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15.
오늘도 변함없이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나홀로 목사입니다.
지난시간 보았듯이 하나님은 자비를 원하시며 번제나 희생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것을 원하신다 하셨으니 그 말씀에 따라 성경연구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관리가 와서 절하며 이르되 내 딸이 방금 죽었사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어 주소서 그러면 살아나겠나이다 하니(마9:18)
예수께서 일어나 따라가시매 제자들도 가더니(마9:19)
열 두해 동안이나 혈루 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마9:20)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마9:21)
For she said within herself, If I may but touch his garment, I shall be whole.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이르시되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즉시 구원을 받으니라(마9:22)
But Jesus turned him about, and when he saw her, he said, Daughter, be of good comfort; thy faith hath made thee whole. And the woman was made whole from that hour.
예수께서 그 관리의 집에 가사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를 보시고(마9:23)
이르시되 물러가라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그들이 비웃더라(마9:24)
무리를 내보낸 후에 예수께서 들어가사 소녀의 손을 잡으시매 일어나는 지라(마9:25)
그 소문이 그 온 땅에 퍼지더라 (마9:26)
참으로 대단한 믿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딸이 죽었지만 예수님께서 몸에 손만 얹어주어도 살아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으니 얼마나 큰 믿음이겠습니까?
마태오는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하기 위해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마태오는 믿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치유의 기적뿐만 아니라 구원이라는 것을 은연중(隱然中)에 말해놓았지요.
중요한 것은 병을 치유한 일이 아니라 영혼의 구원이라는 것을 말하기위해 병이 치유되었다는 말을 일부러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죽은 소녀를 살린 사실도 그다지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으며 소녀 아버지의 믿음에 무게를 두었지요.
이모두가 마태오의 인식정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 제자 중 12사도 안에 드는 마태오라면 충분히 이러고도 남음이 있다고 여겨집니다.
이러한 마태복음과는 달리 마가복음에서는 이 사건을 달리 기록하고 있습니다.
잠시 보도록 하지요.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맞은편으로 건너가시니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막5:21)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아래 엎드리어(막5:22)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거늘(막5:23)
이에 그와 함께 가실 새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막5:24)
열두 해를 혈루 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막5:25)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막5:26)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막5:27)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막5:28)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막5:29)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막5:30)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막5:31)
예수께서 이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보시니(막5:32)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막5:33)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 할지어다(막5:34)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 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막5:35)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 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하시고(막5:36)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 아무도 따라옴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막5:37)
회당장의 집에 함께 가사 떠드는 것과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함을 보시고(막5:38)
들어가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떠들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하시니(막5:39)
그들이 비웃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다 내보내신 후에 아이의 부모와 또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을 데리시고 아이 있는 곳에 들어가사(막5:40)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막5:41)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가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막5:42)
예수께서 이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그들을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막5:43)
여기를 보면 마가는 병자가 치유 받는 것을 중시 여겼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보다 상세하게 설명을 한 것은 치유의 기적이 정말 사실이라는 것을 강조하기위해서입니다.
마태오는 두 가지 기적을 9절로 기록하였지만 마가는 무려23절이나 되는 내용으로 기록했습니다.
이렇게 기록한일이 잘못된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라면 병을 낫는 기적정도는 중요시 여기지 않아야합니다.
물론 아직 초보자의 경우라고 한다면 이러한 기적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겠지만 적어도 예수님처럼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라면 육신의 일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기적이 없다는 말은 아니며 값어치가 없다는 말도 아닙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은 영적으로 보자면 아주 초보적인 단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거지요.
아마도 여기까지 오신 분들이라면 어느 정도 믿음의 길에 들어선지 오래되셨을 것이고 이러한 기적 같은 일들을 한번쯤은 경험해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나 홀로 목사역시 이러한 기적을 몇 번이나 경험을 했었지요.
하지만 이러한 일들도 어느 정도의 기간이 지나고 나니까 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들은 그 까닭을 아십니까?
정말 제대로 된 구도의 길을 걸어가게 되면 물질적인 면들이나 육신적인 일들로부터 점차 멀어지게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영적인면들만 중요시 여겨서 사는 동안의 기본적인것 외에는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왜 예수님이 이와 같은 기적을 행하셨는지 궁금하시다구요?
