국을 걸어서 갈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미국을 가려면 비행기를 타야 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혼의 세계로 가려면 몸이 영이 되어야 갈수 있는 겁니다.

물질을 달고 있으면 무거워서 날 수 없는 것처럼 세상사에 집착을 가지면 영을 알 길이 없는 거지요.

이제 다음질문으로 넘어가볼까요?

 

 

종교가 없어도, 종교가 달라도 착한 사람들은 죽어서 어디로 가나?”

 

 

이것을 알려면 죽어봐야 알지 않을까요?

종교를 가진 이들은 자신이 믿는 신이 심판을 내릴 것이지만 종교가 없는 경우에는 문제가 달라진다는 것이지요.

너무나 막연한가요?

그렇다면 언젠가 T. V에서 방영된 적이 있었던 사후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종교를 가지지 않은 이들이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자 지금껏 지내왔던 모든 일들이 수초 안에 모두 떠오르더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잘못된 과거의 모습들을 보면서 엄청난 후회를 했다고 하였는데 심지어 어떤 이들은 지옥을 경험하기도 했지요.

모두들 하나같이 양심의 심판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종교의 유무에 관계없이 심판의 순간은 다가온다는 말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지옥도 경험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왜 착한 일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아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성경에는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4:17)

 

 

참으로 지당하고 옳으신 말씀이지요.

자신이 생각하기에 옳다고 여겨지는 일을 위해 자신의 재산은 물론 목숨까지 바친 이들이 어디로 갈지는 각자가 생각해 보시면 명확하게 알게 될 겁니다.

아직도 모르시겠다고요?

그렇다면 다음질문을 보면 좀 더 명확해 집니다.

보시죠?

 

 

성경에 부자가 천국에 가는 걸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에 비유했다.

부자는 악인이란 말인가?

 

 

질문자가 하신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인데 실제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19:24)

 

 

어떤가요?

여러분은 아시겠습니까?

마지막 질문은 예수님이 부자 청년의 질문에 답한 것인데 고인이 하신 질문과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원래 청년이 질문한 것은 단순하게 천국을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 되는 영생하는 방법을 물었던 겁니다.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And, behold, one came and said unto him, Good Master, what good thing shall I do, that I may have eternal life?(19:16)

 

 

영생이라는 것은 행위로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했던 것이며 물질적 보상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말씀하신 겁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자신의 영을 깨닫지 못한다면 영생을 얻을 수는 없다는 말씀이지요.

그러나 물질적 보상은 따른다고 말씀하시기도 했지요.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19:29)

And every one that hath forsaken houses, or brethren, or sisters, or father, or mother, or wife, or children, or lands, for my name's sake, shall receive an hundredfold, and shall inherit everlasting life.

 

 

여기에 보면 물질적 보상이 나오는데 이 같은 사실을 미루어보아도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영생을 얻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나고 있으며 윤회를 한다는 사실 또한 기록되고 있습니다.

성경을 믿는 많은 이들이 나 홀로 목사의 말에 반대를 하시는군요.

그렇다면 왜 그러한가를 지금부터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우리들은 영화나 기록된 역사를 통해 수없이 많은 순교자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예수의 말대로 물질적 보상을 받았습니까?

이미 죽어버렸는데 어떻게 수백 배의 물질적 보상을 받을 수 있나요?

천국에서 받는다고 하는 분들은 그야말로 코미디를 하신다고 봐야합니다.

물질을 어떻게 영의 세계인 천국에서 받을 수가 있는지요?

천국에서 물질적 보상을 받을 수 있으려면 딱한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완전한 영이 아니라 또 다른 물질세상일 경우가 그러합니다.

또 다른 형태의 물질세상을 가리키며 그것을 낮은 천국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또 다른 의견을 말씀하시는군요.

영생으로 보상받는다고요?

그렇다면 예수님은 처음부터 영생을 받는다고 말하지 않고 물질적 보상을 말한 후 영생을 상속받는다고 말했겠습니까?