본문에서 보다시피 예수님은 분명 자신이 일으킨 기적을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제자 되는 이들은 성경에 기록하여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알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만들기 위해서 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자신이 행한 기적을 알지 못하게 하라고 단속했던 것은 사람들의 믿음의 형태가 기복적으로 빠질 것을 경계한 것이고 제자 되는 이들은 오히려 이러한 일들을 이용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믿음의 길로 들어오게 만들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했던 거지요.
그렇다면 나 홀로 목사도 사람들에게 기적을 보여주고 믿음의 길로 들어서게 해보라고요?
좋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도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 같은 믿음을 보여주십시오.
여러분들은 나 홀로 목사를 하나님처럼 믿을 수 있습니까?
그것 보세요.
아무나 그렇게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나 홀로 목사는 예수님처럼 그런 기적을 보여줄 생각도 없고 하나님처럼 믿어달라는 말도 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내용만 믿으시라는 말이지요.
사실 나 홀로 목사는 여기에 나와 있는 이와 같은 기적을 실지로 목격을 한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듣기도 했지요.
여러분들이 궁금해 하실 것 같아서 잠시 말을 하자면 사람이 죽게 되면 몇 가닥의 혼이 사람의 몸을 빠져나갑니다.
이것은 영혼과는 별개의 것으로서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인식체인데 살아있는 동안 사람에게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들입니다.
이러한 혼(인식체)들이 자신의 영혼과 합일을 이루는 것을 완전한 깨달음이라 할 수가 있는데 대개의 경우는 이러한 혼들이 있는지 조차 모르고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상세한 이야기는 아직은 때가 아닌지라 말할 수는 없고 여러분이 인식할 수 있는 예를 몇 가지 들어보겠습니다.
아마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산골에서 호랑이를 만난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을 겁니다.
깊은 산속에서 늑대를 만나거나 호랑이를 만난사람들이 혼이 반쯤 나가서 혼을 청해야한다거나 혼이 나가버려 정신이상자가 되어버렸다는 등의 이야기들이 바로 이러한 일을 말하는 거지요.
사람이 죽는다고 해서 금방 혼이 나가버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예로부터 사람이 죽게 되면 며칠 동안 두고 보는 풍습이 생긴 겁니다.
3일장이니 5일장이니 하는 것들이 이러한 이유에서 생겨난 것이고 심지어 49일장을 치르는 곳도 있습니다.
바로 이러할 때 사람에 따라서는 생명이 되살아날 수도 있으며 예수님의 기적도 이러한 기간 안에 일어났던 겁니다.
만약 시간이 경과하여 혼백이 흩어지고 영혼이 떠나버리면 아무리 예수님이라도 살릴 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나 홀로 목사의 주변에는 이러한 능력이 있는 이가 있으며 늘 나와 함께 동참해 주기를 바라고 있지요.
하지만 나 홀로 목사는 이러한 일에 전혀 관심이 없는데 왜냐하면 아무리 기적의 힘을 발휘해서 고쳐놓아도 육신이 영원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같은 일은 넘어야하는 산이기도 하며 수행여정에 있어서 반드시 거치고 넘어서야하는 과정과도 같은 겁니다.
아마 많은 분들은 나 홀로 목사의 말에 동조하지 못할는지도 모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생명보다 귀한 것이 어디 있냐며 이러한 기적이야말로 대단하다 말할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여러분 모두는 알아야할 일이 있습니다.
학교에도 유치원부터 시작해서 대학교 과정까지 있듯이 영적인 길도 그러합니다.
유치원을 다닐 때는 선생님이 대소변 가리는 것부터 밥을 먹는 것 까지도 보살펴주지만 초등학교를 올라가면서 기본적인 것들은 자신이 하도록 내버려두고 공부를 가르칩니다.
하지만 중고등학교에서는 좀 더 난해 한 것들을 가르치며 성장하는데 필요한 지식들을 가르치지요.
대학교는 어떻습니까?
보다 자유로운 상태에서 사회에 나갔을 때 각 분야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되는 법을 가르치지 않습니까?
이와 똑같은 일이 영적인 길에도 적용이 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자기가 대단하다 여기면서 살아갑니다.
그러기에 남의 말은 잘 듣지를 않지요.
이러한 사람들을 영적인 길로 인도하려면 참으로 대단한 인내와 보통의 사람들은 할 수 없는 일들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와 같은 기적을 보여줘야 했던 거지요.
중국에 사는 동안 이와 같은 일들을 무척 많이 경험했었는데 이웃집 아주머니가 병에 걸린 적이 있었습니다.
집에 자주 놀러오기도 하고 식구들끼리도 알고 지내던 사이여서 왕래가 잦았는데 그 당시 우리 집에 머물고 있던 도사한분을 알게 되었던 겁니다.
저로서는 도사라는 분에게 관심이 없었고 그저 우리 집에 머무는 것을 허락해주기만 했었는데 자기들끼리 왕래가 있었던 거지요.
그런데 그 도사님께서 이웃집 아주머니보고 병에 걸렸으니 당장 고치지 않으면 죽는다고 했었답니다.
그 당시 1500위안(한화195.000원)을 내놓으라고 했다는데 너무나 값이 비싸다면서 병을 낫게 하는 처방을 받지 않았었지요.
하긴 그럴 만도 한 것이 그 당시 그 지방 평균한달 월급이 500위안이 안될 때였으니까 무려 3달치의 월급보다 많은 돈을 한꺼번에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겁니다.
이일은 나 홀로 목사가 있었을 때 일어났었던 것이 아니라 공장세를 내지 못해 한국으로 나와 주유소에서 일을 할 때였었는데 중국으로 돌아갔을 때는 이미 돌아가셨었지요.
사람들의 일이란 이러합니다.
물질이 사람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것이 이 세상 사람들의 인식인데 이러한 사람들의 인식을 어떻게 하루아침에 바꿀 수가 있겠습니까?
앞서 보았듯이 물질적인 풍요의 길을 한순간에 버릴 수 있었던 마태오가 12사도 안에 들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겁니다.
오늘날 많은 수행자들이 자신의 물질적 삶에 당위성을 부여받고자 핑계거리를 찾습니다만 그들의 말로는 그들의 행위가 진로를 결정하게 되어있습니다.
적어도 성경에서만큼은 그러한 일이 변할 수 없는 진리이며 물질세상이 존재하는 한 영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세상의 많은 종교나 수행단체들은 성경을 팔아먹고 예수를 팔아먹습니다.
그러면서 한다는 짓들이 모두 자신들의 이익과 제 가족들의 영화에만 눈이 멀어있지요.
사실 이러한 사람들을 나무랄 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수요와 공급비례의 법칙에 따라 그런 사람들을 따르는 많은 이들의 인식이란 대부분 그런 사람들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은 또한 이러한 말들도 합니다.
사람을 고칠 수 있는 기적이 있다고 한다면 왜 그 도사는 돈을 받는가요?
기적의 힘이란 어차피 신이 주신 것이고 신의 선물을 공유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는가요?
참으로 한심한 노릇입니다.
성경에 나온 것처럼의 믿음도 가지지 않은 상태에서 병을 고쳐주면 믿겠다는 것은 도둑놈 심보라는 것을 본인들이 모른다고 한다면 세상을 좀 더 경험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도 전혀 근거 없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인간의 육신이라는 것은 간사하기 이를 데 없어서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믿기란 어렵습니다.
그러기에 돈을 받아야만 자신의 병이 나을 거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는 겁니다.
이러한 일 때문에 중국에 있을 때 도사에게 충고성 발언을 한 적이 있었지요.
돈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공짜로 해주거나 실비로 해주어도 될 텐데 뭣 하러 그렇게 비싼 돈을 요구하는가 했는데 그 도사님의 대답이 걸작이었습니다.
“신들은 사람들에게 돈이나 물질을 바라거나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돈을 받지 않으면 그들에게는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신이 보시를 받아서 뭐에 쓰겠습니까?
다만 인간들의 가치관이 물질적인데 맞춰져있으므로 그들의 믿음을 위해서 받아들이는 겁니다”
정말 일리 있는 말이다 싶어서 더 이상 따져 묻지 않았었지요.
여러분 모두는 왜 많은 이들이 자신이 믿는 종교에 목을 매는지 아십니까?
지금껏 온 정성을 다해 믿었기 때문으로 몸과 마음은 물론 돈까지 바쳤기 때문입니다.
재산을 많이 바친 사람일수록 자신이 믿는 종교에 대한 확신이 더욱 심해서 세상 사람 모두가 사이비라고 욕을 해도 죽어라고 매달리게 되는 겁니다.
이 같은 일은 많이 배운 사람이라고 해서 달라지지 않으며 지식정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더욱 심하게 됩니다.