이렇게 보면 물질적인 보상은 낮은 천국을 가서받거나 이 세상을 다시 와서 받게 된다는 것이 맞는 것이며 윤회의 과정을 겪고 난 후 영생에 대한 가능성이 늘 상속되어진다는 말이 되는 겁니다.

따라서 착하고 선한 일을 하게 되면 일정한 기간 동안 낮은 천국에 머물다 다시윤회의 과정을 겪고 난 다음 언젠가는 영생을 얻게 된다는 말이 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를 믿는다고 무조건 영생을 얻는다는 것은 터무니없다는 말이지요.

말이 나온 김에 좀 더 명확하게 살펴볼까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하시니(19:21)

Jesus said unto him, If thou wilt be perfect, go [and] sell that thou hast, and give to the poor, and thou shalt have treasure in heaven: and come [and] follow me.

 

 

분명하게 보이지 않습니까?

완전해 지기 원하거든(If thou wilt be perfect) 물질을 버리고 예수(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스승)를 따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을 듣고 많은 크리스천들이 좋아할지도 모르겠군요.

예수를 믿으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글쎄요 입니다.

여기나오는 구절은 예수가 살아있을 당시에 일어난 일로서 예수가 직접 말을 한 것이지요.

완전한 깨달음을 얻어 하나님과 하나가 된 이가 말을 한 거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성직자가 예수를 믿으라고 말을 해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성령을 만나거나 내면의 빛이신 성령이 완전히 드러난 분을 따라야한다는 말이 되는 겁니다.

이미 지나간 성경강해 시간에도 보았듯이 예수가 보낸다는 보혜사(깨달음을 얻은 자)를 따라 헌신적으로 수행을 할 때 영생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말이지요.

이와 같은 이야기는 불교에서도 볼 수 있는데 당나라 시대에 실존인물이었던 방거사가 유명합니다.

마조도일(馬祖道一)의 재가 제자였던 방거사는 소문난 부자 이었는데 자신의 전 재산을 동정호에 빠트리고 온 가족이 불가에 입문하여 모두가 성불한 것으로 유명하지요.

많은 수행인들이 이들이 성불하였다고 하며 이들의 이야기를 본보기삼아 수행을 해야 한다 즐겨 입에 담지만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하고 있지요.

그만큼 영생(영원한 해탈)을 얻는다는 것은 힘들다는 말입니다.

어찌되었건 오늘의 시간은 마무리를 지어야할 것 같습니다.

나 홀로 목사는 일찍이 세상사에 미련을 버리고 명상을 하였지만 민생고만큼은 자력으로 해결해야하는지라 여러분을 자주 만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늘 하는 말이긴 하지만 먹고 살기위해 분주하게 보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너무 심하게 바쁘게 되면 자신의 영을 깨닫는 것은 어려울 수 있으므로 욕심내지 말고 단순한 삶들을 사시길 빕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보다 안정적이고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생기게 되면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홀리(holy) 홀리한 나 홀로(holo) 목사가 말하노니

영생을 원하는 이들이여!

 

물질을 따르지 말고 네 영혼의 외침을 듣는 자가 되라!

 

시끄러운 세상살이를 잠시 내려놓고

조용한 다락방에 올라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천상의 음악소리에 귀 기울이라!

 

정신없이 돌아가는 활동사진 같은 세상살이를

두 눈 질끈 감고 잊어버리라.

 

진정 그대가 신을 느끼고자하면 세상과 멀어져야 하느니

네 몸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다.

 

세상사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내려놓고

네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눈과 귀를 열어라.

 

구하라 찾을 것이요.

두드리면 열릴 것이니

 

구하지도 두드리지도 않으면

뉘라서 네게 찾아 줄 것이며 열어 줄 것이냐?

 

땅에 것을 구하는 자에게 돌아올 것은

무거운 쇳덩이 일 것이요

 

하늘의 것을 구하는 이에게

돌아갈 것은 영생일지니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질지어다.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