자신처럼 똑똑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틀린 판단을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환상을 만들어서라도 믿고야 말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해결방법이 없냐고요?
물론 있으며 지금 우리가 걸어가는 길이 이러한 일에 대해 해결방법을 제시하는 길입니다.
아직은 우리들이 갈 길이 멀기는 하지만 약간의 팁을 줄 수는 있습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해답을 얻어야 하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기는 하지만 자신이 어느 정도의 위치에 놓여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는 드리겠다는 겁니다.
지금당장 여러분이 속해져 있는 종교나 믿음의 길을 떠나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면 졸업장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하거니와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자격미달이며 좀 더 많은 과정을 필요로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장 그만두면 되느냐고요?
만약 여러분이 졸업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지금의 길에서 내려올 경우 다른 곳에 가서도 똑같은 과정을 겪어야만 합니다.
여러분 모두는 자신의 인생길을 되돌아 보기바랍니다.
아마 이런저런 이유로 종교를 바꾸기도 하고 인생길을 바꾸어보기도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어떻던가요?
처음에는 환경이 바뀐 탓에 멋모르고 지내왔는지 모르지만 어느새 뒤돌아보면 처음으로 돌아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겁니다.
아직 발견이 되지 않고 있다면 두 가지의 경우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완전한 졸업을 했을 경우이고 나머지 하나는 아직은 처음 떠나올 때만큼의 정도에 이르지 않았을 경우입니다.
이 같은 일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있습니다.
나 홀로 목사의 주변에는 자신들의 단체로 같이 갈 것을 권유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한때는 나 홀로 목사가 속해있던 단체의 회원이었던 분인데 불만이 있어서 다른 단체로 옮기게 되었지요.
그분말씀으로는 스승이 너무 폭력적이어서 옮겼으며 그밖에 다른 이유도 있다고 했는데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나 홀로 목사로서는 동조 할 수 없었던 이유가 스승이 폭력적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모르기도 했고 그 일이 나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관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지요.
그와 같은 일로서 공부를 해야 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당사자인 스승과 폭력적인 일을 당해야만 했던 사람의 문제라고 여겼기에 개의치 않았는데 그분은 나와는 생각이 달랐던 겁니다.
결국 그러한 이유로 단체를 벗어나게 되었고 여러 스승을 찾아 헤맸던 거지요.
처음으로 옮겨간 곳에서 스승과 독대를 하였는데 스승가까이 갔더니 마늘냄새가 나서 뭔가 이상하다 생각했다더군요.
어떻게 해서 깨달은 스승이 오신채를 먹을 수 있는가 했다는 겁니다.
그이후로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쯤에 올 바른길을 만났다고 했습니다.
그곳이 너무나 좋고 스승도 좋아서 수행이 일취월장한다면서 선전을 하기에 그저 묵묵히 웃기만 하였고 나는 취미가 없노라 말씀드렸었지요.
그저 깨진 바가지 들고 어디를 가도 비새는 것은 마찬가지라고만 했는데 그 말을 못 알아들었는지 기회만 닿으면 자기네 단체와 합류할 것을 권유하곤 했습니다.
당신은 깨진 바가지라 물이 새고 있으니 바가지 수리부터 하라는 소리도 못 알아듣는 사람이 나 홀로 목사에게 자신이 진리의 길을 찾았으니 가자고 한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요?
여러분에게 장담하건데 자신이 깨달음을 얻지 못한 상태에서는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의 결과를 맞이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새로운 환경 탓에 즐겁고 몸과 마음이 가벼운 것 같겠지만 어느 정도의 시간이 경과하고 나면 결국 못 넘은 산이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나 홀로 목사는 지금 있는 자리에서 인식의 확장을 꾀하라고 말하고 있는 겁니다.
아마도 이러한 나 홀로 목사의 말을 그분이나 종교를 바꾼 이들이 듣는다면 기분이 나쁘겠지만 기분나빠할 문제만은 아닙니다.
나 홀로 목사의 주변에 어떤 구도자 한사람이 있습니다.
이분은 그다지 깊은 신앙심을 가진 종교인은 아니었으나 어려서부터 천주교신자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 신부님에 대한 비리를 알게 되었지요.
사실 비리라기보다 신부님이 돈을 바란다는 사실이 이분을 기분 나쁘게 했던 겁니다.
그밖에도 교리상의 여러 가지일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분은 교회를 다니면서 완전한 기쁨을 얻었으며 활기 넘치는 신앙인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켜보는 입장에서 보자면 이분은 결국 신부님에게 차비를 강요받는 것이 기분 나빠 종교를 바꾸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신부님께 드리는 차비 수십 배가 넘는 돈을 교회에다 내고 있습니다.
나 홀로 목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절대 이와 같이 종교를 바꾸거나 스승을 바꾸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보시다시피 이 두 분들은 모두가 자신들은 진정한 구원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기분이 좋았으면 나 홀로 목사에게 모든 경비를 댈 테니까 인도의 자기스승에게 가서 함께 명상을 하자고 권유하기까지 합니다.
또 다른 한분은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나와함께 할 것을 권유하셨지요.
속으로 웃음을 감추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겁니다.
그분들은 자신들이 아주 멀리 왔고 과거와는 전혀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모두가 하나님의 손바닥 안에서 놀고 있을 뿐입니다.
그분들은 참다운 스승을 만나고 참 진리를 만났다고 좋아하고 있지만 실상을 바라보면 참다운 스승이나 참 진리의 길은 따로 없으며 참다운 제자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야함에도 자신의 스승과 종교야말로 참되다고 자랑을 합니다.
여러분은 나 홀로 목사의 말이 이해가 됩니까?
만약 이해를 하셨다고 한다면 그분은 정말 스승의 자격이 있으며 지금 당장 졸업을 하셔도 됩니다.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좀 더 겸손해져야하고 많은 노력을 기울려야합니다.
많은 이들은 영적인 스승들을 만나거나 혹은 수많은 과거스승들의 경험담을 기록한 책을 보거나 경전을 보며 영적인 길에 지표로 삼고 구도의 험난한 길을 걸어가는데 이러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는 하나의 오류는 스승을 육신으로 인식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들은 영원히 깨달음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알아야할 유일한 일은 진정한 스승이란 육신이 아니라 육신을 통해 가르침을 주는 영적인 존재, 즉 성령이라는 사실입니다.
성령이라는 말은 어느 특정한 종교에 국한시키는 단어가 아니라 신이라고 해도 좋고 하나님이라고 해도 좋으며 부처님이라고 불러도 좋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령이라는 것은 하나님이라 불러도 무방할 것인데 이러한 하나님의 특성은 무소부재하며 전지전능하시며 편재하신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압니다.
이런 성령이 하는 일은 누군가가 간절히 바라고 원하는 것을 주는 것입니다.
앞서 보았듯이 비록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스승이라 할지라도 그 스승의 입을 통해 성령이 말을 해준다는 사실을 알아야하며 돈에 눈이 먼 신부님의 입을 통해서도 진리의 말씀을 전해주며 옮겨간 곳의 스승과 목사님의 입을 통해서도 진리의 말씀을 전해준다는 거지요.
당연히 이러한 일이 가능하게 하는 것은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구도자 본인입니다.
자신의 바가지가 무언가를 담을 만큼 충분히 수리되어있다고 한다면 어디에 가도 마찬가지의 결과가 올 것이며 바가지가 깨어져 물이 샌다고 한다면 어디에 가도 물은 새기 마련이라는 거지요.
언제나 변함없는 것은 수요와 공급은 비례하기 때문에 좋은 제자에게 좋은 스승이 나타나게 되어 있으며 좋은 종교를 만드는 것은 신앙인들입니다.
사실 어떤 단체를 형성하거나 종교를 만든다는 것은 엄청나게 힘든 일입니다.
남 보기에는 사이비니 이단이니 하지만 그런 단체나 종교가 그저 생겨날 수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그러한 단체나 종교를 이끄는 지도자의 일이란 상상을 초월한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일이지요.
우리들에게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불평불만을 토로하고 그들을 공격할 것이 아니라 지켜보는 인내심이 필요한때입니다.
정말 참지 못할 정도로 불만이 있다고 한다면 조용히 옮겨가거나 피하면 되는 것이지 필요이상의 욕을 퍼부을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공부의 정도에 따라 더 이상의 공부가 필요 없을 경우 자연스럽게 떠나면 되는 것인데 뒤돌아 욕을 한다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졸업은 못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나타내 보이는 겁니다.
우리들이 항상 명심해야할 일은 이 세상에 일어나는 그 어떠한 일이라도 하나님의 허락이 없으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아직은 여러분의 눈에 말도 되지 않는 일들이 보일 것이고 사람 같지도 않는 인간들이 보이겠지만 그 모든 일들이 한 치의 오차 없이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알 때까지는 그 누구를 심판해서는 안 되는 겁니다.
사실 나 홀로 목사역시 많은 비판을 했습니다만 속 깊은 마음으로는 절대 비판하고자 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너무 심하게 타종교를 비판하고 일반인들을 향해 지옥을 간다 말을 했기 때문에 그러한 일에 대한 비판을 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그들을 비판하려면 나 자신부터 단죄를 받아야한다 여겼으므로 나 홀로 목사가 속해져있는 단체를 향해서도 비판의 칼날을 날려야만 했던 겁니다.
이러한 행위가 의도된 것이라 할지라도 나 홀로 목사 역시 마음이 편치는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러한 심판의 행위가 각자의 믿음생활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거지요.
아직은 우리가 이러한 시각이나 인식정도를 가지지는 않았으므로 때때로 심판을 하고 판단을 내리겠지만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록 이러한 일들이 줄어들게 되어있습니다.
첫째로 이러한 일들이 자신의 눈에 띄지 않을 것이며 심판받거나 심판할일들이 없어지게 될 겁니다.
여러분 자신이 의도적으로 인연을 맺지 않는 한 점차 세상일과는 거리를 두게 된다는 거지요.
그리고 여러분 모두는 생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단체를 옮기고 종교를 옮길 수 있었던 것이 하나님께서 여러 단체와 종교를 만들어 놓으셨기 때문이 아닙니까?
여러분들의 말처럼 여러분들이 선택한 스승과 종교만 남기고 다른 단체나 다른 종교를 없애버리면 어떻게 될지 생각이나 해보셨습니까?
아마도 여러분은 그렇게 되면 아주 잘된 일이라 여길지도 모릅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면 여러분은 정신과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합니다.
세상에 어떤 단체나 종교도 뿌리 없이 생겨나지는 않았다는 것을 안다고 한다면 그런 망발은 하지 않을 겁니다.
정말 절대적인 진리의 길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면 이 세상에는 단하나의 종교밖에 없어야하며 지금 여러분이 목숨처럼 여기고 있는 단체나 종교는 존재할 수조차 없었음을 알아야 한다는 거지요.
지금 여러분이 속해져있는 단체나 종교가 여러분들에게 실망을 줄때 옮겨갈 수 있는 다른 단체나 종교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여러분이 옮겨올 수 있었듯이 여러분이 속한 곳으로부터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 하는 이들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하며 여러분이 떠나온 곳에서도 희망을 찾고 기쁨을 얻는 이들도 있다는 거지요.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면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보다 앉은자리가 명당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됩니다.
부디 이러한 일을 알고 남의 종교나 스승에 대해 이런저런 비판을 자제하시기 바랍니다.
너무 멀리 온 것 같지요.
앞으로 우리들은 성경 곳곳에서 영혼에 대한 이야기와 수행에 관한 이야기를 할 기회가 많으므로 시각을 다시 성경 안으로 돌려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 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마9:27)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마9:28)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마9:29)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고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셨으나(마9:30)
그들이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퍼뜨리니라(마9:31)
다른 내용과는 달리 여기에서는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다윗의 자손이라고 한 것은 구약에 다윗의 자손 중에서 메시아가 태어난다고 했기 때문에 이렇게 불렀다고 하는데 그렇게 볼 것이 아니지요.
모두가 알다시피 예수님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것이 메시아를 뜻한다고 말합니까?
정말 오늘날의 기독교도들의 주장처럼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고 한다면 다윗의 자손이 될 수는 없는 겁니다.
이러한 일도 제대로 바로잡지 못한 채 사람들에게 믿으라고 한다면 그 믿음이 얼마나 갈 것 같습니까?
여기에서 다윗의 자손이라는 것은 멜기세덱과 같은 제사장 신분을 이어받은 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에게로부터 권능의 힘을 부여받은 멜기세덱이라는 것을 알고 예수님이 눈을 뜨게 만들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눈을 뜨게 되었던 겁니다.
다른 곳과는 달리 이러한 내용에 대한 일들은 다른 복음서에서는 언급을 하지 않았으니 다음 내용으로 넘어가겠습니다.
그들이 나갈 때에 귀신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께 데려오니(마9:32)
귀신이 쫓겨나고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거늘 무리가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적이 없다 하되(마9:33)
바리새인들은 이르되 그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마9:34)
But the Pharisees said, He casteth out devils through the prince of the devils.
앞서도 보았고 지금도 보고 있듯이 귀신이 들린 사람들이 참으로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는 뜻을 가진 이스라엘에 왜 이리도 귀신들린 사람들이 많을까요?
여러분들은 이상하지 않습니까?
성경책을 보면 분명히 하나님이 만든 아담의 후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인데 귀신들린 이들이 많다는 것은 참으로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어도 귀신이 들린다는 말일까요?
아니면 귀신은 하나님의 영역밖에 존재하는 또 다른 영적인 존재일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무런 생각도 없으시다고요?
좋겠습니다.
머리가 텅 비어서…….
성경은 머리로 생각해서는 안 되고 무조건 믿어야 된다고요?
좋으시겠네요.
단순해서…….
생각해보지도 않고 믿는 사람의 타입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자신의 느낌을 따라가는 이들이고 나머지는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사람들입니다.
느낌을 따라가는 사람들은 실수를 해도 후회를 하지 않지만 남들이 가니까 따라간다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후회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기록하기를 성경을 상고(詳考)하라고 했지요.
하나님께서도 성경을 상고하라고 말씀하셨으니 나 홀로 목사가 기록된 여러 복음서를 서로 비교하고 고찰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부합하는 일이라 여깁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은 땡잡은 겁니다.
나 홀로 목사가 아니면 누가 이런 기회를 주겠습니까?
웃으려고 한말이니 거만하다거나 교만하다는 말씀은 말아주십시오.
말로 할 때는 농담이 아주 쉬운데 글로 농담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이 듭니다.
시간이 다되어가는지라 귀신에 대한 해답은 다음 편으로 미루고 마지막 구절을 보고난 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마9:35)
And Jesus went about all the cities and villages, teaching in their synagogues, and preaching the gospel of the kingdom, and healing every sickness and every disease among the people.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마9:36)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마9:37)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주소서 하라 하시니라(마9:38)
위에 나와 있는 구절들은 모든 병이 일어나는 근본원인들을 밝혀놓았습니다.
그리고 치유방법까지도 말해놓았지요.
아무리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고요?
왜 보이지 않습니까?
천국복음을 전파하여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쳤다고 나오지 않습니까?
병의 근본원인은 체력저하에 있으며 강한 육신에 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정신력이 강한 사람은 육신조차 강하기 마련이라는 말과도 상통합니다.
여러분 모두는 암을 극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겁니다.
그들 모두의 공통점은 암을 두려워해서 굴복한 것이 아니라 싸워서 이긴 사람들로서 두려움을 극복한사람들입니다.
모두가 강한정신력의 소유자들이었지요.
바로 이러한 점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겁니다.
기적의 힘을 발휘하여 치유하도록 만든 것은 예수님의 힘도 작용되었지만 믿음을 가진 본인들의 정신력이 기적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많은 이들이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병이 들어 힘들어하고 고통스러워하는지라 이러한 일들을 가르칠 수 있는 이들이 많아야한다는 말씀을 하신거지요.
추수하는 주인이란 하나님을 가리키며 추수할 일꾼이란 예수님과 같은 기름부음을 받은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겁니다.
하나님께 자신들을 구원해줄 메시아를 보내 달라 기도하라는 말씀을 하신거지요.
지금까지 본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들 모두가 심신이 극도로 약해져 있는지라 천국복음을 전파하여 병이 낫도록 했다는 말씀이기도합니다.
이제 여러분 모두는 기적의 힘이 어디로부터 오는지도 알았고 기적의 힘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여러분 자신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어느덧 하나님께 한걸음 다가선 것 같지 않습니까?
점점 더 흥미로워지는 성경연구가 아닐 수 없군요.
다음시간을 기대하며 잠시 쉬어가겠습니다.
어두운 방에 한줄기 빛이 내리면
고통스러움을 가져다주던 어둠은
어느덧 빈 공간을 열어주고,
암울한 내 마음에 한 가닥 빛이 비추일때
희망의 무지개는 내 삶의 지표가 된다.
적막강산(寂寞江山)같은 삶속에
내리는 한 가닥 희망의 빛은
신의 음성,
세상의 모든 짐들을 잠시 내려놓고
조용히 앉아 기도를 올리는 것은
내안에 살아 숨 쉬는 신을 보고 듣기 위함이다.